건축설계 업무대가 준수가 공공건축의 품격을 높인다
강미현 건축사 (전북특별자치도건축사회/건축사사무소 예감)
다른 동물들과 같이 들판이나 동굴에서 거주하던 인류는 거주공간을 스스로 만들면서 다른 동물들과 크게 구분되며 만물의 영장으로까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현대에도 인간은 건축물에서 태어나 건축물에서 모든 생활을 이어가다 결국 건축물안에서 생을 마감한다.
건축물은 공기과 물처럼 우리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다양한 건축물에 대한 생생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전북지역 건축사들로부터 들어 ‘건축신문고’라는 제목으로 매주 목요일자로 연재를 시작한다.
좋은 건축은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도시를 품격 있는 문화공간으로 바꾼다. 건축은 단지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시대의 정신과 지역의 정체성, 그리고 공동체의 요구를 담아내는 가치 있는 작업이다. 건축사는 설계를 통해 이러한 가치와 시대의 흐름을 건축물에 녹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건축사들은 합당한 법적 보호와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핵심 원인은 ‘설계 업무대가’에 있다. 설계비는 단순히 도면 작성을 위한 비용이 아니다. 건축사가 충분히 현장 조사와 설계 검토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비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공공건축 설계비가 국토교통부 고시에서 규정한 ‘법정 설계비’보다 낮게 책정되는 사례가 흔히 발생하고 있다. 설계비 부족은 설계 품질 저하로 이어져 결국 공공시설의 품격을 떨어뜨리게 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공사비 약 23억 원 규모의 마을회관 신축사업의 경우 법정 설계비는 약 1억 5천만 원이지만 실제로 책정된 금액은 1억 원 수준에 불과했다. 또 다른 15억 원 규모 사업에서도 법정 설계비보다 2천만 원 적은 8천만 원만 지급된 사례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발주처가 설계비 산정 기준을 ‘상급’이 아닌 ‘중급’으로 낮추고, 전기·소방 등 분야의 종합조정 비용을 배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또한 발주처는 낮은 비용으로 책정된 설계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3D 모델링, 준공도서 작성, 각종 심의 및 인허가, 색채 계획 등 추가 업무까지 요구하고 있어 모순된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불합리한 업무 환경으로 인해 설계자는 장시간의 노동과 부당한 보수에 시달리며, 젊은 건축 인재들마저 설계 업무를 기피하게 된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공공건축물의 질적 하락은 불가피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적 손실로 돌아올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설계자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법정 설계비 준수를 철저히 감독하고 설계비 산출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설계비 책정과 집행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계약 제도를 개선하고 구체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건축사는 정당한 설계비를 받고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 좋은 설계를 제공해야 하며, 시민은 높은 품질의 공공시설을 누릴 당연한 권리가 있다. 공공건축의 품격 있는 미래는 바로 법정 설계비 준수에서 출발한다. 좋은 건축은 결코 우연이 아닌 명확한 원칙과 제도적 지원 아래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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