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붕 형태의 양옥집은 한국의 근대화와 도시화 속에서 주거 공간의 새로운 활용을 가능하게 했다. 마당 대신 옥상에 빨래를 널고, 장독을 보관하거나, 작물을 키우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세대가 변하고 생활 가전의 보급, 아파트의 발달로 인한 프라이버시 문제 등으로 옥상 활용은 점점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옥상을 사용하던 거주자들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계단을 이용한 옥상 사용 빈도가 줄어든 탓도 있을 것이다.
사용 빈도가 줄어든 만큼 옥상 관리는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누수에 취약한 평지붕의 특성상 방수층이 깨지고 노후화된 구조체의 균열로 인해 누수가 쉽게 발생한다. 주기적으로 옥상에 방수액을 도포하는 방법도 있지만,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갈 뿐만 아니라, 충분한 건조 없이 시공될 경우 하자 우려가 크다.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경사지붕을 덧씌우는 비가림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평지붕 위에 다시 지붕이 생기는 것은 현행 건축법상 증축에 해당한다. 증축으로 인허가를 받으려면 구조계산서를 비롯한 여러 기반 서류가 제출되어야 하며, 오래된 주택의 경우 기둥 증설과 같은 보강 작업까지 요구되어 사실상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단순히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한 보수 공사일 뿐인데 말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전주시에서는 조례로 옥상에 설치하는 비가림시설을 가설건축물로 인정해주고 있다. 10년 이상 된 건축물에 1.8m 이하로 경사지붕을 설치할 경우에 해당한다. 다만, 이때 구조안전을 확인하도록 되어 있으나, '누구에게 어떻게' 구조 안전을 확인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 청주시의 경우 건축사나 구조기술사의 확인을 받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재 전북특별자치도에서 전주와 순창은 일정조건을 만족하는 비가림시설을 가설건축물로 인정해주고 있고, 임실, 장수, 진안은 비가림시설에 대한 불법건축물 이행강제금을 감경해주고 있다. 그 외 지자체는 이러한 조례조차 없어 옥상에 설치한 비가림 시설이 모두 불법 건축물로 간주되는 경우가 더 많다.
증축에 해당하는 비가림시설을 조례에서 가설건축물로 인정해줄 경우, 사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나 또 다른 불법건축물을 양성하는 것에 대한 우려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지역민의 주거 환경과 삶의 질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요한 사안으로 기존 법령의 틀에 갇히기보다는, 현실적인 대안과 안전 장치를 마련하여 제도를 개선한다면 많은 사람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 이제는 시대의 변화와 도민들의 필요를 반영하여, 합리적인 비가림시설 설치 기준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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