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최고의 해.
프로야구 현대유니콘스의 포수 박경완(29)에게는 2000년이 평생 가장 화려했던 1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앞으로 더욱 빛나는 활약을 펼칠 수도 있겠으나 지난해만큼 팬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는 어려울듯 싶다.
MVP(최우수선수) 등극을 비롯 전무후무한 4연타석 홈런, 아름다운 신부와의 행복한 결혼.
“기회가 닿는다면 낳아주고 길러준 전북에서 운동을 하고싶다”고 말하는 ‘전북의 아들’ 박경완. 이미 그의 존재는 전북의 뿌듯한 자랑거리다.
지난달 17일 한수연씨와 결혼후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부모님께 인사하기 위해 전주를 다녀간 박경완을 구랍 25일 전주 효자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 먼저 전북도민들에 인사를 해달라.
“고향을 떠난지 3년 됐지만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솔직히 전주에서 운동하면 좋았을 것이다. 빨리 새로운 프로야구단이 전북연고로 창단되기를 바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전북팬들의 응원이 너무 고맙다. 작년에 좋은 성적을 낸 것도 고향팬들의 성원 덕분이다”
- 고교때는 물론 프로에서도 무명이었다가 94년부터 갑자기 주전이 됐다. 비결이 있었나.
“포수는 특수포지션이다. 수비코치나 타격코치가 가르치는 포수는 기량이 늘 수 없다.
쌍방울 시절인 93년 10월 조범현 포수코치(현 삼성코치)를 만났다.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정말 열심히 가르쳐주셨고 진짜 열심히 훈련했다. 야구가 무엇인지, 포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분이다.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다. 조범현코치는 야구인생에서 가장 고맙고 잊을 수 없는 스승이다”
- 중·고생때와 무명시절을 돌이켜 본다면.
“20대 초반까지를 말하는데 열심히 공부하거나 한참 놀 나이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포지션이 포수였지만 운동을 잘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 조코치같은 분을 만났으면 훨씬 좋은 성적을 냈을텐데.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복잡한 생각을 하거나 힘든 줄은 몰랐다”
- 야구 꿈나무들인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학생들에게는 큰 꿈이 있을 것이다. 꿈을 갖는게 중요하고 거기에 따르는 피나는 노력이 중요하다. 지금 당장 잘하고 있다 해서 자만하지 말고 못한다 해서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
야구는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항상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 전주는 언제 다녀가는가.
“변명같지만 바빠서 자주 못온다. 시즌이 끝난 직후 등 매년 한두번씩 내려왔다. 할머님 부모님 동생들을 보고 친구들을 만난다. 내려와서 오래 못있으니까 미안하다. 특히 친구들이 괜찮다고 오히려 위로해줘 고맙다.
중3때 담임이었던 김태형선생님과 고교때 부장이었던 김만두선생님이 기억에 남는다”
- 포수는 어려운 포지션인데 언제부터 왜 선택했나.
“초등학교 4학년때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덩치가 있어 포수를 했다. 투수가 완봉승을 거둘 때 뿌듯하고 희열을 느낀다
방송을 보면 침뱉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그만큼 속이 타기 때문이다. 입이 마르니까 물을 많이 먹고 침을 뱉을 수 밖에 없다. 이해해 달라”
- 수면시간은.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경기를 앞두고 신경이 굉장히 예민해진다. 상대타자를 연구해야 하니까 보통 새벽 3시께나 잠든다. 밤을 새는 날도 많고 아침 8시나 돼야 잠드는 날도 적지않다. 아무래도 야구쪽으로는 너무 섬세한 것이 아닌가 싶다”
- 학생때 기억나는 일은.
“중 2때 소년체전 합숙훈련이 힘들어 단체로 도망을 갔다. 도망가고싶지 않았지만 뒤따라갔다. 그런데 주동이라는 누명을 썼다. 억울해 야구를 그만두려고도 했다.
그때 부모님이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죄송한 마음 뿐이다”
- 신부와의 결혼 얘기를 들려달라.
“안사람이 구단 홍보실 직원이었는데 98년 3월 첫눈에 통했나 보다. 특별한 프로포즈는 없었으며 여자친구를 해달라고 했고 그래서 자주 만났다. 양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릴때 모두 굉장히 좋아하셨다.
동료선수들은 물론 프런트 직원들도 전혀 몰랐다가 나중에 결혼발표때 알았다”
- 음식과 주량은.
“어머님이 차려주는 밥상을 가장 좋아한다. 음식은 가리지않는다. 술은 전혀 못한다. 맥주 1잔만 먹어도 눈이 충혈될 정도다. 술은 못해도 전주에 오면 남부시장 콩나물국밥을 꼭 먹고간다”
- 프로로서 필요한 쇼맨십이 없는데.
“사진기자들과 방송카메라가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결승홈런을 쳐도 특별한 제스처없이 그냥 홈으로 뛰기만 한다. 튀는 행동보다는 침묵과 무표정이 성격에 맞는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올해 프로 10년차인데 앞으로 몇년을 더 선수로 뛸지 내자신도 모르겠다. 우선 당장의 목표는 16년간(82∼97) 뛴 이만수선배가 갖고 있는 2백52개의 포수최다 홈런을 경신하고 싶다.(현재 박경완은 1백49개의 홈런을 기록중이다)
다른 구단의 모든 타자를 잘 알아야하는 포수의 포지션특성때문에 해외진출은 생각안해봤다”
- 지도자로서 계획은.
“선수로서 충실하고 싶어 지도자 생각은 안해봤다. 앞으로 야구할 날이 많으므로 은퇴후에 그때 지도자의 길을 생각하겠다”
- 박경완은 신부 한수연씨가 감기몸살이 걸려 함께 사진취재에 응할 수 없음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신상>
신상>
ㆍ생년월일 1972년 7월 11일(양력) ㆍ가족관계 박강수 김종순씨의 2남2녀중 장남 ㆍ본적 군산시 해망동 ㆍ주소 전주시 효자동 ㆍ포지션 포수(우투우타) ㆍ배번 26(가장 좋아하는 숫자) ㆍ연봉 1억5백만원(2000년) ㆍ신장 1m78㎝ ㆍ몸무게 86㎏ ㆍ혈액형 O형 ㆍ시력 좌우 똑같이 1.5 ㆍ발크기 2백70㎜ ㆍ취미 당구·낚시 ㆍ18번 노래 홀로가는 길
<경력>경력>
ㆍ1979년 군산금광초등학교 입학 ㆍ1983년 전주중앙초등학교로 전학 ㆍ1982년 야구시작(초등학교 4학년때) ㆍ1985년 전주동중학교 입학 ㆍ1991년 전주고 졸업, 프로야구 쌍방울레이더스 입단 ㆍ1993년 8월 2일 방위 입대 ㆍ1994년 7월 12일 롯데전 3연타석 홈런 ㆍ1996년 올스타전 출전, 포수부문 골든글러브 수상 ㆍ1997년 11월 현대유니콘스로 이적 ㆍ1998년 골든글러브 ㆍ1999년 올스타전 출전, 7월 18일 개인통산 1백홈런 달성 ㆍ2000년 프로야구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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