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작가 연대 미상의 우리 전래동화인 ‘콩쥐팥쥐’설화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소재로 한 가정소설로 유명하다.
주요 내용은 조선시대 중엽 전라도 서문 밖 30리 부근에 사는 퇴리(退吏) 최만춘이 부인 조씨와 결혼하여 딸 ‘콩쥐’를 낳았으나 콩쥐 어머니 조씨가 일찍이 병사하자 ‘팥쥐’라는 딸을 데리고 온 배씨와 재혼하면서 계모와 전처소생의 딸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이 구전으로 전해오는 신데랄라형 서사물이다.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국적 배경속에서 서민들의 소박한 소망을 나타내고 있는 민족설화‘콩쥐팥쥐’의 실제 배경이 김제시 금구면 둔산마을 등 옛 금구현 일원이라는 주장이 최근 지역 주민들로 부터 제기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만약 이 같은 주민들의 주장이 여러가지 고증을 통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돼 벌써부터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전주 서문 밖 30리가 전주 중화산동 인근 서문에서 신작로가 나기 전 김제시 금구면 둔산마을 주변으로 콩쥐의 아버지 최만춘과 최씨의 후처이자 팥쥐의 어머니인 배씨의 집성촌이 있는 곳이다. 금구면 둔산마을은 전주 최씨가 약 5백40여년 전 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마을 동쪽 2백50m 지점에 팥죽이라고 불리워 지는 방죽이 있다.
이 방죽은 현재는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에 속해 있으나 1914년 4월1일 군 폐합전 관할구역이 김제군 금구면 대화리에 포함되었었다.
팥죽이 방죽은 최씨 집성촌 후손들이 오랜 세월 가뭄에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활용해 온 소류지로 지금까지도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한편 소가 설화속에 등장하는 것은 둔산마을의 형상이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혈(臥牛穴) 형상으로 지금의 서둔쪽이 소의 머리부분에 해당된다.
둔산마을의 최씨 여인들은 암소와 같이 온화한 심성으로 다른 마을 주민들 보다 묵묵히 쉬지 않고 순종하며 열심히 일을 잘해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모든 일을 주도해 나가고 있으며 이 마을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남쪽으로 향하여 해가 뜰 때부터 서산에 질 때까지 그늘진 곳이 없이 온종일 해를 맞이 하는 특성이 있다.
또한 와우혈(臥牛穴) 머리부분 지형에 5백여년 된 소나무 암수 두 그루가 자라고 있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나 10여년 전에 수 소나무가 죽었다. 둔산 최씨들은 수 소나무가 죽으면 남자들이 단명한다 하여 1995년도에 수 소나무를 다시 심어 현재 암수 소나무가 둔산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마치 소가 엎드려 거북바위에 있는 콩쥐의 옛 집을 지켜보는 형상을 하고 있다.
거북이가 항아리를 막았다는 이야기는 옛날에는 이곳이 마을터로 ‘대섶들’또는 ‘묵은들’로 불렸으며, 둔산마을 동남쪽 입구에 조그마한 산이 있는데 바위로 둘러싸여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어 항아리 밑을 막아 주던 거북이가 돌로 변하여 지금까지 거북바위로 내려 오고 있다.
원래는 이곳이 콩쥐가 살았던 최만춘의 본가이고 이 부근에 주민들이 살았으나 상류지역의 많은 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제방을 쌓으며 둔산마을과 구암마을 등으로 이주하였으며 거북바위 옆 마을이 현재의 구암마을이다.
김제시 금구면 둔산앞에 콩쥐의 꽃신을 떨어뜨렸던 두월천이 흐르고 있는데 두월천은 이 마을과 3백여m 떨어져 마을을 휘감고 흐르는 물줄기로 물의 특성상 북에서 남으로,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과는 정반대로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물이 거꾸로 흘러 생명수의 근원처럼 여성적인 마을임을 증명하고 있다.
당초에는 앵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구성산 기슭에서 시작하여 서북쪽으로 농토를 적시면서 흐르는 물줄기로 2개의 물줄기가 있었는데 두월천의 직강공사로 현 위치로 옮겨 하나의 강을 이루게 됐다.
이러한 지리적 배경과 전해 내려오는 지역의 명칭을 설화와 비교하여 볼때 김제시 금구면 둔산마을과 구암마을, 팥죽이 방죽이 콩쥐팥쥐 설화의 고향일 가능성과 잠재력이 아주 크다.
특히 이 설화에서 콩쥐의 선행에 탐복해 밤과 은행 등 과일로 잔치를 베푸는 장면이 나오는데 금구면에는 지금도 큰 밤을 상징하는 대율리(大栗里)가 있고 금구면 산동리 부근 일대 지명이 부모로 부터 효를 배운다는 부교리(父敎里)와 효자가 불구가 된 어머니를 위해 정자를 짓고 편히 모셨다는 효정리(孝停里)가 위치하고 있어 일대의 지형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팥쥐가 콩쥐를 유인하여 밀어 넣은 연못 두죽제(豆粥堤)는 한글의 한문표기로 팥쥐방죽이 변형된 이름으로 추정된다.
이곳 주민들의 구전으로 내려오는 설화가 옛 금구현 둔산일대를 배경으로 한 우리민족의 오랜 전통인 권선징악의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해온 숭고한 민족정신의 뿌리로 우리고장에서 발생하고 열매 맺어 전승되었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콩쥐팥쥐의 실제 고향임을 실감하게 한다고 전 김제시의회 경은천 의원(50,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대율)는 주장했다.
강천석 금구면장은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지명과 역사적 고증, 주민들의 증언들을 종합해 볼때 전주 최씨의 집성촌, 구암마을, 팥죽이방죽, 거북바위, 와우혈, 대율리 등의 금구현 둔산일대가 ‘콩쥐팥쥐’설화의 주요 무대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확실한 고증 통해 사실 확인" 강천석 금구면장
“권선징악의 대표적 민족설화인 콩쥐팥쥐의 고향이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둔산마을 일대임이 현장고증을 통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콩쥐팥쥐의 실제 배경이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둔산마을 일대라고 주장하고 있는 강천석 금구면장은 “현장조사 결과 대동여지도(1861년), 청구도(1834년) 등을 통해 콩쥐팥쥐전에 나오는 고려말 부터 이어온 금구현을 중심으로 30리를 조사한 결과 소설속에 등장하는 콩쥐의 아버지 최만춘, 어머니 조씨, 계모 배씨 집성촌과 팥죽이 방죽으로 일컬어지는 두죽제가 금구면 산동리 둔산마을 일대와 금구면 산동리 대율마을에 존재하고 있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또한 “팥죽이 방죽 옆은 호남사람들이 한양으로 가는 대로(大路)로서 주막이 있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었으나 현재는 옛 어른들의 기억으로만 생생하게 살아 있다”면서 “기타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때 콩쥐팥쥐의 지리적 배경은 틀림없이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둔산마을 일대로 추정된다”고 강조했다.
강 면장은 “일부 언론에서 콩쥐팥쥐의 배경이 완주군의 일부라고 보도한바 있으나 이는 우리민족의 오랜전통인 권선징악의 선을 사랑해온 숭고한 정신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면서 “신중히 고증자료를 검토하여 바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확실한 고증을 통해 현지 주민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승되어 온 지역 지명과 민습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강 면장은 마지막으로 “앞으로 가능한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둔산마을 일대가 콩쥐팥쥐의 실제 배경지임을 밝히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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