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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택의 알쏭달쏭 우리말]비표 좀 달아주세요

요즘은 한 동작만 움직이려 해도 비표를 달아야 하는, 바야흐로 비표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관청이나 큰 회사일수록 비표 없이는 빌딩 엘리베이터에 올라설 수도 없고, 심지어 화장실 출입까지도 할 수가 없게 돼 있다.

 

또 리셉션장이란 리셉션장에서는 비표 없이는 한 동작도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인사나 악수를 할 때도 비표를 흘끔거리며 해야 하고, 상대방의 비위를 분명히 확인하고 해야 하니까.

 

한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커다란 글씨의 이름표를 유치원생처럼 저고리 윗주머니에 달고도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없고, 오히려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요.” “그 유명한 사람이 바로 나요.” 하는 목구멍 속 말을 삼키면서 더욱 의젓해 보이는 자세들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긴 비표를 자주 달수록 시쳇말로 ‘별볼일 있는 사람’도 되고. 대단한 사람도 되니까…….

 

비표는 비밀스런 표시나 표지(標識)를 말한다. 어사 박문수(朴文秀)가 허리춤에 비밀스레 감추고 다니던 마패가 바로 비표다. 지폐의 도안이나 은행의 전표 또는 귀중한 문서에 은밀히 표시해 넣음으로써 극비의 한계를 극소수만이 지키게 하는 표시요, 괴춤이나 허리춤에 감추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끄집어 내는 표시가 비표요, 간첩끼리 서로 통할 수 있는 암호문이나 암시가 비표다. 이러한 ‘비표’를 달고 다니라니 무슨 소리인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명찰 좀 달아주세요.”나 “신분증 좀 달고 들어가실까요.”해야 자연스러울 것이다. 꼭 비표란 말을 쓰고 싶으면 “비표좀 감추어 주실까요”라고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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