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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의 건축이야기] 오묘한 자연질서 체험

정자 누마루에 누워

요즘같이 폭염이 쏟아지는 한 낮에는 시원한 바람과 물과 그늘이 저절로 그리워진다. 그래서 옛날에도 경치가 좀 빼어난 계곡이나 산자락에는 으레 그늘을 드리울 만한 정자(亭子)를 지어 무더위를 피했다. 그 정자 누마루에 올라앉아 졸졸졸 흘러내려가는 시냇물소리를 들으면서 때로는 시를 읊기도 하고, 때로는 열띤 시국토론도 벌이면서 그렇게 정자는 옛날 한 여름의 피서장소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창덕궁 연경당 연못 한쪽에 다소곳이 비켜서있는 듯한 애련정(愛蓮亭)이 그렇고, 비원의 부용정(芙蓉亭)과 소요정(逍遙亭)도 그러하며, 또 춘천 소양호 주변의 소양정(昭陽亭)과 멀리 낙락장송을 배경삼아 동해를 굽어보고 있는 의상대는 물론 충북 영동의 낯선 산자락에 파묻힌 채, 세파에 찌든 마음까지 씻어줄 것 같은 세심정(洗心亭) 역시 피서지로서 그렇게 알뜰한 사랑을 받아왔다.

 

또 세조 때 어느 충신이 단종에게 표주박을 띄워 보냈다는 전실이 서린 충북 제천의 서강 근처 관란정(觀란亭)과 백마강 낙화암을 굽어보면서 백제의 비애를 잊지 못하고 있는 백화정(百花亭)에 찾아가서 그 슬픈 역사를 듣고 있노라면 아무리 폭염에 미칠 것 같다가도 슬그머니 더위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절경과 슬픈 역사 때문에 무더위가 가시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정자(亭子)라는 건축물은 그 구조상 저절로 바람을 일으키게 되어있다. 정자는 그것을 건축한 사람이나 그 지리적인 위치에 따라서 꽤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일단 그 기본얼개는 대부분 옛날 시골의 원두막과 같이 아주 단순한 구조로 지어져있다.

 

얼기설기 짜인 누마루 밑으로 기류가 흘러가면서 더워진 바닥 공기를 일부 덜어주기도 하고, 길게 드리워진 처마그늘로 인해서 온도가 낮아진 정자 주변의 공기는 외부공기와의 온도차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류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마루에 벌렁 드러눕게 되면 그 자연대류작용으로 무더위뿐만 아니라, 자연의 오묘한 질서까지 절로 체감할 수 있어서 그렇게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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