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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의 건축이야기] 소나무

대형건물 조경용 마구잡이 옮겨 심어

소나무는 예로부터 의리와 절개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죽기를 각오하고 단종복위를 도모하던 성삼문조차도 소나무에게만은 속절없는 제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그렇게 소나무에게는 쉬이 범접하기 어려운 기개가 있었다. 백두산 깊은 계곡에서 울울창창하게 쭉쭉 뻗어있는 미인송(美人松)도 그렇지만, 거친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는 해송(海松)도 그렇고, 또 용트림을 하는 것처럼 치솟아 올라가다가 목덜미부근에서부터 유난히 더 붉어지는 적송(赤松)도 그렇다.

 

그래서 소나무는 곧잘 선비들의 그림소재로 애용되어 왔다. 단원 김홍도의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나 혜원 신윤복의 송정아회(松亭雅會)에서도 소나무 특유의 풍취가 잘 드러나 있지만,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까지 가게 되면, 이제 소나무는 그저 단순한 관조의 대상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아니 어쩌면 태초부터 우리민족과 삶의 애환을 함께 해온 정서적 반려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소나무들이 요즈음은 말 못할 수난을 당하고 있다. 자태가 빼어난 소나무일수록 그 고충은 더 심하다. 원래 쉽게 잘 자라지도 않고, 또 옮겨 심어도 까닥 잘못하면 그만 죽어버리는 탓에, 고급관상용으로 자리매김 된 소나무들을 그냥 그대로 놔두려 하지 않는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준공을 앞둔 대형건축물 앞마당에 조경을 한답시고 소나무를 옮겨 심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나무를 옮겨 심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건 학대도 이만저만한 학대가 아니다. 우선 다짜고짜 근원직경의 두세 배 정도 되는 흙만 남겨두고, 흙이란 흙은 모조리 파낸다. 그리고 그동안 생명의 젖줄이었던 뿌리를 모두 자르고, 대신 새끼줄과 철사로 마치 상처부위에 붕대를 감듯이 둘둘 묶어놓는다.

 

물론 소나무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무를 옮겨심기 위해서는 수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들 그렇게 사전 정지작업을 해야 한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는 나무에게 가차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백화점 앞이나 시청 앞 광장에서 만나게 되는 그럴듯한 풍경의 소나무들은 모두 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옮겨 심은 것들이다.

 

이제 심산유곡에나 있음직한 소나무들마저 속속 도심한복판 건축물 곁으로 옮겨지고 있으나, 우리 현대인들은 소나무의 비애 따위는 아예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지금도 휘황찬란한 도심거리를 지날 때마다,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듯 저렇게 처연하게 서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에게서, 우리 도시의 미관을 찾아야만 한다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월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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