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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호남학

광주·전남에서 '호남학'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 추진이 그것이다.

 

광주시장과 전남지사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설립추진위는 지난 주 지역출신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진흥원 설립에 공동 협력하기로 했다고 한다. 특별법 제정에도 뜻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또 재단법인 설립에 필수적인 50억 원의 기금 모금에도 나섰다.

 

이에 앞서 이들은 2007년 8월 각계인사 400여 명이 모여 설립추진위를 구성한 바 있다. 이 모임은 호남지역의 학문·문화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정리해 호남학을 학문의 반열에 올리는 한편 핵심사업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에 활용키 위해 모인 것이다. 이들은 전북지사와 전주시장에게도 협조를 요청, 공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 호남학은 언제, 누구에 의해 태동되었을까. 호남학의 출발은 1907년 호남학회 창립에서 찾는게 일반적이다. (사)향토문화연구회 회보에 따르면 당시 일제 강압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각 지역에서는 개화파 지식인들이 주동이 돼 독립사상을 고취하고자 했다. 그 시발은 안창호(평안도), 이준·이동휘(함경도)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든 서북학회였다. 이러한 움직임에 자극받아 호남인들도 호남학회를 발족시켰다. 이후 기호학회, 관동학회 등이 탄생했다.

 

호남학회 창립의 주역은 만경출신 이기(李沂)였다. 회장은 인촌 김성수의 장인인 고정주(담양 창평)로 일찌기 신교육 기관인 창흥의숙을 만들어 송진우, 김병로 등을 길러낸 인물이다. 임원 중 총무 박영철은 전주 갑부 박기순의 아들이며, 재정부장 백인기는 익산 남성중고를 세운 이씨 부인의 남편이다. 평의원 김경중, 회계원 이채는 각각 김성수와 가람 이병기의 부친이다. 이들은 1910년 강제 해산 때까지 찬조금 3590환을 모아, 기관지 호남학보를 9호까지 발간하는 등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회원은 전북지역 237명, 전남지역 142명 등 379명이었다. 전북출신이 주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100여 년이 흐른 지금 호남학은 호남의 수부(首府)가 있던 전주가 아니라 광주·전남이 주도하고 있다. 전남대 호남학연구단은 전북대 전라문화연구소나 전주역사박물관의 연구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 정치·경제뿐 아니라 지역사 연구도 예속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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