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논설위원)
추석은 햅쌀로 빚은 송편과 햇과일 등 음식을 장만해 조상께 차례를 지내는 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듯 일년중 가장 풍성한 때다.
얼마 전 작고한 박경리 선생은 소설 '토지'에서 이즈음을 이렇게 쓰고 있다.
"추석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강아지나 돼지나 소나 말이나 새들에게,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들에게도 포식의 날인가 보다." 그만큼 먹을 게 흔하다는 뜻이다.
추석은 전국적인 명절이긴 하나 곡창지대가 많은 서울 이남에서 더 큰 명절로 쳤다. 서울 이북에선 추석보다 5월 단오를 더 크게 지냈다. 결국 추석은 오곡백과를 수확하는데 큰 의미가 있었던 셈이다.
가을 저녁이라는 추석(秋夕) 한가위의 멋은 그 날 저녁의 달에 있지 않았을까 한다. 추석 차례상에 바친 대표적 음식인 송편도 달을 닮았지 않은가. 송편이 반달 모양이고, 소를 넣고 접기 전 모양이 온달이라서 송편은 달, 그것도 하늘의 씨앗인 보름달을 상징한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추석 송편은 올벼로 만들었다 해서 '올벼 또는 오려 송편'이라 했다.
송편의 맛은 송편피와 속에 넣는 소가 좌우한다. 송편피는 멥쌀을 찧을 때 모싯잎이나 쑥을 넣으면 초록색, 맨드라미 잎을 넣으면 분홍색, 치자물을 넣으면 노란색이 나온다. 최근에는 단호박 녹차 백련초 오미자 계피 둥굴레가루 연잎 포도즙 딸기즙 등 다양한 재료로 갖가지 맛과 색을 내고 있다. 소는 깨 팥 콩 녹두 밤 등을 넣어 달고 고소한 맛을 낸다. 송편을 찔 때는 솔잎을 밑에 깔고 느긋하게 쪄야 한다.
지역에 따라 송편은 재료와 모양이 달랐다. 평안도 해안지역에선 조개가 많이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개모양의 송편을 빚었다. 전라도에선 꽃송편, 충청도에선 호박송편, 강원도에선 감자와 도토리 송편을 많이 만들었다.
예전 시골에선 열나흗날 저녁이면 온 가족이 대청마루에 앉거나 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둥근 달을 쳐다 보면서 송편을 빚었다. 처녀 총각이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배우자를 만나고, 새색시는 예쁜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덕담도 주고 받았다.
이러한 송편도 이제는 방앗간에 부탁해 만들거나 사 먹는 가정이 늘었다. 또 추석만이 아닌 아무 때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추석에 가정에서 송편빚는 풍경도 퇴색되지 않을까 싶다.
/조상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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