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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 인지(性認知) 예산이 뭐예요? - 한준수

한준수(전주시 기획관리국장)

 

필자의 기억으로 불과 20~30년 전에는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다가 결혼이라도 하면 자연스럽게 퇴직을 하는 시대가 있었다. 결혼을 해서 퇴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여성 차별적 사고방식이 있던 그러한 시대였다.

 

나이를 지긋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며느리가 아이를 낳을 때 "고추"를 달고 나오면 든든해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남아 선호사상 때문에 그럴 것이다. 지금은 양성평등사회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러한 예는 아이가 자라서 사회생활을 하는 일상 곳곳에서 아직도 남아 있으며, 은연중에 남성을 우위에 두는 경우가 많다.

 

한 예를 더 들어보자. 휴게실 화장실의 경우를 보면 여성의 불편 사항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대부분 화장실을 보면, 여성은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간이 남성보다 길지만 여성 화장실의 변기 수는 남성 화장실의 대?소변기 수보다 훨씬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로인해 여성은 화장실 앞에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여성전용 화장실"이라던가 화장실 변기수를 남녀 같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우리 사회 은연중에 여성이 차별을 받는 것을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번에 모든 차별을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 시스템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선 먼저 정부와 자치단체의 예산을 통해서 여성의 차별을 시정하고 남녀가 균등한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예산의 지출을 양성평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편성하고 개선해 가는 것을 "성인지 예산" 이라고 한다.

 

"성인지 예산!" 독자들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잠깐 언급하였지만, 정확한 정의는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예산과정에서 고려하여 자원이 성평등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예산의 배분구조와 규칙을 변화시키려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역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어려운 말이다. 한마디로 풀이하면 "예산의 배분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특징과 차이점을 인정하고 예산 편성으로 차별을 없애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성인지 예산제도를 도입한 원년이 된다. 1998년 여성단체의 예산운동 과정에서 성인지 예산의 필요성이 공론화된 이후, 지난 2006년에 제정된 국가재정법은 회계연도 2010년부터 "성인지 예산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하였다. 10년의 긴긴 세월을 거쳐 지난 10월 1일 정부의 "성인지 예산서"가 제출된 것이다. 전주시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도 국회에 계류중인 국가재정법이 통과되면 2012년부터 성인지 예산제도를 시행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성인지 예산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관심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용어의 개념도 어렵거니와 특히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나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정부가 제출한 "성인지 예산서"를 분석한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도 "일부사업에 국한되었고,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 미칠 영향을 사전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로 보기에 어렵다"고 평가한 것을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2012년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전주시도 이러한 정부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성인지 예산서"작성에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성인지 예산제도를 지금부터 잘 준비하여 "여성이 행복한 도시" 또는 "양성평등 도시"라는 닉네임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한준수(전주시 기획관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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