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프랑스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 대표적인 상징시 '낙엽'이다. 낙엽을 소재로 인생에 대한 단상을 노래하고 있다. 1892년 발표됐지만 오늘날에도 애송되는 낭만적 서정시이다.
늦가을 낙엽이 뒹그는 걸 보면 사람마다 여러 상념에 잠기기 마련이다. 낭만을 떠올리는 이도 있고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희망을 상징할 수도 있다. 이브 몽탕이 부른 샹송의 고전 '고엽'(枯葉)은 추억을 노래하고 있다. '나는 당신이 기억해 주길 간절히 바래요/ 우리가 함께 했던 행복한 나날들/ 그때 인생은 더없이 아름다웠고/태양도 지금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지요/ 낙엽들이 삽으로 무심히 치워지네요'
노년에게 낙엽은 인생무상이고 삶의 유한을 선고 받은 이의 그것은 허망함일 것이다. 70년대 리칭이 주연한 홍콩 영화 '스잔나'에서 여대생 주인공이 뇌종양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낙엽 떨어지는 정원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은 애잔하고 지금도 인상이 깊다. '해는 서산에 지고 쌀쌀한 바람 부네/ 날리는 오동잎 가을은 깊었네/ 꿈은 사라지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 내 인생 오동잎 닮았네 …지는 해 잡을 수 없으니/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
낙엽은 중년 남자한테 비유되기도 한다. 일본에선 은퇴를 앞둔 중년 남자들이 '전국 헌신적 남편협회'를 만들어 아내 곁에서 오래 버틸 전략을 구상한다는 것인데, 아내들은 이런 남편을 '누레오 치바'라 부른다. 젖은 낙엽이란 뜻이다. 젖은 낙엽이 땅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빗댄 것이다.
낙엽이 쌓인 거리는 촉감이 좋다. 사각사각 소리내며 밟히기도 하고 소슬 바람에 떼굴떼굴 구르기도 한다. 낭만과 추억, 인생 무상을 연상할 수 있다. 전주시가 걷고 싶은 낙엽길 8군데를 골라 시민들한테 소개했다. 좋은 서비스다. 그런데 아파트와 거리 상가에선 매일같이 낙엽들을 쓸어내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늦가을 낙엽 밟는 정취라도 느낄 수 있도록 그냥 놔두면 더 좋을 텐데….
/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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