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이사장은 숫자 10과 연관이 깊다. 우리나라 의정사상 최연소 국회부의장으로 시작해 10년 동안 여당 부의장을 지내며 국회운영을 주도했다. 또 유도 10단으로, 유도계의 세계 최고수다. 평생 유도로 몸을 단련했고 유도정신에 입각해 살아온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1922년 김제시 만경면 화포리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장 총재는 만경보통학교와 배재중학교(5년제)를 졸업했다.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대학 척식(拓植)과를 마치고 중국 상해에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해방이 되고 이청천 총사령관 휘하의 광복군 잠편지대(暫編支隊)에서 참모조장을 지냈다. 귀국 후 2년 반동안 전북중학교(전주고 전신)에서 훈육주임과 유도교사 생활을 했다. 이 때 좌익서클 활동을 하던 10여 명이 경찰에 적발돼 구속된 것을 밤을 새워 사찰과장과 담판, 빼낸 일화는 유명하다. 박권상 KBS 사장, 임방현 청와대 대변인, 조세형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등이 당시 제자다.
이어 육사 제7기 특별반으로 입대해 육군 남산학교(특수정보) 학생처장, 특무부대(CIC) 차장, 제3사단 22·23연대장, 육본 교육과장, 육사 참모장, 육군 제2훈련소 교관단장 등을 거쳤다. 준장으로 승진해 육군정보학교장, 육군본부 교육처장을 역임하다 운명의 5·16 쿠데타에 가담했다. 혁명정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예편, 민주공화당 사무총장을 맡았으며 고향 김제에서 6-10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5선의원이 되었다. 한독의원협회 회장, 한국유도회 회장, 세계유도연맹 부회장, 민주공화당 중앙위 의장, 제1무임소장관을 역임하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자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과 헌정회장을 지냈으며 2002년 보수우익 시민단체인 자유수호국민운동을 발족시켜 총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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