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직선제는 민주화의 산물이다. 이 땅의 민중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냈다. 덕분에 1991년부터 지방자치제가 실시됐고 대학들도 구성원이 총장을 직접 뽑게됐다. 그 때의 감격은 실로 컸다. 그러나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직선제의 폐단이 드러났다. 선거 과열로 대학이 정치판 못지 않게 된 것이다. 파벌과 논공행상, 줄서기가 횡행했다. 대학 개혁의 걸림돌이자 악마의 선물로 인식된 것이다. 곳곳에서 총장 직선제에 대한 개선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자 이명박 정부는 지난 해부터 직선제 폐지를 밀어부치기 시작했다. 총장 직선제를 고수하는 대학에는 교육역량강화사업 제외 등 돈줄을 죄어버린 것이다. 나아가 올 하반기 국립대 하위 15%를 가리는 구조개혁중점추진대학으로 지정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렇게 되자 전국 38개 국립대 가운데 32개 대학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손을 들었다. 남은 대학은 전북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목포대 (방통대 제외)등 5곳 뿐이다.
이들 대학도 곧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경북대와 부산대는 투표를 통해 57.7%와 58.4%가 '직선제 존치·개선안'에 손을 들었다. 그러나 대학본부와 교수회가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학칙개정을 둘러싸고 핑퐁을 치는 양상이다. 전남대는 총장 선거가 끝나자마자 검찰이 총장후보 연구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옥죄기에 들어갔다. 이제 관심은 전북대에 쏠리고 있다. 18~24일 찬반투표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서거석 총장은 교수들에게 서신을 보내 "병자호란시 척화파의 명분론과 주화파의 현실론 사이에서 고뇌하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책임자로서 고뇌를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정부의 밀어부치기는 순서가 틀렸다. 대학 구성원들이 직선제 폐해에 대부분 공감하는 만큼 시한을 정해 방안을 스스로 선택토록 하는 게 먼저였다. 불과 2~3만 명의 자치단체도 선거를 치르는데 대학이 이 보다 못하진 않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선출방법에 대한 공론화를 거쳐 다음 정권에서 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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