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당시 대한제국의 광경이다.(강준만의'한국근대사 산책') 1904년 2월8일 일본이 뤼순항과 인천 제물포 항의 러시아 함대에 어뢰를 쏘아 시작된 러일전쟁은 한반도와 만주를 놓고 격렬하게 맞붙은 땅따먹기 전쟁이었다. 일본의 승리로 뤼순과 다롄이 일본 수중에 들어갔다. 이듬해 을사늑약으로 이어져 결국 한반도가 일본에 빼앗긴 계기가 된 전쟁이다. 독도를 일본 땅으로 편입시킨 것도 이때였다. 1905년 2월22일 이른바 '시마네현 고시(제40호)'라는 걸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 부속 섬으로 편입시켰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함대와 일본 함대가 마주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군사적 목적으로 강탈한 것이다.
동남아 식민지 재편을 공고히 한 것도 러일전쟁이었다. 일본 승리로 체결된 테프트(미 육군장관)-가쓰라(일 총리) 밀약은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한 아주 나쁜 협약이다. 그러자 영국도 제2차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하고 일본도 영국의 인도와 버마(미얀마) 지배를 묵인했다. 동남아지역 땅따먹기 완결판이다.
러일전쟁은 실질적으로 한반도 지배권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전쟁이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는 러시아도 중국도 아닌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우리 중·고교 교과서는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이자 미래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 내일(29일)이 경술국치일이다. 나라를 빼앗긴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힘이 없으면 남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치욕을 감내해야 하고, 국가 지도자들이 무능하면 엄청난 희생을 치른다는 교훈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이다. 지금도 독도와 센카쿠, 쿠릴열도를 놓고 한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러일전쟁 108년이 지난 지금도 땅따먹기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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