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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례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리서 〈택리지(擇里志)〉 저자는 조선 영조시대 실학자 이중환이다. 〈택리지〉는 저자가 이 나라 산하를 직접 걸어 돌아다니며 쓴 생생한 현장기록이다. 그는 젊은 시절, 사화(士禍)에 연루돼 유배당했지만, 고난의 시기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택리지〉는 그가 20년 동안 방랑생활을 하면서 온 국토를 뒤지고 다녔던 결실이다. 택리지는 새로운 지리지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동국여지승람〉처럼 군현별 백과사전식 지지에 우리나라를 총체적으로 다룬 팔도총론을 넘어 도별지지마다 주제별로 다룬 인문 지리적 관점의 지식을 갖추고 있는 덕분이다.

 

택리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난의 시대에서 사대부가 살만한 곳'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목표는 택리지의 본론인 '복거총론'에서 전개된다. 이른바 살만한 곳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부분이다. '복거총론'에서는 가거지(可居地)의 네 가지 조건이 제시되어 있는데'지리가 좋아야 하고, 생리가 있어야하며, 인심이 좋아야하고,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라북도에는 종교인들과 자치단체가 뜻을 모아 일군 '아름다운 순례길'이 있다. '순례길'은 세계의 도보여행자들의 꿈의 코스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널리 알려진 덕분에 그리 낯설지 않다.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전주와 완주 익산 김제를 잇는 9개 코스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어느 특정한 종교 성지만을 잇는 길이 아니다. 이 길들은 전라북도의 유교와 불교 원불교 개신교 천주교가 함께 마음을 열고 만들어낸 길이다. 전체 코스 길이는 240km. 그러나 지금도 코스마다 가장 적합한 길을 잇기 위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연결하는 작업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더러는 짧아지거나 길어질 수 있다. 주목을 끄는 것은 코스마다 우리의 삶을 새롭게 눈뜨게 하는 다양한 길의 모습이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함께 안고 있는 험한 산길, 눈부신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을 안아 흐르는 강둑 길, 자분자분 친구와 이야기 하듯 속살거리는 숲속 오솔길, 온몸으로 땡볕을 안고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가야하는 둑길까지. 돌아보면 우리 인생과 꼭 닮아 있다.

 

'순례'는 종교성지를 여행하는 일이지만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길을 걷다가 마주치게 되는 작은 마을마다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이다. 전북의 아름다운 순례길의 가치가 더 빛나보이는 것도 이 덕분이 아닐까.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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