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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와 비보이 문화

브레이크댄스는 1970년대 초반, 뉴욕의 브롱크스(Bronx)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춤이다. 브롱크스는 한산한 거주 지역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 거주환경이 악화되면서 많은 백인들이 떠났다. 대신 소수민족, 특히 히스패닉계 흑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해오면서 구역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자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자신들이 즐기는 힙합을 출 때만은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이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힙합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상대방구역을 찾아가 다양한 기교와 기량을 뽐내며 춤추는 시위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남자아이들을 뜻하는 비보이(B-boy) 경연대회의 중심에 '배틀(Battle)'이 있게 된 배경이다.

 

힙합문화는 주류문화가 됐다. 한국의 힙합문화는 1990년대의 소산이다. 1세대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대중가수들의 춤과 음악이 통로다.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힙합문화의 중심에는 비보이가 있다. 한국의 비보이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경연대회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실력 있는 비보이들이 활동하는 나라라면 한국 독일 일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가 꼽히지만 한국은 그중에서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세계 5대 비보이 배틀을 석권한 덕분이다. 그들 정상의 비보이팀 중 '라스트 포 원'이 있다.

 

'라스트 포 원'은 2002년 전주의 비보이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했다. 각종대회를 휩쓸면서 주목을 받았던 '라스트 포 원'은 서울로 근거지를 옮긴 2005년,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서 우승하면서 최고의 비보이가 됐다. '라스트 포 원'이 전주 출신 비보이들이라는 지역 연고가 알려지면서 전통문화의 상징적 도시 전주도 자유롭고 창의적인 젊은 문화도시란 새 옷을 입게 됐다. 전주시는 영화의 거리 입구에 '라스트 포 원' 광장을 조성하고 큰 규모의 비보이 대회를 만드는 관심으로 답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주의 비보이 문화는 성장을 멈추었다. 지속적인 관심으로 그 가치를 빛내는 일에 등한했던 탓이니 비보이문화가 전주의 문화 아이콘으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다해도 섭섭해 할 일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비보이 전용극장은 딱 한 곳. 서울의 홍대 앞에 있는 '쿵'이다. 세계 최초의 비보이 전용극장이라고 한다. 한국 비보이의 고향을 자처하는 전주가 왜 먼저 나서지 못했는지 돌아보면 더 아쉽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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