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3일 전주시 팔복동 친환경복합산업단지. 국내에서는 최초이자, 일본과 미국에 이어 세계 3번째로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섬유를 생산하는 국가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축포가 쏘아 올려졌다. (주)효성의 탄소섬유 생산 전주공장 준공식 현장이었다. 행사장에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김완주 전북도지사, 송하진 전주시장, (주)효성 이상운 부회장 등 기업체 대표 및 시민 500여명이 참석, 국내 첫 중성능(T-700급) 탄소섬유 생산을 축하했다. 18만2000㎡ 부지 위에 들어선 (주)효성 전주공장에서는 연 2000톤 규모의 탄소섬유가 생산된다. 효성은 오는 2020년까지 1조2000억원을 단계적으로 투자할 계획으로, 생산능력도 연 1만 7000톤 규모로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는 올해 국내 탄소시장 규모의 6배를 생산하는 규모이자, 세계 탄소시장(5만t)의 30% 수준이다.
탄소섬유는 전주시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해온 분야로, 자치단체의 사업이 국가사업으로 채택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전주 탄소산업 시작
이 모습을 준공식 현장 한 켠에서 바라본 한국탄소융합기술원(구 기계탄소기술원) 및 전주시, 그리고 (주)효성 전주공장 관계자들은 또다른 한편으로 씁쓸해 했다. 핵심은 사업과정에서 겪었던 전북도와의 갈등이다. 실제 전주탄소 섬유가 생산되기까지 전주시와 탄소융합기술원측은 전북도와 적잖게 충돌했다.
그 부딪힘은 한국탄소융합기술원(구 전주기계탄소기술원)이 효성과 공동으로 탄소섬유 기술개발을 추진키로 협약을 맺은 지난 2008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한국탄소융합기술원·전주시, 그리고 전북도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효성 전주공장의 위치 등 탄소산업의 지역적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전주 탄소산업은 김완주 지사가 전주시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5년께 시작됐다. 김 지사는 탄소섬유를 비롯한 탄소산업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평가했다.
곧바로 전주기계산업리서치 센터(현 한국탄소융합기술원)를 중심으로 추진하던 부품소재산업이 탄소산업으로 중심축이 이동됐다. 이 구상은 당시만해도 매우 파격적인 기획으로, 담당 정부부처인 지식경제부에 탄소와 관련된 담당부서는 물론이고 담당자 조차 없을 정도로 국내기반이 매우 취약한 시기였다. 정부 관계자는'대기업도 못하는 것을 일개 자치단체가 하겠다니 믿지 못하겠다'며 전주시의 구상을 평가 절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전주시는 전주기계산업리서치센터내 장비를 탄소관련 장비로 교체하는 등 사업을 밀어부쳤다. 이 시기는 송하진 시장이 전주시정을 맡기 시작한 민선 4기였다. 송 시장의 민선4기는 2006년 7월부터 시작됐다.
인력확보를 위해 외국에서 탄소를 연구했던 박사급 인력과 탄소섬유 개발 경험이 있는 동양제철 소속 연구진을 영입했다. 그리고 일본 도레이로부터 '연구용으로 쓰겠다'고 약속하고 탄소섬유 연구개발에 필요한 장비를 도입했다. 총 100억원 투입된 장비는 2년 후인 2007년말 완전 구축됐다. 이들 시설이 들어선 산업단지(도시첨산업단지)도 2006년 12월에 완공됐다.
김 지사의 구상이 송하진 시장에 의해 개화된 것. 송 시장은 장비구축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를 활용해 탄소섬유 생산할 수 있는 후속작업에 착수했다. 탄소섬유를 생산하는 파트너, 즉 대기업 물색에 나선 것. 송 시장은 국내 공업섬유분야에서 선두주자였던 (주)효성을 선택했다. 전주시와 물밑접촉을 이뤄질 당시 효성은 탄소섬유 전문가를 2차례나 전주에 파견해 장비 및 생산환경을 점검하는 등 손익계산을 꼼꼼히 따졌다.
사전점검을 마친 효성은 2008년 4월 최종 결정을 내리고 이상운 효성 부회장이 전주를 직접 방문해 계약을 체결했다. 전주시와 효성은 '개발시기는 6년(2014년), 개발 이후 1년 이내 연산 1000톤 이상의 규모를 갖춘 공장을 전주에 건설한다'고 약속했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연구가 중단되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계약이후 2년만에 범용 탄소섬유 개발(2010년)를, 그리고 그 뒤 1년만에 고성능 탄소섬유 개발(2011년)에 성공했다. 당초 약속한 개발시한을 3년 정도 앞당긴 셈이다.
△자치단체간 갈등
그 사이에 전북도와 전주시간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전주시 입장에서는 전북도가 사사건건 제동을 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탄소융합기술원측은 전북도가 제대로 된 예산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방해만 한다는 불만이 집중적으로 나온 시기도 이 때였다.
특히 이 시기는 송하진 시장이 전주시장에 취임 후인 지난 2007년 8월 김 지사가 시장시절에 의욕적으로 기획해 놓은 경전철 사업 중단을 선언, 양측간에 냉기류가 흐르던 시점이었다. 또 2008년 2월 전주시 상수도 유수율 제고사업의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에 대한 전북도의 감사를 둘러싸고 전북도와 전주시가 정면 충돌하는 등 양 자치단체간 감정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상황이었다. 이 같은 물밑 신경전은 효성이 중성능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하고, 생산공장을 짓기 위한 계획에 착수하던 2011년 초께 더욱 표면화됐다.
먼저 효성의 전주공장 위치. 전북도와 전주시의 생각은 달랐다. 전주시는 당연히 전주에 효성공장 건설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북도에서는 전주시 이외의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전북도는 직접 효성측을 찾아가 전주가 아닌 완주에 공장을 지을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효성의 한 관계자는 "전북도에서 찾아와 '완주로 가면, 땅값도 싸고 개발을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전주에 공장을 짓지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황당하기까지 했다"며 고 어이없어 했다.
전북도는 논리는 균형개발이었다. 전주의 경우, 팔복동 도시첨단산업단지내에 한국탄소융합기술원과 나노집적센터, 테크노파크 등의 연구시설이 있는 만큼 연구중심으로 가고, 공장 등의 산업시설은 완주를 비롯한 인접 시군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전주시는 지난 2008년 1월 KIST(한국과학기술원) 전북분원을 전북에 유치했을때의 상황을 들며 반박했다. 시 관계자는 "당시 우리는'전주시는 연구중심으로 갈테니, 연구시설 집적화를 위해 KIST전북분원을 전주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전북도는 이를 거부하고 완주에 배치했다"면서 "도의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사이에 효성측은 '합의가 되지 않으면 울산으로 갈수도 있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결국 송 시장과 당시 조지훈 전주시의회 의장이 나서 이상운 효성 부회장을 수차례 만나 설득한 결과, 이상운 부회장이'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전주를 최종 결정했다.
탄소공장 위치가 일단락되자, 이번에는 부지확보 문제가 불거졌다. 전주시는 효성측에 공장부지를 제공하기 위해 현 효성 전주공장 부지인 팔복동 BYC인근의 생산녹지(친환경복합산단 3단계 부지, 153만3000㎡)를 공장용지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통상 산업용지 개발에 부지매입과 행정절차 이행, 공사 등에 따른 기간이 5년 정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 미리 준비한 것.
이를 위해서는 전북도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여러차례 거부당했다. 가까스로 전체 계획 면적 가운데 일부(28만4000㎡)만 승인을 얻어 산업용지로 개발해 효성측에 제공했다. 나머지 면적은 현재까지 전북도가 승인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갈등의 후유증-탄소산업 중심 흔들
자치단체간 갈등은 한국탄소융합기술원과 효성측 연구진의 노력 덕분에 탄소섬유 개발성공과 양산이란 결과물을 얻어내는 등 무난히 넘어갔지만, 후유증은 심했다.
가장 큰게 전주 탄소산업의 국내 위상이다. 전주시 한 관계자는 "사업추진 및 예산을 확보하러 정부부처에 가면 담당자자들은 '왜 그렇게 전북은 싸움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정부에서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로인해 전주 탄소산업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고, 성공적 기반을 구축했음에도 국내 위상은 확고하게 자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전북도가 오래전부터 추진해왔던 '초고강도 복합소재 국산화개발사업'이 수차례 실패한 후에서야 가까스로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정부가 탄소산업 육성을 위해 주요 소재 6가지(탄소섬유, CNT, 인조흑연, 카본블랙, 그래핀, 활성탄소) 소재 및 융복합상품을 글로벌 스타산업으로 육성하는 'C-STAR'사업을 전북을 비롯한 3개 지역으로 분산하려는 계획에서 보듯 국내 탄소산업의 주도권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전북도와 한국탄소융합기술원과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전북도 전략산업의 하나로 전기차 기술개발과 인프라 구축 등을 목표로 추진됐던 '그린카'산업이 울산으로 넘어간 것도 또다른 손실로 꼽힌다.
● 전주 탄소산업 추진 일지
△2002년 05월=전북 지역산업 육성을 위한 운영조례 제정
△2002년12월=(재)전주기계산업리서치센터 창립 총회
△2003년 02월=(재)전주기계산업리서치센터 설립 허가(산업자원부)
△2004년 11월=기계산업리서치센터 건축 완공
△2004년 12월=기계산업리서치센터 입주업체 모집(7개사)
△2006년 10월=산자부 핵심기능 기계부품소재실용화사업 선정(103억)
△2006년 12월=전주도시첨단산업단지 생산시설확충사업 완공(3개동, 1500평)
△2007년 12월=탄소섬유생산시스템 기반구축 완료(소재성형동 및 장비구축 완료)
△2008년01월=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북분원 복합소재기술연구소 설립
△2008년 04월=(주)효성과 탄소섬유공동기술개발 계약 체결
△2008년 10월=전주기계탄소기술원으로 법인명칭 변경
△2009년 01월=전주기계탄소기술원 개원
△2009년 12월=범용 탄소섬유 개발 성공(T-300급)
△2010년 10월=국제탄소연구소 개관
△2011년 03월=중성능 탄소섬유개발(T-700급)
△2011년 06월=(주)효성 전주권 탄소섬유양산공장 유치 MOU 체결
△2012년 03월=(주)효성탄소섬유 공장 착공
△2013년 04월=한국탄소융합기술원(구 전주기계탄소기술원)으로 명칭 변경
△2013년05월=(주)효성탄소섬유 공장 준공, 양산체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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