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8개월간 행정부에서 대권 수업을 받은 그에게 혹독한 시련이 뒤 따랐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대패, 20%를 넘나들던 지지율이 3%에도 못미쳐 의장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지난 2007년 대선서 530만표 차로 낙선한 게 그 한테는 치명타였다. 18대 때 동작을에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선거에 나섰으나 패배했고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조급증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어머니를 외치며 전주 덕진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나 이미 큰 정치인의 면모는 잃었다. DJ가 73세에 대통령이 된 것처럼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를 지냈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선거에도 출마치 않고 참고 기다렸어야 옳았다. 지난해 강남을서 출마한 것도 무리수였다.
요즘 전주에서 그의 행보가 목격된다. 전주 신광교회 특강과 전주 KBS 토론회에 참가하면서 서대문 대신 전주 완산을 아니면 도지사 출마설이 그럴싸하게 퍼져 있다. 홍준표가 또 경남지사로, 박지원이 전남지사로 나서는 것처럼 말이다. 무관(無冠)인 그는 예전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못받아 답답해 보인다. 지금 김한길 대표와 그 사이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수 있다. 민주당은 호남서 부는 안철수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그를 필요로 하고 정동영은 그것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정서는 그게 아니다. 상당수 도민들은 대선 이후 그의 일관성 없는 행보에 실망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백성일 상무이사 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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