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화맥이 탄탄한 전북에는 초상화로 이름을 널리 알린 화가가 있다. 근대 한국화단의 마지막 초상화가로 꼽히는 채용신(蔡龍臣 1848-1941 )이다. 그는 전통 초상화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전통과 서양화법을 조화시키고 근대 사진술을 반영해 '채석지 필법'이라는 독특한 화풍을 개척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맥은 당대에서 끊기고 말았다.
채용신은 전북출신이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한 그는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말년에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파직하고 전북에 내려와 살면서 이 지역 곳곳을 다니며 자신에게 의뢰하는 인물들의 모든 초상을 그렸다. 정읍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가 남긴 초상은 적지 않다. 대표작은 역시 고종 어진이지만 당대의 유학자와 우국지사들의 초상이 그의 필선에 담겨 후대에 남았다.
최근 흥미로운 해설을 보았다. 미술평론가 조은정교수의 분석이다. "채용신의 인물 초상은 당대 사람들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강조하는 조교수는 그의 초상에 나타난 인물들이 공통으로 소유한 사상이나 교유관계로 엮어져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실제 채용신이 다룬 인물 중에는 학문적 뿌리를 함께 하며 동시에 의병?항일 활동 등으로 얽힌 관계에 있는 인물들이 많다. 조교수가 '그의 초상화를 통해 근대지사들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뿐더러 일제 강점기 치열했던 민족적 구국의 일념들을 엿볼 수 있다'고 분석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전북도립미술관이 채용신의 초상부터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화가들이 남긴 초상을 한곳에 모은 전시 〈역사 속에 살다-초상, 시대의 거울〉을 열고 있다. 인물 초상을 통해 당대의 삶과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이 크다. 전국 각지에서 어렵게 수집했을 초상화의 면면을 보면 놓치기는 더욱 아쉬운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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