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객원논설위원
"특히,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갔으면 좋겠구나./ 누구보다 너희들 자신을 깊이 사랑하거라./ 그것이 혁명가가 지녀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불꽃처럼 살다 간 체 게바라가 자녀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의 한 구절. 또 다른 혁명을 위해 떠나면서도 자녀들에게 감히 혁명을 권하고 있다. 갖은 역경, 심지어는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는 혁명가의 길을! 정의와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까지 함께하는 혁명적인 삶! 가정의 이름으로, 현실을 핑계로 꿈도 이상도 모두 포기해버린 우리들 일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이런 '다름'을 '틀림'으로 호도하며 자위한다. 심지어는 그런 삶을 모욕한다. 그래야 스스로의 소시민적 옹졸함을 덮을 수 있으니까. 빛고을 '체 게바라 티셔츠' 해프닝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섣부른 이야기는 그를 모욕하기 쉽다. 혁명과 혁명가의 의미를 더럽힐 수 있다. 그 징후는 90년대 후반에 불기 시작한 '게바라 열풍'에서 확인된다. 영웅 없는 시대가 영웅을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그가 일생을 바쳐 저항했던 제국주의 미국의 심장부에서 아무런 반성 없이 그가 추모되고 있는 모습을 영 볼썽사납다. 사르트르가 평한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을 존중하는 진정성은 사라지고 그의 외모가 풍기는 '저항의 이미지'만을 취하는 선정적 열기만이 있을 뿐이다. 제임스 딘이나 마이클 조단에 대한 환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를 이용한 상업주의의 횡행. 심지어 쿠바나 볼리비아 정부조차 이 추모열기를 이용하여 게바라 상품화에 여념이 없다. "그의 이념 따위는 필요 없다. 그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얼굴만이 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검은 베레모에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칼, 덥수룩한 턱수염의 이미지만 남고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억압하게 하는 '그 무엇'에 대해 근본적으로 저항했던" 고독한 혁명가의 격정적인 삶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냥 검은색이 필요해 입은 티셔츠 가지고 징계를 내세우는 매카시즘 색깔론도 그렇지만 '대중문화의 일부'일 뿐이라며 도망가기에 급급한 '무섬증'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잘못을 얼버무리기 위해 국정원이 조장하는 공안정국에 야당은 물론 모든 언론이 일시에 백기를 들고 휘둘리는 꼴과 닮았다. 정녕 혁명의 시대는 끝났나 보다. 허기는 군사쿠데타가 혁명으로 둔갑하는 시대이다 보니….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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