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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 가다

동서양·현대미술 만남…1500여 작품 유혹 / 우산·부채 이용 '모빌 서예전' 포토존 인기

▲ 지난 5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개막한 '2013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서 작가들이 휘호를 그리고 있다. 뉴스1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문화의 정수였던 서예는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이 됐다. 수준 높은 전북 서화를 앞세워 한국·중국·일본 서예술과 소통하고, 세계로 확장시킨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이하 서예비엔날레) 덕분이다. 묵향 그윽한 전주는 2년에 한 번 꼴로 전 세계의 묵객들을 유혹한다.

 

그럼에도 서예를 좇는 사람들이 점잖은 어르신으로만 그려지는 것은 우리의 서예가 성역화 된 접근과 해석으로 그들만의 서예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5만 명에서 25만 명까지 서예비엔날레를 찾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것은 서예가 갖는 가치와 의미에 대한 질문을 수많은 현대인들이 공감하며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단지 서예가 한문학을 제법 알거나 묵향을 오래 맡아온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면, 서예비엔날레가 1996년부터 지금까지 장수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바로 이런 간극에서 시작됐다.

 

지난 5일 개막한 '2013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17개국 900여 작가의 작품 1500여 점을 내걸었다. 문자예술의 아름다움이 공간의 경계를 넘어 우리의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자리로 지난 3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개막, 서예의 세계화와 대중화를 향한 한 달 동안의 장정을 이어가고 있다.

▲ 부처의 얼굴이 보이는가. 대만의 서예가 황창밍이 옮긴 '손과정 서보'의 한 대목이다. 작가는 먹의 농담 조절로 부처의 얼굴이 연상되도록 했다. 글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경지가 부처의 득도와 같은 경지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깊고 너른 품으로 세상을 품어온 부처가 무념무상의 거인 같다.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을 힘도 그런 고요의 깊이에서 나오지 않을까.

전북도가 주최하고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주관해온 제9회 서예비엔날레의 주제는 '바람과 뿌리'. 한자문화권 고유의 예술인 서예의 근원적인 예술성을 고찰하고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서예바람을 점검해 더 큰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뿌리'는 동아시아의 서예가 글자 쓰기 흉내 내기가 아닌 사유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서예의 철학'전으로, '바람'은 '서방의 서예바람'전으로 구현됐다.

 

서예비엔날레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온 프로그램은 서예문화의 전통을 지켜온 아시아 3국의 과거와 현재의 흐름을 살피는 기획전이다. 본래 우리나라는 서예, 중국은 서법, 중국은 서도로 각기 달리 불리듯 아시아 문화권의 조형예술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왔다.

 

올해 '서예의 철학'전에서는 아시아 3국외에도 대만·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서예가까지 참여했다. 전통 서법에 충실한 한국의 서예, 표현주의적 추상주의가 묻어나는 일본의 서도, 공산주의로 계보의 근간은 약해졌으나 호방한 필획이 두드러지는 중국 서법의 비교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까지 확대된 서예의 흐름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단연 두각을 보였던 작품은 지난 서예비엔날레에서 그랑프리상을 받은 대만의 서예가 황창밍의 작품이다. 중국 당의 손과정(648∼703)이 쓴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손과정 서보' 중 '오합오괴(五合五乖)' 대목을 적었다. 서보의 작은 초서체 그대로 이 대목을 옮기되 먹의 농담을 조절해 부처의 얼굴이 나타나도록 신경쓴 것. 가까이에서 보면 글씨 일부가 빛바랜 것처럼 보이나 멀리서 보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이른 부처가 어느 순간 드러난다.

 

서예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김병기 전북대 교수는 "'오합오괴'는 글씨쓰기 가장 합당한 환경 5가지와 좋지 않은 환경 5가지를 거론한 대목인데, 오합의 제일은 '늘 기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힘씀'이다. 서예가가 가장 글을 잘 쓸 수 있는 경지는 부처의 마음상태와 같은, 득도의 경지임을 시각화했다"고 설명했다.

 

'서방의 서예바람'전에서는 미국·러시아·독일 등 9개국 서예를 배운 작가 36명이 한자로 혹은 제 나라 말과 글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최근 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서예의 싹이 트고 있는 서방에서 그들의 눈으로 해석한 서예를 만나는 자리.

▲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2013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1층 전시실에 한지와 서예가 적힌 모빌들이 전시장을 수 놓고 있다. 뉴스1

'디자인'은 서예비엔날레의 또 다른 화두다. 대중들이 서예의 예술적 잠재력을 발굴하고 오늘의 생활과 감각을 맞춘 아름다운 변신을 접할 수 있도록 한 '서예와 건축, 인테리어'전에서는 서예를 새긴 타일, 현판 등을 선보였다. 서예가들 스스로 몸을 낮추어 서예가 생활 속으로 다가가는 실험적 시도로 타일, 조각 등으로 재탄생된 것.

 

특히 우산과 부채에 글을 써서 띄운 '모빌 서예전'은 '핫 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났다. 서예의 현대적 설치 방법을 모색한 세계 최초의 이번 전시는 가족 나들이 나온 관람객들을 위한 최고의 '포토 존'으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명사들의 좌우명을 서예를 담은 '영혼의 뿌리, 삶의 신바람'에서는 남궁진 전 문화부장관, 이근배 시인, 정종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등 내로라하는 호사가들이 출품했다.

 

이처럼 경계를 가로지르며 서예를 확장시키는 모험은 계속되고 있다. 말 그대로 '오래된 미래'다. 해석되지 않았을 땐 암호문과 같은 서예 원석을 잘 가공하고 나면 영롱한 보석이 된다. 서예의 본향, 전북은 다듬지 않은 원석들로 가득 찬 광맥이다. 현재와 미래의 해답은 여기에 있다.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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