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탈출 1호’인 선장 이준석 씨(69)의 행동거지는 인간이 얼마나 뻔뻔해질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배를 버리고 탈출한 이씨가 진료소에서 모포로 갈아 입는 모습, 두 눈을 감은 채 누워 혈압을 재는 광경, 건강상태를 확인받고 태연하게 걸어 나서는 모습, 신분을 ‘일반인’으로 적어 자신을 은폐한 비겁함 등등. 동영상에 비친 모습이다. 물에 젖은 5만원, 1만원권 지폐를 병상에 늘어놓고 말리던 광경은 압권이다.
그한테 선장으로서의 직업윤리나 책임의식, 위기관리 리더십 따위를 기대하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천박성 때문이다. 한편으론 너무 허무하다. 대한민국 대형 여객선의 선장이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혼자 탈출하는 용기, 승객 475명이 수장될 긴박한 그 순간에 태연하게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는 이기적인 행동을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또 있을 대한민국 기관이나 조직 리더들의 천박한 속살을 그에게서 보는 것 같아 찜찜하기도 하다.
대형사고 때마다 그 이면엔 리더의 안일한 판단과 무책임이 도사려 있다. 292명이 숨진 1993년의 서해훼리호 사고는 선장의 무모한 판단이 부른 인재였다. 선장 백운두 씨(당시 56세)는 “강풍과 높은 파고 때문에 출항할 수 없다”고 했지만 승객들의 요구 때문에 출항했다가 사고를 당했다. 전복 가능성을 제시하며 설득해야 했지만 오히려 설득 당했다.
502명이 숨진 1995년의 삼풍백화점 사고는 1년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백화점을 지키는 경비보안조장은 사고 1년전 옥상의 큰크리트 바닥 대부분이 균열돼 마치 조개껍데기처럼 깨져 있는 걸 보고 놀라 관리부서에 이를 알렸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묵살됐다. 사고 직후 백화점 직원은 인터뷰에서 “윗대가리가 말을 듣지 않아서…”라며 원통해 했다.
엎질러진 물이지만 세월호 선장 이 씨가 선장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희생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이 안된 천박하고 무책임한 행동이 두고두고 안타깝다. 기본이 안돼 있는데 선진국에 들면 뭐하나. 국민 안위를 책임지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갖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그럴망정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져야 한다. 삼풍백화점 직원의 표현대로 윗대가리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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