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민주를 외치는 세력을 탄압했다. 그가 이룬 경제성장의 업적을 논외로 하면, 그는 집권 기간 동안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장기 독재 체제를 고착하기 위해 노력한 독재자였다. 실제로 그는 18년간 집권했다.
양김의 존재감은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후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단연 빛났다. 그들은 정권의 민주화 탄압에 맞서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고, 반민주 반독재의 간판 스타였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1970년대 이후 30년간 대한민국 정치판을 이끌고, 대통령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면에는 강력한 계파정치도 있었다.
김영삼의 상도동계, 김대중의 동교동계는 야당 정치세력의 쌍두마차였다. 양김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좌했고, 또 한편으로는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양김 시대의 계파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있었다. 당시 정 상임고문은 동교동계의 좌장 권노갑을 향해 ‘인사 전횡’ 등을 문제삼으며 물러날 것을 요구했고, 민주화운동시대 고행을 하며 겨우 정권을 잡은 동교동계의 좌장 권노갑은 결국 후선으로 물러나야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정치권에 수혈된 ‘젊은 피’들이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식 계파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계파정치의 상징인 권노갑을 내친 것은 한국정치사에서 큰 파란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도 계파정치는 여전했다. 이해득실을 먼저 따지고, 상대를 공격해 그 위에 올라서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양김 이후 민주당은 노무현과 구민주계가 대립했고, 한나라당은 이명박-박근혜계가 대립했다.
요즘 6·4선거 공천작업에 들어간 새정치민주연합은 구 민주계와 안철수계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다.
정치권이 계파정치를 청산해야 할 구태로 말해왔지만, 정작 계파정치를 하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정치판에는 어제의 적도, 어제의 아군도 없다. 경쟁은 없고 공격과 장악만 있다. 상향식은 사라지고, 수뇌부의 판단과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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