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감자·춘장만으로 정성들인 옛날식 소박함 / 시끌벅적 '시거리식당' 어머니 이어 아들이 운영 / 10여년전 태풍으로 간판 내리고 이름 없이 영업
소박하다. 꾸미거나 더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내는 가게. 그래서 더욱 정이 간다. 다른 자장면집처럼 메뉴가 다양하고 인테리어가 화려하진 않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정겨움이 있다. 추억이 있다. 역사가 있다. 함열과 낭산, 용동을 잇는 고창삼거리 한편에 자리한 그곳 익산 낭산면. 자장면을 먹으러 왔다가 추억을 먹고 간다는 어느 손님의 말처럼 오늘도 주인장 김세경 씨는 한결같은 맛과 함께 추억을 판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비벼주신 자장면의 맛이 바로 여기 있다.
△시끌벅적 사람이 끊이지 않아 ‘시거리’
익산에는 간판도 메뉴판도 없이 배짱 장사를 하는 김세경(47, 경력 22년) 달인의 자장면집이 있다. 메뉴는 오로지 자장면과 우동뿐!
어머니에게서 아들로, 35년간 굳건히 한 자리를 지켜온 ‘간판 없는 자장면집’. 지금이야 간판이 없는 자장면집으로 더욱 유명해졌지만, 처음부터 이 ‘간판 없는 자장면집’에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 가게 이름은 ‘시거리 식당’이었어요. 가게 앞에 함열로 이어지는 삼거리가 있잖아요? 그래서 옛날엔 어르신들이 여기서 막걸리도 드시고 그랬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모이면 시끄럽잖아요. 그래서 붙은 이름이 시거리. 그 지명에서 가게 이름을 따온 거죠.”
‘시거리’라는 지명의 유래가 제법 재미있다. 그 옛날 함열을 오가던 어르신들에게 이곳은 지친 몸을 풀어주는 쉼터였을 터. 오래 걸어 아픈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어이구, 여서(여기서) 또 보네”하며 능청스레 농을 던지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차를 타고 손쉽게 이곳저곳을 오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이곳을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어 ‘시거리 식당’은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10년 전 큰 태풍이 불 때 간판을 내리고 그 이후 미처 다시 간판을 달지 못했고 그런 우연한 사연으로 현재까지 ‘간판 없는 자장면집’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나 수 십년 단골들에게는 이곳은 여전히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시거리 식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35년을 한결같이 짜장 외길
이 집의 맛의 비법은 다른 자장면집과 달리 자장면에 고기를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파와 감자, 춘장만으로 맛을 내고, 대신 자장면 위에 송송 채 썬 파와 빨간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약간 매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낸다. 이것은 다른 메뉴인 우동도 마찬가지. 덕분에 이곳 자장면과 우동은 아무리 먹어도 느끼하거나 질리지 않는다.
푸짐한 양에도 젓가락질 포기할 수 없는 손님들이 직접 ‘곱빼기’를 써서 붙일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하다고. 볶지 않고 끓여 내는 이곳만의 특별한 비법.
“우리 집 자장면은 35년 전 맛 그대로예요. 35년 전이면 정말 못 먹고 못 살 때인데, 그때 우리 집 자장면을 맛보신 분들은 지금도 그때 맛을 못 잊고 찾아오세요. 그 힘든 시절 먹은 자장면 맛이 평생 잊히지 않는 거예요.”
김세경 씨의 말처럼 어린 시절 먹었던 자장면의 맛은 평생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법이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졸업식 날 먹은 자장면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장을 보러나갔다가 시장에서 먹었던 자장면일 수 있다. 주변 어르신들에겐 ‘시거리’의 자장면이 그랬다.
김세경 씨가 35년 전의 맛을 한결같이 고집하는 것도 그 추억의 맛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 뚝심을 인정받아 유명 방송에서 달인으로 소개된 적이 있는 분이다. 자장면을 향한 그의 고집과 정성은 이미 장인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다. 비록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젊은이 입맛엔 김세경 씨의 담백한 자장면이 입에 안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는 괜찮단다. 힘들었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자신의 자장면을 계속 먹으러 와주시는 손님들이 있는 이상 가게를 그만둘 생각은 없다고.
“예전에 우리 가게에 무척 자주 와주시던 단골손님이 계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안 오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러실까, 하고 며칠 동안 궁금해 했는데, 갑자기 아들 내외를 데리고 가게를 찾아오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분이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으셨대요. 죽기 전에 우리 집 자장면이 드시고 싶으셔서 찾아왔다는데, 그때 기분이 참….”
가게를 운영해온 35년간 숱한 손님들이 이 ‘간판 없는 자장면집’을 거쳐 갔다. 무수한 사연을 품고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기에 그는 오늘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자장면에 추억을 담아 판다.
‘간판 없는 자장면집’. 그 곳에서 파는 맛과 추억이 오래도록 우리 곁을 지켜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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