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10 15:01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chevron_right 문화&공감
일반기사

[완주 삼례읍 주공2단지 한내마을 '호호장날'] 좋아서 부르는 이웃들 세대 아우르는 웃음꽃

아파트주민 10여명 기획…마지막주 토요일 장 열어 / 집에서 쓰던 생활용품들…직접 만든 먹거리도 내와 / 재능 살려 즐거움 나누고…일상 바꾼 공동체 큰 기쁨

▲ 지난달 26일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주공2단지 아파트에서 열린 한내마을 호호장날 풍경.

△ 완주삼례주공2단지 아파트 사람들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주공2단지 아파트. 이곳의 주민 10여 명은 아파트 놀이터 공간에서 지난 8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자그마한 장을 열었고 또 이번 달 30일에도 장을 연다. 이름하여 ‘한내마을 호호장날’이다. 왜 호호장날일까. ‘호호’는 한자로 좋아할 호(好)에 부르짖을 호(號)인데, 여기서 뒤의 호(號)는 아파트 각 호수를 의미한다. 각 호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좋아하여 함께 부르며 재능을 나누고 어울린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삼례 주공아파트 2단지를 한내마을이라 한다.

▲ 한내마을 호호장날 행사를 마련한 주민 기획자들의 회의 모습.

주민 몇몇이 주도하여 벌이는 장날인지라 5일장 시장같이 노점상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거나 다양한 팔거리들을 가지고 나온 장사치들과 이들을 구경하는 손님들로 요란하지도 않다. 사실 이들의 목표는 장사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한내마을 주민들의 ‘물물교환’의 의미가 더 크고 이런 장날을 통해 아파트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공동체적 일상을 꿈꿔보자는 취지가 더 크다.

 

△놀 줄 아는 아이들

▲ 지난달 26일 열린 첫번째 호호장날에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참여해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다. 장터 무대행사인 장기자랑·춤대회에 아이들의 호응이 좋았다.

지난 8월 26일 첫 번째 호호장날 풍경. 오전 11시가 넘어서자 놀이터에는 장날을 준비하는 주민들 외에 20여명의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자원봉사 활동을 나왔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하는 일은 주변 정리나 부스 활동, 장기자랑 진행 등이다. 자원봉사하는 이 아이들 말고 더 많은 초중등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시끌시끌하게 떠들고 놀면서 호호장날의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토요일에도 일을 하는 부모들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 어려우므로 이런 이벤트가 있으면 아이들이 좋아한다. 장터의 소비자 몫을 톡톡히 한다.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3시경까지 4시간이나 계속되는 장터에 아이들은 무대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끼리끼리 모여 노느라 목도 마르고 허기도 지기 때문에 음료나 떡볶이, 부침개 따위들을 사먹곤 한다. 대개 부모가 사서 함께 먹거나 건네준다. 소규모 무대행사는 머리에 물 뒤집어 쓰기 게임, 장기자랑, 춤대회 등을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이에 호응하며 즐겁게 참여했다. 아이들은 계획된 일정표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놀면서 주최 측의 프로그램에 그때그때 호응해주는 식이다. 놀 줄 아는 아이들이다. 7월달에는 수영장을 운영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단다.

 

△아빠랑 인형 사러 나온 자매

그렇다고 호호장날이 아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주민들이 끊임없이 오고 갔다. 장터의 구성은 주 판매대, 작은 탁자형 부스 6개였다. 탁자형 부스에서는 여러 종류의 생활물품들이 판매되었다. 신발, 작은가방 등 여성용 물품, 피규어 장난감, 인형 따위의 아이들 용품, 아주머니가 판매하는 뜨개질로 직접 집에서 뜬 수세미와 그 원료들, 할머니가 다 된 황의숙 씨가 판매하는 청국장, 청량고추, 옥수수, 마늘, 반찬, 보리수청, 쪽파양아치, 호박 류의 농산물 및 가공식품, 자원봉사 아이들이 판매하는 물총, 부채, 팬시우드 거울, 야광팔찌 따위들의 이것저것들과 색칠하기 체험…. 어느 주민은 일치감치 나와 농산물 등 7만원 어치의 물건들을 구입하였다. 아이들 장난감이나 인형들은 거의 다 팔렸다. 아이가 직접 판다. 장난감은 500원, 1000원하는 싼맛에서인지 아이들이 차지했다. 두 어린 자매여아는 아빠와 함께 두번씩이나 와서 인형들을 사갔다.

 

△맛솜씨 장인의 농산물 호응 좋아

 

아빠 등 가족과 함께 나와 여성용 물품 ‘장사’를 하는 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싶었는지 도망(?)가려 하자 아빠가 “사장이 도망가면 어떻게 해? 팔아야지. 손님들 오게 춤이라도 춰봐!” 하곤 재치있게 붙들어 놓았다. 아이는 자기가 ‘사장’인 줄 몰랐는지 “내가 사장이야?” 하며 다시 눌러 앉는다. 그러나 이내 슬그머니 부스를 빠져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 이 가족은 ‘장사’를 핑계로 장날놀이를 체험하며 즐기는 듯 했다.

 

할머니들은 황의숙 씨가 파는 농산물이나 가공품을 선호했다. 직접 짓고 만들었다. 된장 등 농산물 맛솜씨가 장인정신으로 녹아들어 일품이다. 손님들은 거의 다 아는 사람들이다. 음식을 나눠 먹고 오랫동안 담소를 나누며 호박 따위들을 사갔다. 주최 측으로부터 판매 권유를 받고 쑥스러워 하다 참가했으나 호응이 좋았다.

 

주민 이현주 씨는 직접 뜨개질한 천연 수세미를 가지고 나왔는데 제법 팔렸다. 집에서 뜨개질 해 선물용으로 쓰곤 하는데 호호장날에 가지고 나와 봤단다. 뜨개질하는 법을 무료로 가르쳐준다고 안내글도 써놨다. 한쪽 켠엔 집에서 만든 대추전과를 가지고 와 무료로 나눠 주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모양이었다.

 

△공론장의 형성

 

호호장날을 여는 몇몇의 주민들은 누구일까. 이들은 완주군생활문화동호회네트워크가 주관하는,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참여자들 10여명이다. 프로그램 강사들인 김미혜, 고민경, 이은정 씨도 한내마을 주민들이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 저녁 경로당에 모여 방향제 등 천연제품 체험, 퀼트 및 미싱 활동, 동네 솜씨장인과 함께 하기, 한내마을 사용설명서 만들기 등의 교육활동을 한다. 때로는 누군가 가져오는 비빔밥을 한 솥에 맛갈스럽게 비벼먹으며 온갖 수다로 놀면서도 교육활동과 호호장날 기획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런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아파트 내 일상적인 삶들에서 평소 느꼈던 문제들을, 개인적인 불만으로 넘어가거나 남들한테는 꺼내어 말하지도 못하며 가족들 있는 데서만 흉보듯 말하곤 했던 것들일텐데, 사소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지만 좀더 공적인 테이블에서 공통관심사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기획자 노은희 씨의 말이다.

 

△9월 30일의 호호장날 기대

▲ 고길섶 문화비평가

“서민형 임대아파트인 주공아파트 2단지 한내마을 주민들은 농지를 택지로 개발하여 지어져서 주민들이 서로 낯설고 마을의 전통적인 인지상정이나 역사문화가 없어요. 그러다보니 각자도생하느라 바쁘고 마을일에 주민으로서 나서지 않고 공동체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동체적인 문화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주민교육을 기획했어요. 또 재능과 특기 있는 주민들을 발굴해서 서로 나눌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지니 좋아요. 그 교육활동의 하나로서 교육 참여자들이 의논하고 주민들이 만들어나가는 호호장날을 기획한 것이고요.”

 

호호장날에 내놓는 물품들은 집에서 쓰던 것들이거나 직접 만든 것들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서로 교환하거나 공유한다는 의미가 크다. 아파트관리사무소도 여러모로 지원을 해준다. 500여 세대되는 아파트에 단 한명뿐인 이장 김흥자 씨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주민자치조직으로 발돋움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작은 일상들을 변화시키려는 새로운 시작, 9월 30일의 호호장날을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