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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고창인문학강의

사회현실과 대화해 온 6년…지역서 '앎의 공론장' 세우다

▲ 고창 막사발 관련 현장을 찾은 청강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창군립도서관 1층 세미나실. 여름내내 퍼부어댄 폭염 공습을 조롱이라도 하듯 청강생 40∼50명 정도의 고창 사람들은 금요일 저녁마다 ‘열공’했다. 때론 그 무더위에도 토요일이면 야외현장을 답사하는 일도 마다 하지 않았다. ‘고창 생활문화에서 인류의 삶을 엿보다’라는, 마치 ‘지역적으로 행동하고 지구적으로 상상하라’는 말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한, 강좌 대주제는 사람들을 그렇게 빨아들였다. ‘길 위의 인문학’ 강좌다.

 

올해 ‘길 위의 인문학’은 조선시대 송사나 서간의 각종 고문서들, 이재 황윤석(1729∼1791)의 저서 『이재만록』, 그리고 막사발, 판소리, 반닫이 등 고창에서 생성되어 온 문화와 문명의 흔적들을 통해 잊혀져 가는 고창의 생활사를 더듬어보자는 것이었다. 이 주제를 제안했던 이상훈 씨는 갈무리 강의를 통해 “옛 고창의 생활사를 차지했던 것들의 깊이있는 세계를 알고 그 문화적 향유에서 삶의 질을 높여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청강생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한 기획이었으나 기우였다.

 

△왜, 고창에서?

왜, 고창에서, 인문학 강의를 시작했을까. 처음 시작은 2011년 여름이었다. 강좌를 안내하는 ‘초대의 글’은 이렇게 적고 있다.

 

“고창에서 사는 것이 더 자랑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과 어울리고, 소외되어 고통 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서로의 관계로 하루하루가 즐겁고, 그리하여 삶의 수준도 더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연이나 학연보다 합리적인 것이 더 존중받고, 사소한 차이로 차별받지 않으며, 오늘의 삶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는 지역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바른 생명들의 우렁찬 함성이 어우러진 살기 좋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작은 실천을 위한 작은 만남을 제안합니다. 여기엔 손님이나 또 다른 주인은 필요 없습니다. 누구나 주인됨을 연습하고 함께 머리 맞대며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아름다운 만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문학적 탐구와 비판적 성찰

▲ 고창인문학강의 청강생들이 광주민속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군 단위의 자그마한 지역은 공론장이 형성되기 어렵다. 지역신문이 공론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를 포기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지역사회에서 정당하고 합리적인 비판적 발언이나 심지어는 양심적 발언마저 튄다, 싸가지 없다, 뭘 모른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처세술 분위기가 대세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나마 비판적 인사들마저 양심적 가치를 저버리고 권력의 성채로 들어가거나 이해관계에 얽혀 특정발언 자체의 회자를 금기시할 때는 공론장 자체가 무력화된다. 신문에서건, 공식 테이블에서건, 술자리에서건, 일상대화에서건 공론장이 위협받으면 민주주의의 기초가 무너진다.

 

고창도 그런 때가 있었다. 충격에 휩싸인 몇몇의 사람들은 성찰했다. 그들은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알고, 소통하고, 공감하며 대안을 이야기하는 공론장이 고창사회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인문학적 탐구와 성찰을 매개로 작은 공론장이라도 형성시켜야 지역사회가 숨쉬며 산다는 결론으로 그들이 탄생시킨 것이 바로 ‘고창인문학강의’다. 그들은 ‘고창의 인문학 강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나섰다.

 

△일하는 사람들이 의기투합

40∼50대의 젊은 고창 사람들이고 하는 일들도 제각각이다. 김동환(농민), 문병무(자영업), 유성기(한의원장), 윤종호(출판편집인), 이상훈(농민), 정일(교사) 씨가 처음 의기투합했고, 해를 거듭하면서 안후상(교사), 이호근(도의원), 박종훈(목사), 박기전(목사), 최재일(자영업), 이대건(출판인) 씨 등이 합류했다. 이들은 여름과 겨울 강좌를 시작하기 전에 모여 기획하고 준비한다.

 

대표는 없다. 총무인 김동환 씨가 사실상 대표일을 한다. 거의 대부분의 실무적인 일들을 도맡아 한다. 윤종호 씨가 일을 나누고는 있지만 전체 구성원들 사이의 역할 배분이 취약한 상태다. 각자의 일이 바빠서다. 그나마 몇몇이라도 모여서 논의하는 느슨한 구조에 치열한 문제의식이 이들을 지탱시키온 힘이다.

 

고창군립도서관과 함께 하는 ‘길 위의 인문학’으로 강좌가 나가면서부터는 한국도서관협회의 예산 지원이 있어 넉넉해졌지만 그 이전 독립강좌일 때는 회원 회비와 청강생 참가비로 강사비를 충당했다. ‘길 위의 인문학’이 정부 돈에 의존해 강좌가 이루어지다보니 아무래도 강좌 주제 선정에서 자기검열(?)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상훈씨는 말한다. ‘고창인문학강의’는 할 말을 제대로 하자는 것이 초심이기 때문이다.

 

△실천과 연결

 

‘고창인문학강의’의 초심은 실천과 연결되지 않는 인문학은 의미가 없다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지역의 환경이나 농업, 교육 문제부터 화두로 삼았다. 첫해 강좌에서는 ‘먹거리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후쿠시마 핵사고와 한국의 핵발전 정책’, ‘시골살이의 인문학’, ‘지역자치와 풀뿌리민주주의’, ‘조선후기 실학과 근대사상’ 등의 이슈로 고창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고등학생들의 꾸준한 참여도 돋보였다. 인생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

 

‘지역경제와 협동조합’, ‘진정한 연대는 생명연대다’, ‘역사와 정치외교, 지역과 지방’, ‘종자까지 빼앗긴 한국-우루과이라운드에서 FTA까지’, ‘지방자치와 지역정치’, ‘마을의 민주주의’, ‘통일을 보는 새로운 시각’, ‘세월호 이후 우리의 삶’, ‘실업, 불안정노동, 빈곤과 기본소득’, ‘위기의 국가, 좋은 삶은 가능한가’, ‘고창과 동학농민혁명’ 등이 지금까지의 강좌 주제들이다.

 

△시대정신과 생활사의 대화

 

김동환 씨는 “인문학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설명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는 주로 해당주제의 전국적 명사(?)들이나 전문적 활동가들이 강사로 초빙되었다. 정일 씨의 말이다. “지역 안에서만 매몰되어 시야가 좁혀져 있는데, 다른 지역이나 중앙 담론을 직접 접할 수 있어서 시야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되었지요. 온라인이나 책으로만 접하는 것과는 질감이 다르고 생생하니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거대담론의 지식과 고창이라는 지역학적인 미시담론의 생활사와 대화를 나누는 공론장의 역할이 앞으로의 과제로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강좌의 주제 ‘고창 생활문화에서 인류의 삶을 엿보다’는 그 시도로 보인다. 고창이라는 생생한 지역학적 맥락과 문화에 근거한 삶-지식들의 생산과 소통은 결국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생업에 바쁜 사람들의 인문학적 말걸기 ‘고창인문학강의’의 갈 길이 멀다.

▲ 고길섶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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