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군산은 여러 측면에서 호남의 스포츠를 선도했다. 축구·야구·농구·배구단 등의 현대 구기종목들이 군산에서 일찍이 꽃을 피웠다. 1930년대 지역 체육회를 꾸렸고, 실내체육관도 다른 지역에 앞서 만들어졌다. 개항도시로 경제적 부가 쌓이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역 체육회장의 경우 예산지원을 받으며 단체장이 맡았으나 군산의 경우 70년대 중반까지 민간에서 맡았다. 일제 강점기 쌀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해 만든 군산체육관이 설립된 것은 1946년. 당시 전국적으로 실내체육관이 설치된 곳은 서울과 인천 정도였다. 군산체육관을 통해 태권도와 권투 등 실내경기 종목의 엘리트 선수들이 대거 배출됐다.
70년대 이후 군산상고와 함께 야구도시로 이름을 떨쳤지만, 실제 군산 체육을 선도한 것은 축구였다. 1920년 창설된 ‘평화축구단’은 군산 체육회의 모태가 됐다. 선교사들에 의해 축구가 도입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평화축구단 이전인 1900년대 초에 벌써 기독교계 학교인 군산영명학교 등에서 축구 활동이 이뤄지기도 했다. 전주를 본거지로 한 전북축구단과 군산의 평화축구단간에 매년 춘추로 2차례씩 경기가 펼쳐졌으며, 1921년 남조선 소년 축구대회를 군산에서 열기도 했다.
현재 군산에서 열리고 있는 금석배 전국학생축구대회는 이런 군산 축구의 전통과 저력에서 나왔다. 한국 축구사에 큰 자취를 남긴 채금석 선생(1904~1995)의 이름을 따 1992년 창설된 이 대회는 올해로 26회째다. 만주·일본 등에서도 활약했던 채금석 선생은 광복 후 군산 고향으로 내려와 제자들을 길렀다. 그가 키워낸 청소년 및 국가대표 출신만도 20명에 이른다. 그 자신 53세 나이에 전국체전 전북대표로 출전한 것도 축구사의 기록이다.
금석배는 호남권 유일의 전국학생축구대회라는 점만으로 지역 체육의 큰 자산이다. 지금까지 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만 7만명에 이른다. 올 대회에는 차범근 U-20월드컵조직위 부위원장도 참여해 출전 선수들을 격려했다. 금석배가 갖는 역사성과 상징성에 걸맞은 지역의 관심과 성원이 아쉽다. 김원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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