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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과 향단이

한국의 대표적 고전인 춘향전은 판소리뿐 아니라 창극·연극·뮤지컬·오페라·드라마·영화 등의 다양한 장르를 통해 국민적 사랑을 받아왔다. 시대를 초월해 춘향전이 꾸준히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의 시대적 상황에 맞서 춘향이 자기실현을 이루는 데서 독자와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춘향전의 주인공은 물론 춘향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춘향이 사랑을 이루는 데 촉매제 혹은 장애물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인물들의 역할이 하찮다는 말은 아니다. 방자와 향단이 있기에 스토리가 풍성해지고 해학이 넘친다. 변사또가 없다면 갈등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며, 춘향을 옥바라지 하는 월매의 애틋한 모정은 긴장감을 놓치 못하게 하는 기제다.

 

춘향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이렇게 뚜렷하고,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인 까닭에 종종 정치권에 불려 나온다.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대표에 선출된 후 “향단이가 춘향이 돼부렀다”고 으쓱했다. 그러나 그의 춘향이 시절은 총선 패배와 대통령 탄핵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인 홍준표 경남지사가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춘향인줄 알고 뽑았더니 향단이더라”고 한 것이 강렬했다.

 

홍 지사는 “우파 대표를 뽑아서 대통령을 만들어놓으니까 허접한 여자하고 국정을 운영했다. 그래서 국민이 분노하는 것이고, 그래서 탄핵당해도 싸다”고 곁들였다. 홍 지사는 지난해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회에 가보면 방자 주제에 이도령 행세하는 사람도 있고, 향단이 주제에 춘향이 행세하는 사람도 있다”고 올렸다. 이에 대해“촛불은 바람에 꺼진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던 김진태 의원은 홍 지사를 향해“그가 이몽룡인 줄 알았는데 방자였다”고 비꼬았다.

 

정치적 수사라고는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춘향 역할은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홍 지사의 말대로라면 춘향이는 최순실씨다. 춘향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최씨를 과연 춘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춘향과 향단이로 비유된 두 사람 모두 옥중에 있다. 춘향의 억울함은 이도령이 풀어줬지만, 두 사람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처지다. 부패 관료 앞에 희생된 춘향과 가장 큰 힘을 가진 부패 세력의 장본인을 동일시하는 것도 맞지 않다. 이걸 두고 ‘억지 춘향’이라고 해야 하나. 잘못된 비유에 춘향과 향단이가 촛불을 들지도 모르겠다.

 

김원용 논설위원

김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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