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19대 대통령 당선증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도 그런 길을 걸었다. 친구이자 동료였던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문재인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며 노무현 정권의 중심에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에는 경남 양산에 거처를 마련, 또 다른 세상을 꿈꿨다. 그의 인생이 결정적으로 바뀐 것은 이명박 정권의 집요한 보복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23일 자살한 사건이 계기다. 이 때부터 문재인의 와신상담이 시작됐다. 청와대 실세로 군림한 세월이 있었지만,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정치판은 험난했고 길은 멀었다. 당이 분란으로 쪼개지기도 했고, 사생활까지 공격받는 엄중한 검증도 기다리고 있었다.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48.02%의 득표율을 올리며 선전했지만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 잔의 쓴 맛은 가시지 않았다. 여전히 불투명한 고난의 행군이었다.
하늘은 정의 편에 있었다. 운칠기삼, 문 대통령에게 운이 따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문재인의 승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증거가 바로 이번 선거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4%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한 사실이다.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당명만 바꿔 내세운 ‘막말’ 후보가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적 지지를 받은 것은, 정상적 상황에서의 선거였다면 문재인 당선이 매우 불확실했다는 반증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대선의 최대 승자는 홍준표후보라고 할 수 있다. 어찌됐든, 몰락한 정당의 존재감을 확인시켰고,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다졌다.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최대 패자다. 참신, 깨끗, 통합, 미래 등을 내세우며 선거 초반 선전했지만, 보수와 진보를 모두 아우르려다가 정체성을 상실했다. 단기간에 치러지는 선거는 매우 선정적인 싸움터다. 표심은 이성보다 감정에 더 빠르게 작동한다. 초기 안철수를 향했던 표심은 방점이 훨씬 뚜렸한 문재인과 홍준표 쪽으로 대거 흡수됐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큰 성과를 거뒀다. 권성동 등 믿었던 도끼에 발등도 찍혔지만 깨끗한 보수의 틀을 갖췄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대한민국 사회에 진보의 가치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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