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문체부 조성사업으로 출발 / 전북문화관광재단, 프로그램 주도 / 꽃꽂이 등 시민 교육강좌 인기몰이
‘문화파출소 덕진’이라는 생소한 간판이 걸려있다. 분명 독수리 간판을 한 파출소 건물인데, 드로잉이며, 플라워데코며, 소설 쓰기 등 문화예술 강좌를 진행한다고 한다. ‘뭐하는 곳이지?’ 혹시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파출소로 들어온다. 그렇게 들어온 10명 중 9명은 동그래진 눈으로 “여기 파출소 맞아요?” 질문을 던진다. 파출소라는 단어에 시간이 쌓아올린 편견 때문일까?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여럿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함께 읽을 수 있는 책과 따뜻한 조명이 존재하는 파출소 공간을 사람들은 낯설게만 느끼는 듯하다.
△ 온기를 잃어버린 유휴 공간, 파출소
치안기능 유지를 위해, 주민들의 접근성이 높은 생활밀착 공간에 파출소는 자리한다. 그만큼 파출소는 주민들의 발길이 가 닿는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가겠다며 꽤 오래전엔 담장도 허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출소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낯선 공간이었고,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공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2004년 파출소 효율화 정책의 시행으로 2~3개의 파출소가 지구대로 통합하게 된다. 이 때 남은 건물을 개조하여 ‘치안센터’를 만들게 되는데, 치안센터는 24시간 근무가 아닌 주간 근무 위주의 민원상담 전용공간으로 기능하면서 사람들의 들고 남이 없는 유휴공간에 가까운 시설이 되었다. 제 기능을 상실한 공간은 점점 사람의 온기를 잃기 시작한다.
△ 경찰청과 문체부, 전혀 다른 존재들의 이유 있는 상상
사람의 온기를 잃어버린 파출소는 국가 재산관리 주체인 기획재정부에 인계되어 공개매각을 거치는 작업이 진행됐다. 얼마 전까지 우리의 치안을 담당했던 파출소는 철거되거나 개인 소유의 공간이 되기 시작했다. 전주의 경우도 송천동에서 동물원으로 들어가는 오르막길에 위치했던 파출소가 지금은 카페로, 관통로 대로변에 있던 파출소가 악기점과 법률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유휴 파출소의 공익적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고,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경찰청.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부처가 만나 이유 있는 상상을 시작했다.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의 운영을 통해 주민들의 자발적 예술 활동 공간으로 파출소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경찰청은 공간의 활용 등 하드웨어 부분을, 문체부는 인력, 프로그램, 공간조성 등 소프트웨어의 협력을 통해 그 간의 치안기능에서 지역 문화예술 커뮤니티로 파출소의 기능을 확장하겠다는 내용으로 ‘문화파출소 조성 및 운영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큰 그림을 경찰청과 문체부가 그렸다면,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나가는 것은 이제 지역의 역할이다. 문체부와 경찰청이 함께 2016년 3월, 전국 경찰서를 대상으로 한 수요조사를 통해 치안센터 10개소를 문화파출소로 선정하였다.
전북의 경우 최근까지 범죄피해자종합지원센터로 활용되던 (구)금암파출소도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할 주관처를 찾고 있었고 전라북도 문화관광재단이 3년간 운영권을 갖게 되면서 2016년 10월, 본격적으로 지역 내 문화파출소 조성을 시작하게 된다.
혼자여도 즐겁고, 여럿이와도 즐거운 공간. 더불어 주민들의 이야기가 쌓여 힘이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관점으로 고민하고 설계했다. 만들어진 공간에 힘이 생기려면 사람들의 드나듦과 그들의 향기가 존재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의 문화파출소 덕진은 그 향기를 묻히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공간마다 진행되고 있다.
△ ‘문화파출소 덕진’서 즐기는 다양한 프로그램
1층 때론더불어의 공간에서는 꽃꽂이가 한창이다. 잔잔한 음악이 사람들의 감성을 깨운다. 다들 싱글벙글 꽃향기에 취한 듯 미소가 입가에 가득하다. 강사님이 알려주는 대로 꽃을 배치 하며,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낸다. 2층 볕드는 방에서는 도화지에 꽃을 그리고 있다. 도화지 옆에는 신발이 하나씩 놓여있다. 도화지에 그린 그림을 신발에 옮겨 그려 나만의 작품 신발을 만든다. 처음 잡아보는 붓이 어색하기만 하다. 선생님의 붓놀림을 따라 열심히 꽃그림을 그린다. 이외에도 문화파출소 덕진에서는 프랑스자수, 손바느질, 시 쓰기 등 요일마다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 파출소 공간을 낯설어 하던 주민들도 이제는 익숙한 듯 파출소를 드나들고, 다양한 강좌의 구성에 다음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대하고 기다린다.
△ 일상과 연결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 설계 운영
대중의 삶에서 예술은, 미술관이나 극장 등 차려입고 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삶에서 분리된 소비적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패러다임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삶과 분리된 예술이 아닌, 일상적 삶 안에서 주체자로 경험하고 향유하는 문화예술로 ‘생활문화’라는 개념이 만들어 지고 확산되고 있다. 문화파출소는 지역주민들의 생활권 안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지역주민 누구나 쉽게 와서 배울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문화파출소는 일상 속 문화예술이 실천될 수 있는 매개이자 거점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다. 그래서 거창한 예술 활동이 아닌, 바느질, 플라워데코, 소설쓰기 등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의식주와 연결되는 일상 속 문화예술 활동부터 시작해 주민들의 삶속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 문화파출소 덕진, 다른 공간으로 온기 나눌 수 있기를
전주 덕진경찰서가 가지고 있는 파출소라는 공간과 전북문화관광재단(문화예술교육팀)이 다년간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하며 축적한 노하우들이 만나 시너지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주민들의 치안을 위해 접근성이 좋은 곳에 만들어진 파출소 본래 의미와 역할을 퇴색시키지 않고, 즐거운 방식으로 사람의 온기를 쌓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 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역에 활용가능하고 잠재력이 높은 유휴공간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 사업을 시작으로 온기가 없었던 파출소 공간에 사람의 온기가 가득 채워지고, 그 온기의 전도로 지역에 많은 유휴 공간이 발굴되고 활용되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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