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김제 가족간첩단

“김제 들판은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고 있는 곳이었다”

 

조정래 작가의 장편 소설 ‘아리랑’에 나오는 구절이다.

 

김제 들판중에서도 진봉면은 가장 넓은 황금들녘인데 망해사와 심포항은 진봉의 자랑거리다.

 

새만금공사로 인해 지금은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심포항은 늘 백합을 찾는 이들로 붐볐고, 풍부한 농산물과 바다가 가까워 해산물 또한 지척에 있었기에 인심은 넉넉했고, 사람들 마음은 따뜻했다.

 

하지만 한가로운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원고사 마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행이 한 가족을 덮쳤고, 누명이 벗겨지기까지 무려 34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와중에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버렸고, 이미 고인이 된 이들의 사무침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게됐다.

 

이른바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5공 초기인 1982년 8월 전국을 뒤흔들었던 큰 사건이다.

 

골자는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씨가 북한에 나포됐다 돌아온 뒤 조카인 최낙교, 최낙전 씨를 포섭해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다.

 

이들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기술자 이근안씨 등으로부터 40여일간 고문을 받았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자백은 증거의 여왕’이라는 법언이 통용되던 시절, 고문기술자 이근안씨가 활동하면서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것만 빼고는 다 할 수 있었던 곳이다.

 

이근안씨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던 김근태 전 장관을 고문했던 희대의 경찰관이다.

 

최씨 등은 이후 공안통이던 정형근 검사에게 넘겨져 수사를 받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최을호 씨는 사법살인에 의해 사형을 당했고, 김제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큰 조카 최낙교 씨는 조사 도중 구치소에서 사망했다.

 

자살인지, 고문치사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는게 유족측 주장이다.

 

동네 이장이던 최낙전씨는 9년간 옥살이를 한뒤 석방됐으나 4개월만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잊혀졌던 이 사건은 지난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게됐다.

 

재판부는 법원의 영장도 없이 불법 체포돼 장기간 구금상태에서 수사를 받았고, 각종 고문과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동네 주민들은 내달 광복절을 즈음해 유가족들이 고향마을을 찾는다는 소식에 조촐한 환영행사라도 가질 예정이다.

 

소설보다도 더 허구같은 일이 바로 우리 주위에서 불과 한 세대 이전에 벌어졌음을 잊어선 안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위병기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정부 “용인 반도체산단 이전 고민“…전북 “새만금이 적지”

정치일반전북 찾은 조국 "내란 이후 세상은 조국혁신당이 책임질 것"

김제김제에도 호텔 짓는다...베스트웨스턴-김제시 투자협약, 2028년 개관

김제김제지평선먹거리통합지원센터 개관식

전시·공연새로운 가능성을 연결하다…팝업전시 ‘적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