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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힌츠페터'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 지난해 79세 나이로 작고한 독일 언론인이다. 독일 공영방송 아에르데 티브이(ARD TV) 소속 카메라 기자였던 그는 1970년대와 80년대 일본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1980년 5월, 힌츠페터는 일본에서 ‘동아시아 선교회’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던 독일인 슈나이스목사로부터 광주의 움직임(?)을 듣는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광주로 달려가 계엄군치하에 있던 광주의 참혹한 현장을 카메라로 담는다.

 

언론조차 철저하게 통제됐던 암흑의 시간. 5월 18일과 19일 광주의 참상은 22일 그가 촬영한 영상을 통해 처음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들만 알지 못했던 광주의 진실을 현장의 기록으로 고발한 기자, 그가 힌츠페터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17일 오전 현재, 누적 관객 수 922만 명을 넘어섰으니 1천만 명 관객 돌파는 코앞이다. 통계를 보니 광복절이었던 지난 15일 하루에만 이 영화를 본 관객 수가 57만 명이나 된다. 지난 2일 개봉 한 이후 영화 관객 수는 파죽지세, 평일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고공행진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택시운전사’는 영화 속 이름인 김만복이란 택시운전사가 주인공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존재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영화의 토대를 제공한 이가 바로 힌츠페터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18일과 19일의 기록을 독일 본사를 통해 알린 이후 23일 다시 광주로 들어가 계엄군이 물러나고 시민군이 주인이 된 광주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그해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고 김대중에 대한 사형이 선고되자 <기로에 선 한국> 이란 다큐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80년대 중반 전국의 성당과 대학가에서 은밀하게 상영되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광주민중항쟁의 진실> 이 바로 그 다큐다. 현재 남아 있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대부분의 영상 자료 역시 그가 수집한 것들이다.

 

힌츠페터는 지난 2003년 제 2회 송건호 언론상 수상식에서 당시의 상황을 “오로지 내 눈으로 진실을 보고 전하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로 달려간 이유가 궁금했다. 더구나 2004년 심장마비로 쓰러져 생사를 다툴 때에도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히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을 정도로 한국과 광주에 애정이 깊었으니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장훈 감독이 투병 중이던 힌츠페터를 찾아가 광주에 간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기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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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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