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맥주 역사를 이리 장황하게 들여다본 것은 전북이 두 맥주 회사간 경쟁의 한복판에 섰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맥주시장의 판도를 바꾼 조선맥주의 ‘하이트’브랜드를 탄생시킨 곳이 바로 완주 봉동의 전주공장이었다. 조선맥주는 ‘하이트’브랜드를 내세워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펼쳤다. ‘암반천연수는 지구가 만든 물’ ‘100% 암반천연수로 만든 맥주는 하이트뿐입니다’ 맥주를 끓여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수돗물맥주를 그냥 드시겠습니까’는 도발적인 광고를 통해 경쟁 라이벌과 차별화를 꾀했다. 조선맥주는 이를 기반으로 시장 점유율 만년 2위에서 1위로 끌어올리며 국내 맥주시장 단일 브랜드로 10여년간 독보적인 자리를 지켰다. 1998년 회사 이름까지 하이트맥주(주)로 변경했다.
그러나 오늘날 맥주시장의 판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국내 맥주시장의 양강 구도는 롯데주류의 참여에 이어 수입맥주의 시장 점유율이 30%대까지 육박하면서 옛말이 됐다. 수입 맥주도 미국 일변도에서 유럽과 일본, 중국 등의 대형 맥주회사들까지 가세하며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여기에 2000년대 초 소규모 맥주 면허가 허용되면서 하우스 맥주가 가능해졌으며, 최근에는 소규모 맥주 관련 법 개정으로 외부 유통이 허용됨에 따라 하우스 맥주 또한 기존 맥주업계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대내외적 위협 속에 하이트진로(주)가 적자 누적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전주·홍천·마산공장 3곳 중 1곳을 매각하기로 공시했다고 한다. 그 중 전주공장이 유력하단다. 전주공장에 힘입어 회사를 크게 성장시켰던 하이트진로가 위기 극복의 돌파구로 전주공장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게 아이러니컬하다. 물론 사주는 바뀌더라도 공장은 남을 것이다. 하지만 하이트 브랜드를 탄생시켰던 전북과 애환을 같이 했던 하이트가 다른 이름의 브랜드로 다가선다는 게 낯설다. ‘기왕이면 하이트’라고 외쳤던 지역민들의 ‘하이트 사랑’도 속절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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