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일자리 만들기와 일자리 없애기

공용주차장을 빠져나오다 낭패를 봤다. 미리 현금을 준비해 여유 있게 출구로 진입했으나 며칠 전까지 있던 주차비를 받던 공간이 없어진 것이다. 그 공간에 대신 놓인 기계식 계산기를 보니 신용카드를 꼽고 주차비를 해결하라고 되어있다. 뒤에 차가 밀려있으니 다시 가방을 뒤져 카드를 찾는 일이 황망했다. 창문을 열고 카드를 꼽기에는 너무 멀어 결국 차에서 내려 카드를 꼽고 다시 빼내고 나서야 출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신용카드 전용 주차장이란 안내문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한옥마을 입구의 공용주차장 이야기다. 신용카드 한 장이면 들고 날 수 있으니 훨씬 간편해지고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

 

며칠 전 역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역 주차장도 얼마 전까지 주차비를 받는 근무자가 있었으니 기계식으로 바뀐 것은 최근일 터다.

 

문득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졌다.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주차장이니 파견되었던 공무원이라면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겼을 테지만 혹시 일용직으로 근무했던 사람이라면 일자리를 잃지 않았을까.

 

꽤 오래전 일본의 NHK 방송국 관련시설을 둘러보았다. 그때 들른 자료실에서 인상 깊은 풍경을 만났다. 릴 테이프로 보관해오던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그 자료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다. 알고 보니 젊은 시절 NHK에 근무했거나 관련 분야에서 일하다 은퇴한 원로들이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인간의 손을 선택한 전략은 분명 이유가 있어 보였다. 은퇴자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게 된 것도 그렇거니와 일의 전문성을 더할 수 있으니 좋은 선택이다 싶었다.

 

통계청이 내놓은 최근의 고용동향을 보면 역대 최고치를 넘나드는 청년 실업률은 개선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사실 일자리의 절박함은 청년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1순위가 ‘일자리 대통령’이었을까. 그 여파를 몰아 자치단체들도 일자리 정책을 내세우고 나섰다. 그러나 공공일자리를 늘린다는 정책의 면면은 그 대부분이 공무원 일자리를 보충하는 쪽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 성과야 어떤 형식으로든 드러나겠지만 최근 늘어나는 공공주차장의 기계식 계산기를 보면서 공공기관의 일자리 만들기가 혹 형식적 치레에 매어 있지는 않은지 궁금해진다.

 

주차장은 단적인 예지만 편리함과 경제성만을 내세워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로 대체하면서 없어지는 일자리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별도의 예산을 쏟아 공공 일자리를 만들기에 나선 공공기관의 사업도 늘어나고 있다. 모순이 따로 없다.

김은정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정부 “용인 반도체산단 이전 고민“…전북 “새만금이 적지”

정치일반전북 찾은 조국 "내란 이후 세상은 조국혁신당이 책임질 것"

김제김제에도 호텔 짓는다...베스트웨스턴-김제시 투자협약, 2028년 개관

김제김제지평선먹거리통합지원센터 개관식

전시·공연새로운 가능성을 연결하다…팝업전시 ‘적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