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한신협 공동기획 지방분권 개헌] 제1부 자치분권 선진국을 가다 ① 개헌의 힘 증명한 '프랑스 리옹' - 쇠락한 도시에'분권'하나 보태니 새활력이 생겼다

강력한 지방 조직 구축…대도시연합 '메트로폴' / 지역문제 자체적 해결

▲ 지난해 9월 메트로폴 리옹 회의실에서 열린 정례회. 코뮌 및 코뮌협력체에서 선출된 167명의 의원들이 리옹 권역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 /사진 제공=메트로폴 리옹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수직적인 위계에 따라 모든 권력이 대통령과 중앙 정부에 집중된 구조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중앙 집권적 성격의 헌법은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21세기 급변하는 환경 변화와 다양한 시대적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 급성장하던 대한민국은 정체 상태로 접어들었고, 지역은 고사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선거로 뽑으면서 형식적인 지방분권이 시작됐지만 한계는 뚜렷했다. 환경, 경제, 복지 분야에서 지역마다 고유한 문제들이 있지만 지방정부는 맞춤식 정책을 펼칠 수 없다. 열악한 재정 상태와 제한된 권한 때문이었다.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먼저 경험한 선진국들은 강력한 지방분권을 통해 이 문제를 돌파했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중앙정부가 큰 틀의 정책 결정 및 통치에만 관심을 갖고 실질적 운영 권한은 지방정부에게 이양했고, 지방정부의 권한은 헌법을 통해 보장되고 있다.

 

그 결과 지방정부는 자치 입법권, 자치 재정권, 자치 행정권을 가지고 여러 가지 혁신을 이끌어 냈다. 성공적인 지방정부의 정책들이 연방정부에 의해 벤치마킹되는 방식의 혁신 사례들이 쏟아졌다.

 

본보는 ‘분권 개헌 내 삶 바꾼다’를 주제로 한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 신년 기획을 통해 선진국들이 분권형 개헌을 통해 창출한 혁신 사례들을 살펴보고, 분권형 개헌으로 바뀌는 지역민의 삶을 생생하게 짚어본다.

 

△쇠락한 ‘실크 도시’가 유럽 제약산업의 중심지로

 

프랑스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400㎞가량 떨어진 도시 리옹(Lyon)은 과거 실크로드의 종착지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19세기 산업혁명의 여파는 리옹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리옹에는 실업자와 빈집이 넘쳐났다.

 

리옹의 극적인 변화는 프랑스 지방분권형 개헌과 궤를 같이 한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프랑스의 지방분권형 개혁은 2003년 개헌으로까지 이어졌고, 이를 통해 리옹은 강력한 지방조직을 구축했다. ‘지역의 문제는 지역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 재정자주권과 자치입법권 등을 손아귀에 넣었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거점산업과 도시재생사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오늘날 리옹은 프랑스의 명실상부한 제2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중앙과 지방은 동등한 계약관계

 

고딕풍 건물이 즐비한 파리와 달리 리옹에서는 현대적 양식의 신축건물 공사장이 지역경제의 역동성을 느끼게 했다.

 

메트로폴 리옹(La Metropole de Lyon)의 올리비에 니스 협의회장은 지방분권형 개헌을 통해 강력한 권한을 가진 지방조직이 구축되면서 이 같은 변화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1982년 시작된 지방분권형 개헌은 30여 년 간 좌파·우파 정권에 구애받지 않고 점진적이지만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냈다. 중앙정부의 행정 및 재정통제 폐지, 재정자주권 및 자치입법권 획득, 지역의회의 위상 강화 등이 변화의 핵심적 내용이다.

 

메트로폴은 강력한 지방자치 권력의 정수다. 대도시권연합이란 뜻을 가진 메트로폴은 코뮌(우리의 읍·면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최소 행정구)에 분산됐던 지방권력의 한계를 극복해 글로벌 경쟁력을 육성하기 위해 2010년 12월 만들어진 조직 체계다. 지방분권형 개헌 이후 지자체가 거버넌스 형태로 협력할 수 있게 되면서 생긴 변화다.

 

메트로폴 리옹은 리옹시를 포함해 인근 59개 기초자치단체(코뮌과 코뮌협력체 등)를 포함한다. 코뮌 및 코뮌협력체에서 선출된 167명의 의원(6년에 한 번씩 주민투표로 선출)으로 구성된 메트로폴 리옹 의회는 리옹 권역에서 발생한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메트로폴에 주어진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메트로폴은 경제개발, 주거정책, 상하수도 관리, 장애인 및 실업자 문제 등을 중앙으로부터 일임받아 처리한다. 주민세를 직접 걷어 예산 배분도 자체적으로 한다.

 

메트로폴 리옹의 올리비에 니스 협의회장은 “때때로 실시하는 중앙 정부와의 매칭 사업 외에는 중앙 정부가 개입하는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지자체 주도 경제육성과 도시재생

 

지방분권형 개헌을 통해 강력한 조직을 구축한 리옹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역을 대표할 경쟁거점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한다. 실크 못지 않게 제약산업이 유명했던 리옹은 ‘리옹바이오폴(Lyonbiopole)’이라는 혁신지구를 만들고 이 곳에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 등을 대거 유치했다. 그 결과 사노피 파스퇴르 등 세계적 위상을 갖춘 제약회사들이 리옹에 본사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올리비에 협의회장은 “프랑스의 경쟁거점산업 제도는 지자체와 기업, 연구기관, 대학 등이 주체가 되는 상향식 방식”이라며 “중앙 정부는 큰 틀에서 이를 관장하기만 할 뿐, 과제의 선정과 평가는 지자체와 기업이 직접 한다”고 말했다.

 

리옹은 지방분권 개헌 이후 성공적인 도시재생산업을 통해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대거 유치하고 있다. 리옹은 지난 1998년 자체적으로 개발기본계획을 수립, 민간 기업과 합작한 도심정비회사를 만든다. 실크 산업의 중심지였던 수변지구, 이른바 ‘콩플뤼앙스’ 지역의 쇠퇴 현상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성매매가 성행하던 슬럼가는 10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유네스코가 정하는 창조도시에 선정될 정도로 눈부신 변화를 체험했다.

 

도시재생산업이 이처럼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지자체가 사업을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손강(Saone)을 따라 50㎞에 걸쳐 산재한 14개의 코뮌이 이 사업에 주체로 참여했고, 그 결과 주택, 사무실, 공공용지 등이 편중 현상없이 골고루 분산배치됐다. 지자체가 힘을 모아 콩플뤼앙스에서 매년 연말 개최하는 ‘빛의 축제’는 프랑스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올리비에 협의회장은 “지방분권형 개헌 덕분에 파리 과밀화 문제에 공감하던 많은 프랑스인들이 리옹, 마르세유, 스트라스부르 등으로 터전을 옮겼고, 이들이 주는 활력 덕택에 지자체는 더욱 강력한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 장 버나드 파리정치대학 정치행정학과 교수 "프랑스 지방분권 역사, 1982년부터 시작"

 

“프랑스 정부가 나폴레옹 시대의 중앙집권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난 건 불과 몇십 년 되지 않았습니다.”

 

파리정치대학의 장 버나드(정치행정학) 교수는 프랑스가 중앙집권적 체제를 유지했다면 2차세계대전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늘날 세계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오랜시간에 걸친 지방분권형 개헌의 힘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에서 지방분권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1982년부터다. 좌파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지방분권형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1982년부터 2003년까지 20년간 정권에 관계없이 지방분권과 관련한 법률만 40여 개가 제정됐다.

 

하지만 중앙 정부가 지자체를 간접적으로 간섭하는 경우가 여전히 종종 있었고, 지방재정의 확충이 애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선에 머물렀다. 이에 2003년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지방분권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 개헌을 추진했다. 개정 헌법 1조는 ‘프랑스는 단일공화국으로서 그 조직이 지방분권화된다’고 선언적으로 명시한다. 개정헌법 72조는 ‘지자체는 그 수준에서 가장 적합하게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에 대한 결정할 자격을 가진다’며 보충성의 원리를 적용했다.

 

지자체가 모든 성질의 조세수입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할 수 있고, 과세표준과 세율까지 정할 수 있도록 지자체의 재정자주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지자체가 스스로의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명령권을 가진다’고 규정하며 자치입법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장 버나드 교수는 “동네마다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3만 6000여 개의 코뮌은 프랑스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면서 “자신의 코뮌에 대한 애착이 정권을 초월해 지방분권형 개혁을 이룩할 수 있었던 프랑스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리옹="부산일보" 안준영 기자>

관련기사 [한신협 공동기획 지방분권 개헌] 프랑스 지방분권형 개헌 어떻게 성공했나 - 지방분권 개헌 결실 맺으려면 지역 간 연대가 중요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올해 100대 기업 여성임원 476명 역대 최다…전체 임원 중 6.5%

정치일반'검은 수요일' 코스피 6%↓…급등 부담 속 'AI 버블론'이 직격

군산“군산에 오면, 미래 체육을 만난다”

전주전주시의회, 18~26일 행감…시민 제보 접수

정읍정읍 바이오매스발전소 건립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 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