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중산층 가문이었으나 은행업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15~16세기에 가장 유력하고 높은 영향력을 가진 피렌체 공화국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성장한 메디치가문은 학문과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피렌체를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정치 경제적으로 부침은 있었으나 18세기까지 300여 년 동안 전통과 명성을 이어왔던 메디치 가문이 단절된 것은 코시모 3세의 딸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Anna Maria Luisa, 1667~1642)가 죽은 뒤다.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가문을 이었던 루이사의 존재다. 루이사는 메디치 가문의 예술품을 모두 토스카나 대공국과 피렌체에 기증한 인물이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 활동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왔던 것을 돌아보면 이 가문이 얼마나 많은 양의 예술품을 갖고 있었을까 짐작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루이사는 ‘모든 작품들은 피렌체를 떠나지 않도록 하라’는 유언과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수많은 예술품을 모두 기증해 후대 사람들이 르네상스의 예술을 온전히 만날 수 있게 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일 타계한 구본무 LG 회장을 애도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재계 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 일반시민들과 네티즌들까지 가세한 애도 행렬은 ‘재벌’과 ‘대기업 총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어 있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소탈한 인품과 남에 대한 배려, 정도경영의 기업 정신을 철저하게 지켜왔던 고인의 삶의 궤적 덕분일 터다. 사회적 도덕적 책무를 다하고자 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편법을 써야 1등할 수 있다면 차라리 1등 하지 않겠다”던 그의 경영철학은 불법과 편법이 판치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한 대학생은 구 회장을 추도하는 손편지에 “어려움을 견디고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할 때 제게 힘이 된 건 다름 아닌 신념이었다. 회장님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인간존중의 경영이 큰 도움이 되었다”며 “평생 한번이라도 뵙고 싶었는데 참으로 아쉽다. 회장님의 신념 또한 내가 이어 가겠다”고 썼다.
우리에게도 존경받는 기업 총수가 있었다는 것, 큰 위안이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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