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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일기 쓰기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존속됐던 조선왕조 519년을 이끈 왕은 27명이다. 시대 상황에 따라 부침이 심했지만 이들 왕들은 여러 형태로 정사를 살펴 국가를 이끌었다. 더러는 역사의 죄인으로 남기도 했지만 성군으로 역사를 빛낸 왕들 또한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정치와 경제 문화 과학 등을 두루 발전시켜 조선의 황금기를 연 세종이나 할아버지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해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각종 개혁정책을 성공시켜 조선후기 문예부흥을 이끈 정조의 궤적은 빛난다.

정조는 특히 책읽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왕이다. 어려서부터 일과를 정해놓고 반드시 글을 읽었으며 읽기로 마음먹은 책을 다 읽지 못하면 밤을 새우다시피하며 책을 읽었다. 자기완성을 위해 책을 읽고 학문을 연마했던 정조가 또 하나 중요한 일과로 삼은 것이 있다. 매일 하루의 일을 점검하고 반성하며 이를 글로 쓰는 ‘일기 쓰기’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매일 세 가지로 반성했다는 ‘일일삼성(一日三省)’을 교훈으로 삼았다. ‘남을 위해 일하는데 정성을 다했는가. 벗들과 사귀는데 신의를 다했는가. 배운 가르침을 실천했는가’를 돌아보며 매일 일기를 썼다는 그는 결국 <일성록> 을 편찬하기에 이른다.

아홉 살에 시작해 즉위한 후에도 계속 일기를 썼던 정조는 1781년 규장각의 신하들에게 자신의 일기 쓰는 습관을 전하고 이것을 왕명으로 취급한 각종 문서와 사건을 공식적으로 기록한 <승정원일기> 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공식적 기록으로 후대에 전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관찬사서 중 하나인 <일성록> 은 2천 327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다. 정조가 왕세손 때부터 쓰기 시작한 <존현각 일기> 로 시작되어 순종대의 일기까지 담겨 있는데, 국왕이 통치의 거울로 삼기 위해 작성한 왕조실록과는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왕조실록이 당대의 왕이 죽은 뒤에 편찬되는 것인 반면 <일성록> 은 당시를 직접 기록한 사료이기 때문이다. 조선사회를 보다 구체적으로 연구하는데 귀한 사료로 평가받는 <일성록> 은 다른 기록에서는 볼 수 없는 중요한 사실, 특히 사회경제의 실상을 알려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조의 일기쓰기가 아니었으면 남겨지지 못했을 귀한 기록이다.

새해다. 새로운 마음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일일삼성’은 아니더라도 하루를 기록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일 일터인데, 돌아보니 일기쓰기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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