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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지정환 신부가 의사들에게 남긴 말

박성광 전북대학교병원 신장내과 교수
박성광 전북대학교병원 신장내과 교수

고 지정환 신부님은 ‘임실 치즈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사실 환자들에게는 ‘척수장애인의 아버지’로 불린다. 내가 신부님을 처음 뵌 것은 1980대에 내 환자였던 분이 신부님이 운영하셨던 ‘무지개의 집’에서 치료받고 있을 때였다. 신부님과 환자들은 한 식구처럼 ‘무지개 가족’이라고 불렀고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서 휠체어를 타는 환자들이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씩 무료로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다. 일요일에는 무지개의 집에서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셨는데 미사에 참여하지 않는 환자들도 있어서 신부님께 물었다. “저분들도 이왕 여기에 계시는 동안 미사에 참여하면 좋지 않을까요?” 나는 신부님의 대답을 수 십 년이 지났어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내가 이 분들을 도와주었다고 내 종교를 강요하진 않아요. 박 교수 같은 기독교인들은 도움을 주면 나중에 몇 명을 전도했다든지 하는 성과를 따지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아요. 내가 도와줬으니 내 신앙을 가져라 하는 것은 장사하고 다름이 없어요. 종교는 그저 베풀고 그것으로 끝나는 거지 그 대가로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는 이 분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를 존중해서 일요일에 교회에 가고 싶으면 가고 절에 가고 싶으면 다 가게 해요”라고 말씀하셨다.

교수가 되어서 90년대에 전북대병원에서 전공의들을 위한 특강시간이 있었는데 훌륭한 분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신부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다. 강의를 부탁하니까 일언지하에 인터뷰나 강의는 일절 안 하기로 했다고 하셔서 서운했는데 다시 “근데 강의는 언제요?”하고 물어보셔서 “내년 6월인데요”하니까 잠시 생각해보시고는 “하겠어요. 내가 한국에 와서 사는 동안 6개월 전에 강의를 부탁받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요. 신문사나 방송사에서는 며칠이나 몇 주 남겨놓고 부탁하기 때문에 그런데는 안 가요”하고 강의를 해주셨는데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너무도 재밌고 인상적인 강의였다. 그중에 특히 2 가지를 강조하셨는데 하나는 지금 같은 구급체계가 없던 때라서 “절대로 척추 손상이 의심되는 환자를 택시에다 구겨 넣어서 옮기지 마라. 병원에 도착하면 움직였던 다리도 못 움직이게 되니까 목을 고정시키고 꼭 구급차로 이송해라”는 말씀이었고 두 번째는 “벨기에에서는 아이들이 아프거나 할 때 꼭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야만 하는 게 아니고 의사들이 왕진을 온다. 왜 한국에서는 의사들이 왕진을 오지 않느냐? 척수장애 환자들이 병원에 한 번 가려면 여러 명이 동원되어서 의사를 3분 만나고 내일 또 오라고 하는데 의사들이 와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요즘은 119 이송은 아주 잘 되어 있지만 의사가 환자에게 가야 된다는 말씀은 귀에 생생하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몇 년 전에 소양의 한 식당에서 평복을 입으시고 식사를 하고 계셔서 인사를 드리면서 “신부님이신 줄 몰라 뵈었어요” 하니까 “그럼 내가 신부지 신랑이었겠소”하고 너털웃음을 터트리시던 신부님의 유머스러운 목소리를 그리면서, 가난하고 고통받고 소외받은 이웃들에게 너무도 큰 사랑을 주시고 친히 행동으로 가르쳐 주신 신부님께서 천국에서 영면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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