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선임기자
80년대 뜨거운 시위현장에서 불리던 운동권 가요들이 있다. 운동권에서 불리는 노래란 특성 때문에 대부분 대중가요(?)로서의 힘을 얻진 못했지만 대학가의 시위 현장이나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에서 살아남아 끝내 생명을 얻은 노래들도 적지 않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그 중 하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에 희생된 노동운동가 윤상원씨와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을 계기로 만들어진 노래다. 가사는 황석영씨가 백기완 선생의 미발표 장시 ‘묏비나리’를 차용해 썼고, 곡은 김종률씨가 만들었다.
작곡가는 노래의 의미를 이렇게 이야기 했다. “민주와 자유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분들의 용기에 대한 존경, 그들 속에 피어난 사랑에 대한 찬사, 미래에 다시 올 수 있는 불의에 맞서 싸울 각오다.”
그렇고 보니 독재와 불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열망한 이 노래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시위현장에서도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최근 전 세계의 관심이 홍콩에 쏠리고 있다.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는 홍콩인들의 거리 시위 때문이다. 홍콩의 인구 240만 명. 그중 수십만 명이 매일 거리로 나와 벌이는 시위 현장은 뜨겁다. 어느 날은 100만 명, 200만 명이 나왔다는 보도도 있으니 홍콩 사상초유의 대규모 시위라 할만하다. 우리가 이 시위를 주목하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시위현장에서 불리는 노래의 정체(?)다. 광둥어로 개사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그 주인공이다.
흥미로운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홍콩에서 불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이다. 홍콩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가장 먼저 외국어로 번역돼 전해진 나라다. 알려지기로는 1980년대 초 중반 한국과 홍콩의 운동권 학생들이 교류하면서 이 노래가 전해졌다고 한다. 이미 30여 년 전에 국가의 경계를 허물어 널리 불렸던 민중가요가 ‘임을 위한 행진곡’인 셈이다.
그 뿐이 아니다. 홍콩에 이어 대만, 중국, 캄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일본, 그리고 호주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에서 불리면서 이제는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되었으니 세계화가 따로 없다.
영상으로 전해지는 홍콩의 시위현장. 거리로 나온 홍콩인들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연대의식을 부른다. 노래의 탄생이 비장했던 만큼 그 생명의 빛이 눈부시다. 시대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노래의 힘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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