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3월, 브라질에서 대규모 반부패 조사가 시작됐다. 주 대상은 브라질 연방 정부와 국영기업, 작전명은 ‘세차 작전(Operation Car Wash)’이었다. ‘부패척결’을 내세운 정당한 법적 조치였지만, 대대적으로 진행된 이 수사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유가 있었다. 부패척결 수사의 집중적인 타깃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패 척결 수사의 표적이 된 사람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었다. 2002년부터 두 차례 연임으로 브라질을 이끌며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받았던 그는 대대적으로 펼쳐진 수사로 한순간에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추락했다. 뇌물수수 혐의였다. 실형을 선고받고 피선거권까지 박탈된 그의 정치생명은 끝난 듯 보였다. 그러나 2021년 3월, 브라질 대법원은 그의 모든 혐의를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2022년 말 치러진 39대 대통령 선거에서 브라질 국민은 그를 다시 선택했다.
위기에 처했던 브라질 민주주의의 시간을 기록한 영화가 있다. 2019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감독 페트라 코스타)다.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와 국민적 지도자 룰라가 어떤 정치적 메커니즘 속에서 탄핵되고 몰락하는가를 추적한 이 영화는, 부패 척결을 내세운 수사가 어떻게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오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세차작전’을 이끌었던 세르지우 모루 검사의 편향 논란, 이를 확대 재생산한 언론, 정치적 계산 속에서 증폭되는 갈등이 이어지는 장면들은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법의 정치화라는 풍경은 우리에게도 낯익다. 오늘의 한국 정치 역시 사법과 정치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를 묻는 시간 위에 서 있지 않은가.
한 정치인의 몰락과 복귀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완벽해서 유지되는 체제가 아니라 위기를 견디며 지켜지는 체제다. 그러니 결국 남는 질문은 민주주의의 회복력이다.
룰라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지난 23일 이재명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청와대에서 공식 환영식을 열었다. 청와대로 복귀한 이후 국빈으로 맞은 첫 해외 정상이다. 정치적 탄압을 겪고도 다시 대통령이 된 룰라와 이 대통령이 손을 맞잡고 웃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그 장면은 한 정치인의 복권을 넘어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한때 사법의 심판대에 올랐던 정치인이 다시 선택되는 과정은, 정치의 시간이 법정의 시간과 같지 않음을 말해준다.
판결은 중요하다. 그러나 판결이 정치의 끝은 아니다. 사법의 판단이 곧 정치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에서 최종 판단은 언제나 유권자의 시간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시간을 건너고 있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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