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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이제 전주에는 덕진공원이 없다

Second alt text도시에는 저마다 얼굴이 있다.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상징이다. 그것은 나무 한 그루일 수도 있고, 강물이나 연못, 골목이나 건축물일 수도 있다. 도시의 상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백 년 이어진 풍경과 축제, 세대를 이어온 추억과 예술로 축적된 이미지가 켜켜이 쌓여 비로소 한 도시의 상징이 된다.

그러니 도시의 상징은 그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공동체가 함께 살아온 시간을 담은 그릇이고, 한 도시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이 켜켜이 쌓인 공간과 풍경이다. 그래서 도시의 상징은 오랜 시간에 걸쳐 써 내려온 그 도시의 자기소개서와도 같다.

오래된 도시 전주도 전주만의 시간을 품은 상징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덕진공원이다. 덕진공원은 처음부터 공원으로 출발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 먼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덕진연못이다. 공원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38년 일제강점기, 공원으로 지정되면서다.

덕진연못은 오래전부터 전주 사람들의 삶과 함께했다. 사람들은 물가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단오날이면 한 해의 안녕을 빌었다. 조선 후기 시인 조수삼이 ‘전주팔경’에서 노래한 연꽃과 물새, 놀잇배가 어우러진 ‘덕진채련’은 전주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사람들은 세대를 이어 그곳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쌓아갔다. 누군가는 소풍을 갔고, 누군가는 데이트를 했으며, 누군가는 연꽃을 보러 갔다. 덕진공원은 어느 사이 전주 사람들이 같은 도시를 살아왔음을 기억하게 하는 공간이 되었다.

며칠 전, 전주 덕진공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섰다. 그런데 덕진공원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낯선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섰던 오래된 나무와 사잇길이 사라지고, 도서관이 된 연화정과 새로 놓인 돌다리, 정비된 덕진공원 풍경은 생경했다. 한편에 연못도 있고 산책로도 놓여 있었지만, 어느 도시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말끔한 광장으로 변한 그 공간은 더 이상 예전의 덕진공원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이 있었고, 오래된 나무들이 있었고, 그 그늘 아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이 있었고, 그 풍경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 있었다. 덕진공원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전주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온 도시의 시간과 기억의 장소였다.    

한 번 사라진 도시의 얼굴을 다시 만들기는 어렵다. 시간은 심거나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스스로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오래된 도시가 스스로를 지키는 마지막 방법일지 모른다. 

정비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잃은 것은 공원 하나가 아니다. 전주라는 도시가 오랜 시간 간직해온 얼굴이다. 이제 전주에는 우리가 기억해온 그 덕진공원이 없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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