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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환주 시장은

이환주 남원시장은 1960년 남원시 주천면에서 태어났으며 3살때 전주로 이사해 전주 완산초등학교와 전라중학교, 전주신흥고등학교,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한양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기술고시에 합격해 1985년 내부무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공직에 합격하자 아버지께서 ‘녹을 먹는 사람은 백성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라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이후 1986년 전라북도로 발령받아 도로, 하천, 도시계획 업무 등을 열정적으로 추진했으며 탁월한 업무 능력을 발휘하며 ‘신한국창조유공’대통령표창 등을 받았다. 1995년에는 남원시 관광건설국장으로 부임해 당시로서는 생소하고 신기한 음악분수대를 남원관광지에 설치하기도 했으며 1998년에는 전주시 도시개발국장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도시개발법에 따른 서부신시가지 개발과 전국 유일의 도시한옥인 전주한옥마을을 조성했다.이후 전북도청으로 옮겨 핵심보직인 기획관에 기술직 최초로 발탁됐으며 도지사 비서실장과 전략산업국장, 상해 통상사무소 통상본부장,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 개발본부장 등을 역임했다.냉철한 판단력과 뛰어난 통찰력에 언변까지 갖춰 ‘신언서판’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공무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 개발본부장 재직 시절에 태양광 전지의 핵심소재생산 기업인 OCI의 10조원 투자를 이끌어낸 것도 이런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 기획
  • 기타
  • 2011.11.10 23:02

“일자리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살기좋은 남원만들기에 온힘”

지난 10. 26일 남원시장 재선거에서 이환주 시장이 당선됐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남원시민의 열망이 젊은 행정가 출신의 이 시장의 당선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제7대 남원시장인 이 시장은 선거운동에 지친 심신을 추스릴 틈도 없이 산적한 시정 현황 파악에 몰두하고 있다. 시장실은 휴일은 물론 밤늦게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재선거로 당선된 이 시장의 잔여 임기는 2년 8개월로 짧다. 이 기간에 남원시정을 어떻게 이끌어 시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인지 이 시장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제7대 남원시장으로 취임해 열흘여가 지났다. 소감은? 시정 현안 파악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남원시장으로 취임해 기쁘기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선거운동하면서 시민의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남원을 새롭게 바꿔 잘 살게 해달라는 시민의 기대에 꼭 부응하겠다. 시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초심으로 돌아가서 더욱 낮은 자세로 열심히 일하겠다. 이제 각 부서별 업무보고를 받았다. 남원시의 큰 현안은 거의 파악했지만 풀어 나가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시 발전을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지역경제가 매우 어려운데, 경제 활성화 방안은? 선거운동하면서 어렵고 힘든 삶의 현장을 확인했다. 침체에 빠진 남원의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아들, 딸들이 남원에서 공부하고 남원서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 남원의 미래를 이끌어 갈 친환경 코메스틱 클러스터 조성을 검토하겠다. 또 복합물류단지 기반 구축, 소상공인 지원 등과 함께 기업유치단 운영으로 신 성장동력사업을 적극 발굴해 지역경제의 기틀을 다지겠다. △시장 개방이 확대되고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농촌의 미래가 어둡다. 농촌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남원은 도·농 복합도시이다. 농촌의 미래가 남원의 미래다. FTA체결 등 국제농업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또 농촌의 고령화와 인력 부족이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미래의 잘 사는 남원농업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현실을 잘 진단해야 하며 농업정보도 매우 중요하다. 농산품 가격동향, 농산물 유통, 농외소득 등 체계적인 맞춤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특히 우리 남원지형이 운봉 고랭지와 산동, 주천, 보절 등의 중산간부, 송동, 금지, 대강 등의 평야부로 구분돼 지역별 특성에 따라 전략품목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지역별 특성이 다르다 보니까 남원 농산물의 브랜드는 너무 많은 반면 지역을 대표할 상징성 있는 전략품목은 없는 실정이다. 통합 단일브랜화가 절실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래야만 비용절감과 우리 남원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멀리보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체계적인 맞춤서비스를 통해서 농촌에 활력을 불어 넣겠다. △퇴보하는 남원의 문화관광 산업의 발전방안은? 남원은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더불어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청정 자연환경이 있다. 이러한 훌륭한 문화와 자연이 있음에도 그동안 우리 남원의 관광산업은 춘향 하나로만 생각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시대적 변화에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한다. 산재된 수준 높은 문화유산에 대해 역사적 의미, 가치 등을 체계적으로 재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재조명하고 관광상품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충, 효, 예의 관광자원을 주제별로 계열화해 관광수요에 대응해야 한다. 지리산권역과 시내권역 관광자원을 연계해서 관광객이 남원에 체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남원도 65세 이상이 20%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이다. 구상하고 있는 노인복지 정책은? 농촌 도시 할 것 없이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우리 남원은 도농 복합형 도시 특성상 많은 어르신들이 농사 등 단순 일을 해왔다. 이러한 단순한 일을 해오다 고령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일자리를 잃으면 특별한 기술이나 경제력이 없어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수급자로 지정되지 않아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일단은 노인일자리를 개발·확대하는 것이 절실하다. 노인에 맞는 맞춤형 일자리 발굴에 관심을 기울이겠다. 특히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 노인층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겠다. △각종 공약과 구상을 실현화하기 위해서는 남원시 조직을 이에 맞게 개편할 필요가 있을텐데, 개편 방안과 함께 공무원 인사원칙을 설명해 달라. 일 잘할 수 있는 효율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공무원 개인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정성 확보를 위해 상급자의 의견수렴, 공무원 상하 간의 다면평가를 강화하고 시민과 유관 기관, 단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 일 잘하는 사람이 승진하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을 운영해 나가겠다. 공약사항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임기가 2년8개월여로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기간이 짧은 만큼 조직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이에 시 행정조직은 전면개편보다는 몇 개의 T/F팀의 신설 등 소폭 재구성을 생각하고 있다. △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남원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 화합이 중요하다. 갈등과 반목은 털어버리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함께 해야 한다.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영원히 일어설 수 없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양식 있는 시민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시민도, 지역경제도, 시정도 모두 건강해야 한다. 그동안 저의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열정을 고향발전을 위해 바치겠다. 남원시에서 사는 것이 자랑스럽도록 신명나는 시책을 추진해 나가겠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개인적인 인기를 떠나 진정으로 고향발전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겠다. 그래서 건강하고 행복한 남원을 만들어 나가겠다. 시민여러분의 뜨거운 애정을 부탁드린다.

  • 기획
  • 신기철
  • 2011.11.10 23:02

송기태 회장은

1941년 전주시 풍남동 송갑섭씨의 5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난 (유)동성 송기태 회장은 지금까지 풍남동 한 곳에서 한평생을 살아오고 있는 그야말로 전주 토박이중에 토박이다. 해방직후 전주 풍남초등학교를 거쳐 전주북중학교에 진학한 송 회장은 더욱 큰 꿈을 이루고자 서울로 유학해 경동고와 한양대를 졸업하고 문화방송(MBC)에 입사했다.학창시절 송 회장의 학업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고 특히, 중학교 시절에는 전라북도 테니스 대표선수로 활약할 만큼 체력관리 및 운동에도 남다른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하지만 아버지의 뜻하지 않은 건강 악화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1973년 고향 전주에 내려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경영 일선에 나서며 기업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송 회장은 왕성한 기업 활동과 더불어 다양한 사회활동 등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매진했다. 특히 지난 2000년 2월 전주상공회의소 제17대 회장 취임후 2004년에는 전북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에 선출돼 중앙과 지역을 오가며 국내외 경영환경 변화와 우리 지역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가질수 있도록 노력하는 등 지역발전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또한 선친 때부터 이어온 불우이웃돕기와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지급, 전북대학교 발전기금, 풍남제전위원회 발전기금 등의 각종 기금 쾌척 등 기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충실히 수행할 뿐 아니라 지역 현안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졌을 때는 우리의 몫을 찾기 위해 험한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고 헤쳐 왔다. 송 회장의 이력은 대단히 화려하다.88서울올림픽 당시 전북 성화 봉송 마지막 주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고 전주상공회의소 17∼19대 회장을 비롯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 8∼11기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해왔다.이러한 공로로 송 회장은 1987년 국민훈장 목련장, 전라북도 애향도민의 장, 1993년 전주시민의 장, 200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특히 평생 한번 받기도 힘든 국민훈장을 두번이나 수여받았으며 김영삼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3대의 대통령에게 훈장과 임명장을 받는 등 지역 발전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았다.

  • 기획
  • 강현규
  • 2011.11.03 23:02

‘전북무궁화대상’ 15년째 공동주최 송기태 (유)동성 회장

질서와 안보, 정의, 봉사 등을 통해 헌신하는 전북지역 경찰관들을 발굴해 격려하는 전북무궁화대상 시상식이 올해로 15년째를 맞았다. 지난 1997년부터 시행된 전북무궁화대상은 전북일보사와 전북지방경찰청 외에도 (유)동성(회장 송기태)이 공동주최하고 있다. 경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전북무궁화대상을 오랜 세월 공동주최하고 있는 (유)동성 송기태 회장으로부터 무궁화대상 등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본다.-전북무궁화대상을 올해로 15년째 공동주최하고 있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요?△사실 그때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우리 경찰들에 대한 지원이 변변치 않았었고 사회적으로 경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많이 부족했던게 사실입니다. 특히, 24시간 우리의 곁에서 가장 근접하여 생명을 담보로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데도 사회적 냉대는 물론 위로나 격려, 시상도 별로 없었고요. 이 때 전북일보사에서 지역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일선 경찰들을 발굴하여 격려하고자 하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전북일보사 사장님께 연락을 드려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죠. 이게 바로 무궁화대상을 공동주최하게 된 동기입니다.-평소 경찰의 역할에 대한 소신은 무엇인지요?△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어느 공무원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찰이라는 직업은 특히나 위험을 감수하고 국민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직업의 특성상 사실 월급쟁이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시민과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정말 아름답고 따뜻한 사회, 한 가족과 같이 지역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의로운 삶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동안 공동주최하면서 기억에 남은 일은?△처음에 무궁화대상 시상식을 개최하면서 과연 몇 년이나 이 시상식을 진행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습니다. 비록 무궁화대상의 요건을 충족하는 대상자를 발굴할 수는 있겠지만 경제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의미 없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많은 고민도 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 더욱 발전시켜 온 무궁화대상 시상이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15년이란 세월동안 각 분야에서 탁월한 희생정신을 발휘해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든 경찰관들을 발굴해 시상할때면 매년 흐믓하고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무궁화대상은 안보, 질서, 봉사 등 경찰관들에게 수여되는 3개 부문과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정의부문 등 4개 부문에 걸쳐 매년 5명을 선정하여 시상하게 되는데 올해를 포함해 지금까지 두차례에 걸쳐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정의 부문 대상자를 선정하지 못한 점입니다.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의로운 일을 행하며 사회와 함께 따뜻함을 같이 나누는 정의로운 행위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본 행사를 공동주최하면서 느낀 가장 가슴아픈 일로 기억됩니다.-지역사회 공헌사업에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는 명절이 되면 항상 어려운 이웃들을 초대해 돼지도 잡고 많은 음식을 장만해 지역주민들을 대접하고 백미를 나누어 주던 것을 지켜봐 왔습니다. 그러다가 아버님의 사업을 이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저도 아버지께서 해오셨던 일들을 그냥 자연스럽게 이어받게 된 것이지요. 제가 1973년도에 전주로 내려오면서부터 어려운 이웃 돕기를 진행해 왔으니 40여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 같습니다.-전주상공회의소 회장 재임시 지역경제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는데 어떤 일들이 기억에 남는지요.△2000년 4월 18일 전주상공회의소 제17대 회장 취임 당시에는 외환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어려운 경제상황과 경제구조의 영세성 및 지역특화산업 부재, 빈곤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역기업을 대표하는 경제계 수장으로서 총체적인 지역경제 활로를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던 시절이었습니다. 2005년 3월에는 기업유치위원회를 구성해 자치단체가 할 수 없는 민간부문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 LS전선, 현대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을 도내에 유치함으로써 전북의 산업구조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고도화 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무엇보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인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신용보증재단 설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 전주지점 개설, 호남고속철도 정읍분기역 설치 단초 제공,중소기업진흥공단 호남연수원 명칭 변경, 지역건설업의 BTL사업의 전반적인 제도개선, 자동차보험료 지역별 차등화 추진 반대, 완주산업단지내 KIST예정부지 송전탑 노선변경 및 지중화사업 등의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특히 지난 2001년 새천년새전북인운동 실천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2003년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강한전북일등도민운동추진협의회 회장직을 겸하면서 각종 성명발표, 대정부 건의, 200만 도민 서명운동 등을 주도 하면서 마침내 33.3㎞의 세계최장의 방조제를 완공한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앞으로 활동 계획은 무엇인지요△400여년을 전주에서 살아온 명문 후손으로서 집안의 명예와 자존심을 위해 지역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가와 사회단체장으로서 왕성한 시절을 보냈던 당시에 비해 건강은 좋지 못하지만 지역발전을 위한 일이 있다면 힘이 닿는데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 기획
  • 강현규
  • 2011.11.03 23:02

안호영 변호사는

전북 진안군 동향면에서 출생한 안호영(46) 변호사는 동향중학교와 전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대학시절 전두환 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동료와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사회현실에 눈을 뜬 그는 1987년 대의원대회 의장으로 선출돼 6월 민주항쟁의 한 복판에 선다.그 후 민주항쟁의 구심체가 되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영등포 지부에서 지역 활동을 한 뒤 군복무를 마치고 93년 제35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사법연수원(25기)을 나왔다.96년 전주 '백제법률사무소'에 몸을 담고 노동자와 서민을 변론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된 전북대 혁신대오 이적단체 사건 변론을 맡아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또 김형근 교사의 통일교육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도 무죄를 이끌어냈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주전북지부장을 지낸 그는 전북겨레하나 후원회 이사장, 여성의 전화 후원이사장, 아파트공동체연구소장, 교육개혁 시민연대 운영위원 등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과 후원을 통해 인권과 민주, 통일을 위한 작은 걸음들을 멈추지 않았다. 또 진안군 고문변호사와 한국농업경영인회 진안군연합회 고문변호사를 맡을 정도로 고향과 농촌에 대한 열정도 뜨겁다.안 변호사는 특히 지난 전주시내버스 파업 때 노사 양측에 '사회적 합의안'을 제시해 주목을 받을 만큼 사회적 갈등과 모순에 대한 고민을 끌어안고 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교사로 재직하는 부인(김명숙46) 사이에 세 자녀(예슬, 찬주, 형주)를 두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27 23:02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前 공동대표 안호영 변호사

10.26 서울시장 재보선을 계기로 안철수로 상징되는 '시민정치'의 파고가 예사롭지 않다.기존 정당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절망과 불신이 촉발한 '시민정치'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판도까지 뒤흔들 태세다.얼핏 수도권에서 먼저 분출된 것으로 보이는 이 같은 시민의 제도권 진입 움직임은 사실 지방이 한 발 앞서 있다.학생운동권 출신의 인권변호사로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를 3년 넘게 맡아오다 최근 대표직을 사퇴한 안호영 변호사.그가 고심 끝에 지난 7월 정치에 대한 '참여'의 방식을 180도 바꾸기로 결심했다.안 변호사를 만나 시민운동 실천가로서의 삶과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에서의 활동, 그리고 새로운 '참여'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전북의 대표 시민단체인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 재임기간의 성과를 정리하신다면.지난 2008년 부임해 광우병 쇠고기반대 촛불문화제를 하면서 국민들의 의식과 생활정치의가능성을 확인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에서 밝힌 촛불은 제가 87년 민주항쟁의 현장에서 있을 때 그 느낌이었습니다. 촛불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퇴행을 시민 힘으로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아울러 시민교육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두 차례씩 문을 연 시민경제아카데미가 올해로 8회쨉니다. 시민과 소비자의 시각에서 경제정의와 지역경제 활성화의 방향과 대안을 마련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큽니다. 이를 통해 슈퍼마켓연합회와 전통시장 상인회와 연대해 대형마트와 SSM의 횡포를 저지하는 운동을 전개한 일도 보람입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 이전에도 활발한 시민단체 활동을 해오셨죠.- 저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면서 민중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기로 다짐했었습니다. 당시 노동, 농민 등 계급계층운동으로 진로를 모색한 동지들이 많았지만 저는 법조인으로서 정의와 봉사를 고민해왔습니다.이에 따라 1996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시민단체, 학생운동권 등의 요청과 주변 인권변호사들의 제안에 주저없이 달려갔습니다.그러다보니 남북평화교류와 협력, 여성의 권익신장, 아파트공동체 지원, 진보적인 여성단체 후원, 법률자문과 무료법률지원 등에 관심을 두게 됐고 그런 단체에서의 역할도 피할 수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3년 넘게 일했던 참여연대 공동대표로서 아쉬운 대목도 있을 텐데요.- 참여연대는 지방과 중앙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고 100% 재정자립을 위해 회원회비로 운영하고 부족한 재정은 주막과 후원의 밤을 통해 조달합니다. 주막은 전주시 3대 축제 중의 하나라고 할 정도로 일반 시민의 참여가 높습니다. 준비위원장을 맡아 후원 사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단기간에 자립도를 높이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특히 단체의 핵심 역할을 맡은 상근활동가의 열정과 헌신에 걸맞게 임금과 처우를 챙겨주지 못한 부분이 무척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운명처럼 해왔던 시민운동의 연장선에서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하시다가 그만두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사실 참여연대는 각종 선거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노력해왔습니다. 그 원칙 때문에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저는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비록 제가 단체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특히 저희 단체는 전북의 낡은 리더십을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단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전북을 바꾸고, 나라를 바꾸려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했고 그 결과 공동대표를 그만 두고 제도권 정치에서 변화를 모색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물론 저의 현실정치 참여에 대해 주변의 격려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지만 한 번 마음을 먹었으니 도전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 대목인데요. 시민단체 경력을 제도권 진출의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지적도 나올법한데요.- 결론적으로 말해 그럴 의도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사실 자기 밥벌이 하려고 시민단체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주민과 지역사회의 지지를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활동해 왔다고 자부합니다.변호사로 일하다가 정치권에 들어가려면 정당에 줄을 대서 기회가 되면 공천 받아 당선되면 되는데 저는 그런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누적된 이유가 뭐겠습니까. 단순히 인물이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존 제도권 정치권이 시대정신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이는 정치권에만 맡기지 말고 시민이 나서서 풀어보고 대안을 찾으라는 국민의 요구이자 명령입니다. 그게 제가 추구하는 목표점입니다. 물론 시민단체 활동이 주민들의 평가에 영향은 주겠지만 낡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해와 편견은 사양하겠습니다.▲ 지난 달 출범한 '전북@혁신과 통합'에서 정치개혁입법특별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도 그런 맥락과 닿아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전북지역은 그동안 민주화운동에서도 앞장섰고 격동기에 올바로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각종 선거에서도 민주와 진보를 선택했죠. 물론 2012년 정권교체와 민주진보정부 수립에 대한 열망도 높지만 지역사회에 높아지고 있는 지역 정치혁신에 대한 욕구가 더욱 넘쳐납니다.그 중에서도 민주당 일당구조로 고착된 전북에서 정치인들의 무책임과 무능, 기득권 안주에 대한 비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더구나 민노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의 이른바 소통합이 결렬되면서 민주당의 행보가 매우 중요한데,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전북에서의 민주당은 변화와 혁신에 미온적입니다. 그런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게 시민사회와 지역주민들의 바램 아니겠습니까.결국 혁신과 통합은 전북의 낡고 보수적인 리더십을 민주진보적인 리더십으로 바꾸고 민주당의 독점구조를 깨뜨릴 것입니다.▲ 결국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굳혔는데 지역구는 정했습니까.- 진안무주장수임실은 민주당 정세균 최고위원이 지난 2009년 불출마를 선언한 곳입니다. 정 최고위원의 선언은 민주당을 변화혁신시켜 전국정당으로 거듭나는데 밀알이 되면서 새로운 리더에게 길을 열어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이 같은 정 최고위원의 의지는 정권교체와 변화와 혁신,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 교체를 주장하는 제 뜻과도 일치합니다.특히 그동안 전북은 새만금성(城)에 갇혀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전북의 동북권인 진안,무주,장수,임실,남원,순창지역은 상대적으로 불균형으로 정체되어왔습니다.전북정치의 혁신과 변화가 도심에서 이루어지는 곳이 전주라면, 전북의 변화와 발전은 동북권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변화는 중심에서보다 변방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따라서 저는 변화와 혁신, 새로운 리더십, 전북정치의 변화를 위해 변방에서부터 출발하려는 것입니다.

  • 기획
  • 김성중
  • 2011.10.27 23:02

임정엽 완주군수

지난달 23~25일 완주 고산 자연휴양림일대에서 열린 '와일드푸드 축제'가 첫 개최임에도 성공적으로 치러져 긴 여운을 주고 있다.3일간의 축제기간 동안 행사장인 고산자연휴양림 일대를 찾은 관광객은 10만명인 것으로 추산되고 다양한 행사와 시식, 판매 등을 통해 주민들이 벌어들인 소득은 5억원에 이른다. 구이면의 경우 8개 마을이 축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모두 4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지난해까지 총 14번 치러진 대둔산축제가 고작 3만명 방문, 2000만원 정도의 농산물 판매를 기록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무엇보다 완주 와일드푸드 축제는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 완주군의 강점인 로컬푸드와 연계한 특색있는 음식을 선보임으로써, 가을 음식축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의의가 크다.완주 와일드푸드 축제를 주도한 임정엽 군수를 만나 축제와 완주군정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와일드푸드 축제를 하게 된 이유와 성공축제로 치러진 의의를 설명해 주십시오.- 주민의 애향심 고취, 지역경제 활성화 등 취지에 맞는 명실상부한 지역축제를 치러보자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대둔산축제 등 지금까지 완주군에서 열렸던 축제는 단체장의 치적쌓기나 일부 기득권 세력의 잇속만 챙기는 수단에 불과했습니다.그래서 와일드푸드 축제는 이같은 병폐를 뿌리뽑고 지역주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축제, 지역의 강점을 적극 활용해 주민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축제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물론 프로그램 구성 및 운영 등 전반적인 사항을 전문 행사업체가 맡지 않고 공무원과 주민이 부딪쳐 해냈습니다.주민 모두가 주인공으로 나서 대접도 받고 많은 수익을 올리니, 잠깐의 수고는 일도 아니라는 말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결국 와일드푸드 축제는 주민참여와 이를 통한 축제 본연의 취지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면 아쉬운 점도 남았을 것이고,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을 거라 보는데요.- 전문 기획사가 아닌 주민과 공무원 스스로 준비하고 치르다 보니, 주차 및 셔틀버스 운행 등 교통문제, 휴게소 등 편의시설 부족 등이 지적습니다. 지면을 빌어 불편을 겪은 관광객들에게 사죄의 말을 전합니다. 내년 축제에서는 이같은 불편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의 축제 방향과 이를 어떻게 주민소득 및 지역이미지 제고와 연결시킬 것인지 말씀해 주시죠.- 와일드푸드 축제는 음식과 전통을 주제로 몸과 자연의 공존을 꾀하고, 무엇보다 지역주민의 참여도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지속시켜나갈 것인지가 중요한데요. 완주군은 농촌 활성화를 위해 크게 마을회사 육성과 로컬푸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중 마을회사 육성은 지역이 현재 가지고 있는 특유의 자산을 활용해 마을을 발전시키는 개념의 사업인데요. 자산이라면, 전통도 있고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완주군은 이번 축제에서 관광객의 많은 사랑을 받은 음식이나 전통문화 등을 걸러서,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마을 공동체회사로 키워나가도록 할 예정입니다.▲ 축제에는 완주군의 대표적인 청정 농산물이 많이 나와 관광객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로컬푸드 1번지'로서 발전하기 위한 사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완주군의 로컬푸드 사업은, 건강밥상 꾸러미와 직거래 장터 활성화 등 투 트랙으로 추진됩니다.이중 꾸러미 사업은 현재 2,500가구의 소비자를 확보해 10억원의 매출, 16명의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또한 용진농협과 협조해 11월말부터 1일 유통형 직매장을 개설할 계획이구요.최종적으로 꾸러미, 집단급식, 직매장 등을 통해 관내 3,000여 소규모 농가의 소득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인 마을회사 육성은 잘 이뤄지고 있는지요.- 현재 127개소(마을공동체 95개, 지역공동체 32개)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한해 마을회사 육성을 통해 소득 8억4,000만원, 일자리 256개를 창출했는데요. 완주형 마을 공동체 사업 모델은 정부정책으로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임기 내에 약 200개 공동체 사업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다만 '100개소 육성'의 개념을 양적인 것보다는 지역의 많은 공동체를 다양하게 육성하고, 이 공동체들이 서로 협력해 농촌활력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얼마전 본보에도 보도됐지만, 시범적으로 도입한 마을버스가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향후 확대 계획은 있습니까.- 당초 공약사항으로 마을택시 운영을 약속했는데, 여의치 않아 버스로 대체하게 된 것입니다. 상관면 6개마을 137세대, 285명의 주민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앞으로 대중교통 운행여부, 주민이용량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해서 2013년 이후, 추가적인 마을버스 운행 지역을 결정하겠습니다.▲ 역시 지난달 기공식을 갖은 테크노밸리 산업단지 분양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현재 많은 문의가 있습니다. 완주 테크노밸리는 2012년 완공을 목표로, 40만평 규모로 조성됩니다. 이곳에는 KIST 전북분원, 고온플라즈마 응용연구센터와 연계해 탄소소재, 인쇄전자, 부품 소재 등의 첨단산업을 유치할 것입니다. 또 기존 입주업체와 연관된 태양광, 자동차, 기계산업 등도 유치할 계획입니다.▲ 완주-전주 통합이 최근 지역의 현안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김완주지사님이 적극 나서서 방향타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데요. 중요한 것은 통합 의지가 얼마나 강하며 왜 통합하려고 하는가 입니다. 완주군을 어떻게 배려할 것이며 완주군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밝혀야 합니다.완주군민들은 "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약자에 대한 대책없이 전북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일방적으로 완주군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저는 군수로서 당연히 통합하겠다는 의사가 있지만 완주군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거듭 밝힙니다.▲ 내년 총선에서의 출마설이 끊이질 않습니다.- 매번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란해지는데요. 지금은 군정에 매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으로 답변에 갈음하겠습니다.※ 임정엽 군수는1959년 구이 출신으로, 완산고와 전주대를 졸업했다.지방자치가 부활한 지난 91년 도의원을 거쳐 도지사 비서실장, 청와대 행정관을 역임한 뒤 지난 2006년 지방선거를 통해 완주군수에 취임했다. 특유의 추진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침체에 빠진 완주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선4기 4년 동안 임 군수는 예산 5000억원 시대 개막, 인구증가, 복지 최우수단체 선정, 획기적인 교육환경 조성, 기업유치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고 이를 토대로 대한민국 신뢰경영대상 대상을 수상했다.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이후에는 전국적 주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로컬푸드, 마을회사 육성 등을 통해 '농촌을 살리는 수도'로 완주군을 발돋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임 군수의 선도적 농촌정책은 정부정책에 반영되는 한편 많은 지자체의 벤치마킹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0 약속대상 최우수상 수상, 대한민국 지방자치 경영대전 대통령상 수상은 그 열매다.임 군수는 지난 4년간 수없이 고민하고, 주민과의 협의를 거쳐 올해 처음 개최한 와일드푸드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또한번의 성공신화를 썼다.

  • 기획
  • 백기곤
  • 2011.10.20 23:02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 양영두 위원장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 양영두 위원장(64). 오랜 세월'소충사선문화제'와 함께 해온 양 위원장이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 무려 25년만이다. 자신이 주장해 왔던 지역 문화축제 통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소충사선문화제는 내년부터 의견제를 비롯해 고추산머루치즈축제 등의 지역 축제와 통합운영된다. 그는 지난달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린 제49회 소충사선문화제를 마지막으로 치렀다.-이번 소충사선문화제를 끝으로 위원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는데.△22년간 봉사한 해인 2009년부터 제전위원장을 내놓으려 했으나, 군수공백 상태로 임실군정이 혼미해 행정과 제전위원들의 간곡한 뜻을 받들어 3년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1986년 민주도로 창립된 사선문화제 행사 이후 1999년 군민의 날 소충제와 통합 '소충사선문화제'위원장으로 추대된 후 만 25년간 무보수로 봉사했고, 제 스스로 5개의 축제(의견제고추산머루치즈축제)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주창하고 나섰으니 내년에는 좋은 결과로 하나된 통합문화축제로 탄생되기를 소망합니다.-이후의 계획은 있습니까.△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무주진안장수임실군민과 도민의 뜻을 받들어 나아갈 것입니다. (그는 통합문화축제가 내년에 성공적으로 출발할 수 있도록 올 연말까지 출범작업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지역문화 행사를 전국 행사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그간 어려웠던 점은 없었습니까.△1987년 제1회 창립제전을 치를 때 군부독재 시절이어서 행정당국의 반대와 억압, 방해로 어렵게 치러졌고, 이후 98년까지 군비나 도비의 지원 없이 재정상의 빈곤함으로 매년 적자상태의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당시 행사출연자였던 국악인 조상현씨 등에게 행사 불참 공문이 발송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각 읍면에서 조직된 수백 명의 제전위원과 재경향우회의 성원, 눈물과 땀이 베인 열정적인 봉사가 계속 이어져 전국적인 향토문화행사로 평가받게 됐지요. 만 25년 사반세기의 길고도 먼 세월이었습니다.전북의 지역문화축제중 제일 적은 예산을 가지고 10억이 넘는 행사와 어깨를 나란히 해온 점에 자긍심을 가집니다.-행사 개최에는 적잖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자치단체에서의 지원도 많지 않았던데. 그렇다고 위원장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고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인데, 어떻게 예산을 충당했습니까.△제일 어려운 것은 재정(財政)문제였지요. 거의 매년 적자가 났지요. 전북의 경제 형편상 서울의 선후배 인맥을 동원하고, 어느 회사의 경우 위에서 도와주려해도 아래 실무선에서'무엇 때문에 전라도 임실에서 하는 행사를 도와주느냐, 광고효과도 없다'며 반발이 있어 수십번 찾아가 설득해 광고 협찬이나, 기부금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매년 1억에서 많게는 1억3000만원 이상을 협찬 받았습니다. 올해는 힘이 들었지요.군이나 도에서는 사무실 운영비나 인건비 보조를 주지 않아서 광고협찬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행사비에 보태 문화축제를 이끌어왔습니다.이 기회에 그간 도와주신 기업과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일명'마당발'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지인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비결이 있습니까.△신의(信義), 성실(誠實)을 근본으로 한 저에 대한 믿음이 비결일 것입니다.2~3년 도와주었으니 내년에는 끝내자고 했다가도 진정성을 가지고 고향사랑과 나라사랑을 위해 발로 뛰는 저를 믿고, 또 예산내역을 살펴보니 무보수로 봉사한다는 것을 파악한 뒤에는 계속 후원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70년대 초부터 국회에서 활동하며 쌓은 공직사회, 언론계 인맥과 서울 선후배들의 변치않는 인맥의 힘도 컸습니다.'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지성이 모여 감천이 된 것이지요.-그동안 국회의원 선거에 많이 출마했습니다. 그로인해 지역문화행사를 정치활동의 기반으로 삼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14대(무소속), 15대(무소속) 17대 총선(민주당 공천)에 출마했지요.지역문화행사 때문에 정치활동에 덕을 보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손해를 봤을 겁니다. 서울에서 저를 돕는 분들이'그렇게 공(功)을 들여도 알아주지도 않고 표도 안주는 그 척박한 곳에 미련 버리고 다른 길을 찾거나 지역을 옮기라'고 충고를 받았으니까요.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저는 우직하게 앞만 보고 더욱 열심히 노력했습니다.-지역내의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는 번번이 낙선했습니다. 정치인으로서는 지역민들로부터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지난 1415대 국회는 민심이나 당심이 우선 아니 특정 인맥과 소위 돈 공천이라는 당에 기여도가 판을 치던 시대였습니다. 10년이 가고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저에 대한 진실성이 알려지고, 오해했던 부분, 몰랐던 사실들이 확인되면서 향토문화발전에 기여한 측면과 정치적인 능력 면도 해가 갈수록 새롭게 평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내년 총선에도 출마하실 생각입니까.△언론에 보도된 것처럼'당심과 민심을 얻는 사람이 지역위원장이 되고, 공천을 받을 것'이라고 밝힌 민주당 정세균 전 대표의 말을 굳게 믿고 있으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결과를 기다릴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믿습니다.-개인적으로 문화와 정치중 어느 분야가 더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정치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1972년에 정치에 입문하였으니 (국회비서관 3갑 상당) 40여년을 전북 정치인(현역으로)중에서도 중앙당에서도 고참급입니다. 적성이 맞으니 끈기와 인내심으로 지금까지 버텼지요.사업을 했더라면 향토문화에 공들인 만큼 노력했다면 큰 성공을 해 중견기업인이 되어있지 않았을까요.

  • 기획
  • 김준호
  • 2011.10.13 23:02

양영두 위원장은

임실(관촌면 회봉리) 출신으로 소충사선문화제를 전국적인 행사로 이끈 성공과는 달리 정치인으로서는 불우한 길을 걸었다.지난 1972년 국회 손주항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래 40년간 정치활동을 벌였던 그의 정치 이력은 결코 간단치 않다.신민당 정책위원, 임순남지역 부위원장,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 평민당 전북도당 대변인, 새천년민주당 창당 발기인, 17대 민주당 진안무주장수지역 위원장 등등. 그리고 현재의 민주당 전북도당 상무위원과 민주당 중앙당 문화예술 특위위원장(중앙위원)에 이르기까지 화려하다.이와함께 흥사단 민족통일 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냈던 그는 지난 1979년 YH무역여성 신민당사 농성사건으로 인한 폭력사태 피해(민주화운동유공자인정 12등급)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상이 11등급 국가유공자) 등 야당 정치인으로서 적잖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그렇지만 3번의 국회의원 도전에서 모두 패배했다. 2차례(14대,15대 총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실패하고, 17대 총선때 민주당 공천권(진안무주장수지역 위원장)을 어렵사리 거머쥐었지만 당시 정치권에 불어닥친 열린우리당의 바람을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 이에따라 내년 총선에 입지를 다지고 있는 그가 어떤 결과를 거둘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 기획
  • 김준호
  • 2011.10.13 23:02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장

전통사경 전문가 김경호(48한국사경연구회장)씨는 전자현미경보다 더 미세한 눈을 갖고 있다. 그는 0.1㎜ 붓끝에 금니(아교를 녹인 물에 갠 금가루)로 불경을 새겼다. 사경(寫經)을 통해 삶의 진리를 보는 또 하나의 현미경을 발견한 것. 단 1㎜에도 다섯 개 이상의 금선을 그어 정교한 우주를 담는다."사경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입니다. 단순히 불교 경전을 베껴쓰는 게 아니에요. 조상들이 이어내려온 정신예술의 정수죠. 하지만 사경에 대한 연구는 물론 기초자료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초조대장경 판각 1000주년을 맞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전시실(15~28일)에서 연 한국사경연구회의 여섯번째 회원전'느림과 정치(精緻) 미학의 정수, 사경'에서 그는 사경에 무관심한 세태에 속상함을, 전통 사경의 맥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토로했다. 회원 80여명이 출품한 100여 점은 예술이기에 앞서 인고의 수행으로 빚어낸 것들. 대부분이 불경 사경이지만, 유교 경전과 성경 사경도 있다.그는 조선 중기 이후로 맥이 끊긴 전통 사경을 되살린 주역이다. 김제 출생인 그가 네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서예를 배웠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중학교 진학도 미룬 채 서예에만 매달렸다. 결국 중학교를 1년 늦게 진학했으나 각종 전국서예학생대회에서 최우수우수상 등을 휩쓸어 두각을 보였다. 고등학생 시절 사경에 푹 빠져 부모 몰래 출가도 했다. 스스로 "(사경을 하게 된 게) 다 팔자 소관"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으나 본격적으로 전통사경 공부를 시작했을 땐 "정말 깜깜했다". 사라진 것을 익히려다 보니 가르침을 구할 곳도 없었고, 전통사경 유물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아 옛 문헌을 수소문해 연구하면서 독학해왔다. 20년 넘게 외길만을 걸어온 그는 지난해 전통사경 분야의 유일한 기능전승자가 됐다."장사를 하려고 했으면 돈을 엄청 벌 수도 있었겠죠. 금으로 새기니까 대단한 것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꼬박 걸리는 시간은 38개월. 일반 서예나 불화에 비해 수백 배 공력이 든다. 재료 준비와 마무리 작업에도 지극 정성이다. 아교를 중탕해서 녹힌 뒤 아교물을 종이에 발라 말려 다시 바르고 말리기를 여러 차례. 금은가루를 여러 번 정제하고 수시로 붓을 빨아 불순물을 제거하고, 사경을 마치면 표면을 문질러 광을 낸다.숨을 한 번이라도 잘못 쉬거나 눈을 깜빡여 붓이 엇나가도 낭패. 고난이도 집중력을 요하는 이 작업은 온도 35℃, 습도 90% 이상의 '찜통'일 때 가장 잘 된다. 붓 끝에 묻은 아교가 굳기까지는 3초에서 5초 사이에 불과하다. 무엇 하나라도 소홀히 되면 좋은 작품이 나올 리 없다.불교미술사학자 故 장충식 동국대 교수는 그의 사경을 보고 "고려시대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하다"며 극찬했고, 한글 궁체의 대명사로 꼽히는 이미경 선생은 "한글 궁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그의 사경이 인정받는 것은 독창적인 기법 때문이다. 최대한 원전 5종 이상을 대조하고 자구에 맞게 한글 번역을 할 것, 금니와 은니를 3회 이상 정제하는 등 100% 순도를 유지할 것. 문헌에 근거해 제작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슬라이드만 해도 수 만여 장에 이른다.이번 전시에 내놓은 '감지 금니 아미타경 변상도'는 가로 21.4㎝, 세로 20.4㎝로 A4 용지보다도 더 작다. 하지만 이는 고려 불교의 특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금니와 은니로 제작된 사경. '변상도'는 까막눈 신자들도 알 수 있도록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성격이 강했던 변상도는 두루마리 식으로 된 권자본이나 접이식으로 된 절첩본의 맨 앞에 붙여져 사경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표현됐다. 이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매일 6~8시간씩 90일. 두문불출하며 작업했던 탓에 스트레스로 앞니와 양쪽 어금니까지 잃고 난 뒤다."'변상도'는 비스듬하게 불빛에 비춰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옅은 금색이 무수한 선으로 돼 있는 게 보이죠? 물론 원본과 비교해야 진가를 알수 있지만, 국보라고 해서 다 뛰어난 작품은 아닙니다. 엉성한 것도 많아요. 두루뭉술하던 동정소매옷무늬 등은 개작도 됩니다."그는 인터뷰 내내 '사경 없이는 팔만대장경도 없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목판에 글자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려면 붓으로 한 자 한 자 종이에 베껴 적는 작업이 필수.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엔 국가기관 '사경원'을 뒀고, 원나라에 사경 전문가 수백 명을 파견해 금자은자 대장경을 내놓을 만큼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하나의 불경을 필사하는 데 들인 정성은 일본과 중국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경지였던 셈. 조선시대 억불숭유 정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까지 사경은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물'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금속활자'직지심체요절'의 '산파'였다.그는 "사경 없이는 대장경이 나올 수 없지만 대장경 1000년을 기념하는 거의 모든 전시가 대장경 유물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게 속상했다"며 "사경의 가치와 의의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일깨우고자 기획한 전시였다"라고 했다."본래 사경은 불교 경전을 옮겨 쓰는 행위와 옮겨 쓴 경권에만 국한됐지만 요즘엔 달라졌습니다. 다양한 종교와 함께 사경의 영역이 성경사경, 교전(원불교)사경, 코란사경 등으로 점차 넓혀져 가고 있죠. 일본의 경우 사경인구가 600만명에 이르고 전승도 잘 되고 있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우리나라 사경이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사경의 전통 양식과 기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세계화할 수 있는 자산이죠."외국에서 전시와 강연 등을 통해 전통사경의 세계화에도 앞장서왔던 그는 내년에는 뉴욕에서 초대전을 가질 계획. 사경의 가치를 알려온 그의 외로운 노력이 이제서야 결실을 맺고 있다.

  • 기획
  • 이화정
  • 2011.10.06 23:02

고향 찾은 박철곤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어린 시절 지긋지긋할 정도로 가난했다. 굶기를 밥 먹듯 했고, 한겨울 냉방에서 잠을 자야했던 탓에 아침이면 굳어버린 손가락을 펴는 일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목표의식만은 잃지 않았다.30대에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30여 년 동안 공직에 몸담으면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리고 지난 6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는 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제14대 한국전기안전공사 박철곤 사장(59)이 지난 26일과 27일 1박 2일 동안의 일정으로 고향인 전북을 찾았다.▲지난 6월 1일 한국전기안전공사 14대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3개월의 시간이 지났는데요.-벌써 백일이나 됐나 싶습니다. 공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하고, 직원들이 저와 같은 눈을 갖도록 하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총리실에서 근무할 때는 정책을 입안하면 관련부처나 일선기관을 통해 일이 시행되기 때문에 국정 전체를 거시적으로 보면서 일을 했다면 지금은 국민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변화가 있지만 재미있게 일하고 있습니다.▲한국전기안전공사에 대해 생소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역할을 하는 기관인지요.-한마디로 전기의 안전한 사용을 책임지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국민은 한전을 찾지만 사실 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이 달려갑니다. 전봇대로부터 인입된 가정, 빌딩, 아파트, 공장, 발전소까지 전기 고장과 안전 문제는 우리가 책임집니다. 한국 최고의 전기 기술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보시면 됩니다.▲취임 100일을 맞아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는데요.-모두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전기안전을 선도하는 기업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시대 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선도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부신 기술의 진보를 우리 공사만의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신 전기안전 관리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 공사의 전기안전 기준이 곧 글로벌 기준이 되는 전기안전 중추기관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하겠습니다.두 번째는 행복한 고객입니다. 공사의 존립목적은 전기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입니다. 고객인 국민이 공사의 서비스와 역할에 감동할 때 우리의 존재는 빛이 나고 존립 의의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세 번째는 신명나는 일터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음에서 우러나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공사 직원 모두가 즐겁고 신나게 일하지 않으면 전기안전의 선도도, 고객감동도 한낱 공허한 바람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일터가 즐거운 곳이 될 수 있도록 사장으로써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20여 년간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보람 있었던 일이 있다면.-그동안 해왔던 일 하나하나가 잊혀 지지 않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스 공포가 불어 닥칠 때, 일선에서 국내 창궐을 막아내는 수비대장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국민의 건강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을 큰 보람을 느낍니다.또 총리실에서 근무할 때 '먹거리 안전 확보 TF', '기후변화 대책 기획단' 등 국정현안 해결을 총괄 담당해왔는데, 기후변화대응과 같은 경우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녹색성장으로 '관점'을 바꿔서 산업의 흐름을 주도한 경우는 우리나라가 처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분야는 향후 60년 이상 우리경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무궁한 산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오랜 시간 공직생활을 해왔습니다. 남다른 경영철학이 있을 것 같은데요.-행정고시 합격 후 공무원 연수원에 들어서면서 '내가 여기 왜 있나'를 곰곰이 생각했었는데, 부나 권력, 명예는 모두 부질없어 보였습니다. 그 때 스스로 '소신 있게 살자'라는 각오를 다지고, 원칙과 일관성 있는 업무처리를 비롯해 잘못된 관행과 문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약 30여 년간의 공직생활 경험으로 비춰 볼 때 자신에게 가장 튼튼한 자본과 힘은 노력입니다. 저마다 타고난 능력은 차이가 있지만, 노력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노력은 성과를 낳고, 이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게 됩니다. 늘 이와 같은 초심을 잃지 않고 생활하기 위해 솔선수범해왔습니다.▲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현재의 자리에 올랐는데,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는.-저는 '고시 3관왕 출신'입니다. 검정고시를 두 차례 합격했고, 행정고시를 거쳐 공직에 입문했습니다. 고시 3관왕이라는 타이틀만 봐도 그동안 무슨 일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미뤄 짐작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릴 적부터 지긋지긋한 가난과의 싸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굵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지내온 저에게 큰 힘이 됐던 것은 시험제도입니다.저는 시험제도가 굉장히 유용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시험은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단계를 넘어갈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저도 이 과정을 밟아왔고요. 결국 본인의 노력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 준비하다 잘못되면 고양이라도 그릴 수 있지만 아무것도 그리려고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목표의식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 청년들도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주길 바랍니다.▲재임기간 중 전기안전공사 본사가 전주완주 혁신도시로 이전합니다.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요.-취임하고 보니 저희 공사가 고향으로 이전을 하는 것으로 돼 있더군요. 다른 분들보다 책임감을 더 느낍니다. 현재 공사 건물을 짓는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저희 공사 건물은 외관부터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이면서 상징적인 건물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 속에 전주완주 혁신도시, 전주하면 전기안전공사 사옥을 떠올리도록 할 것입니다. 2013년 말까지 차질 없이 공사 이전을 완료할 수 있도록 공정관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끝으로 도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어렵지만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도민들이 힘을 합쳐 노력하면 전북의 밝은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인 '아리울'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리울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리울은 잘 만들면 대한민국 발전의 거점이면서 모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획
  • 박영민
  • 2011.09.29 23:02

고건 전주대학교 신임총장

IT와 하나님.고건 전주대 총장(63)을 이해하는 '열쇳말'이다.20일 전주대 제12대 총장에 취임한 그의 임기는 2015년 8월 31일까지다.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28년간 재직한 그는 우리나라 '컴퓨터 공학 1세대'이다.그는 저출산고령화정보 혁명세계 경제 재편 등 격변기에 전주대의 교육연구행정 등을 혁신하는 데 자신의 풍부한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 통신) 기술이 자산이 될 거라고 자신한다.'교회 장로'이기도 한 그가 그리는 이상적인 교육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학생들을 품는 교육이다. 건학 이념이 '기독교 정신의 구현'인 전주대에 맞춤한 총장인 셈.그는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경기중고와 서울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과 국가정보화추진위원회 자문위원, 서울대 중앙교육연구전산원 원장컴퓨터공학부 학부장학술정보원장 등을 지냈다.취임식이 끝난 20일 오후 전주대 총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전임 이남식 총장은 전주대의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동시에 '스타센터' 건립 등 외형 확장에 치중한 나머지 내실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습니다. 전임 총장에 대해 평가한다면.- 이남식 총장은 재임 시절 많은 일을 하셨고, 학교도 많이 변화됐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일을 안 하면 평화롭지만, 일이 진척되면 구성원 간에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꾸로 얘기하면, 전주대가 상당히 발전하고, (이남식 총장이) 많은 일을 했다는 방증입니다. 변화가 있는 곳엔 긴장이 있고, 긴장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신호입니다.▲ 총장님은 우리나라 최고 명문이라는 서울대에서 28년간 교수로 재직하셨습니다. 지방 사립대인 전주대는 객관적으로 서울대에 못 미칩니다. 총장님은 전주대의 발전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우리 사회는 많은 젊은이들의 다양한 재능과 헌신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각 개인에게 소명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열이 없고, 모두가 귀합니다. 농어촌의 일거리가 대기업 일거리에 못 미친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겁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방 사립대인 전주대는 객관적으로 서울대에 못 미친다'는 말은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입니다. 예컨대 전주대의 한식조리특성화 사업은 전주 지역의 특성을 살린 분야로 서울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전주대는 또 서울대에는 없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첫째, 전주와 전라북도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정이 많은 대학입니다. 둘째, 서울대와 달리 건학 이념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대학입니다. 이상적인 교육은 교수와 직원들이 기독교적 이념과 사랑으로 학생들을 품는 교육입니다. 제도와 조직만 가지고 교육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총장님 전공은 컴퓨터공학입니다. 만약 '나는 총장이다'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면, 총장님은 무엇으로 '청중 평가단'(교직원학생지역 사회 등)의 마음을 끌 건가요?- 우리 시대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가장 큰 게 정보 혁명입니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변화로는 저출산고령화가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자본주의 4.0이 있고,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 위기에 따른 경제 재편이 있고, 공산권 붕괴 이후 중국이 자유시장경제에 편입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고용 문제가 큰 고민거리입니다.이러한 외풍 속에는 혁신에 대한 요구가 있습니다. 대학의 교육과 연구, 행정도 앞으로 많은 변화를 이뤄내야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컴퓨터 공학 1세대로서 세계 문명의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처해 왔습니다. 제가 전공한 IT 기술은 전주대가 혁신을 이루는 데 큰 자신이 될 겁니다. 저는 교회 장로이기도 합니다. 변화의 시기에 제일 중요한 게 구성원들 간의 화합과 단합입니다. 저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전주대 구성원들이 신뢰하고 단합해 변화를 이뤄나갈 수 있도록 헌신할 계획입니다.▲ 전주대 홈페이지에 나오는 총장 인사말에는 '지역혁신의 중심대학, 지식기반센터로서의 역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인가요?- 대학교에는 많은 연구 인력과 연구 시설이 집중돼 있습니다. 이러한 인력과 시설을 활용해 지역에서 행하는 연구 개발이나 신산업 생성, 근본적인 동력을 만드는 데 전주대가 싱크탱크(think tank)와 브레인(brain)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달 25일 교과부가 공개한 '2011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 통계 조사 결과'를 보면, 전주대는 '나'그룹(2000명 이상 3000명 미만) 32개 대학 중 26위(48.1%)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조사가 공정했다고 보시는지요? 전주대 졸업생 2명 중 1명이 '백수'가 되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복안은 있는지요?- 이번 조사에 약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봅니다. 국립대와 사립대를 동일하게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국립은 국립끼리, 사립은 사립끼리 평가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어떤 대학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대학 내 단기 근무자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취업률 산정 기준이 명료해야 합니다. 취업률 조사 항목에서 세분화되지 않거나 애매한 것까지 산정한다면 취업률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죠. 이번 기회에 아주 세분화된 항목으로 정형화해야 합니다.전주대는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창의적이고 헌신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타 트랙(Star Track)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소수 정예 학생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자격증과 시험을 준비하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스타 T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신입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학생 스스로 주도적으로 미래 커리어를 쌓기 위한 활동을 하도록 멘토링하고 격려해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토플토익 점수가 필요하면, 포인트 인증을 해줘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장학금을 주고, 해외여행 기회도 줍니다.스타 넷(Star Net) 프로그램은 전공 분야마다 취업할 수 있는 회사를 교수나 교직원들이 학생들에게 알선해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전주대 교수와 교직원들은 밤낮 없이 회의를 하고,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교과부는 지난 5일 '2012학년도 정부 재정 지원 제한 대학 평가 결과 및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또한 통계청에 따르면, 고교 졸업자 수는 2012학년도 64만2183명, 2013학년도 57만5831명, 2018학년도 55만6630명, 2021학년도 47만2701명 등으로 급감하는 추세입니다. 2015년부터 대입 정원이 고교 졸업생 정원을 초과하는 현실에서 전주대의 구조조정 방향과 기준은 무엇입니까?- 전주대는 10년 전부터 저출산을 미리 예견하고, 거기에 맞춰 준비를 해왔습니다. 2009년 이전에 학생 정원을 302명 줄이고, 올해도 보건 계열에서 10명을 줄였습니다. 정원을 3280명에서 2812명으로 감축한 셈입니다. 그 사이 직원도 절반 정도 줄여 몸무게를 뺐습니다.앞으로는 학과별, 단과대학별로 교수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본부 측에서 지원할 작정입니다. 비전(Vision) 2020 마스터플랜을 만들기 위해 현재 TF팀도 가동 중입니다.▲ 총장님의 역할 모델은 누구이고, 전주대가 앞으로 벤치마킹할 대학을 꼽자면 어디인가요?- 한동대 김영길 총장입니다. 경북 포항에 있는 한동대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척박한 여건임에도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우수 대학으로 우뚝 섰습니다. 이미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적 경쟁력도 갖추었습니다. 이게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한동대도 건학 이념이 기독교 정신입니다. 한동대에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단시간 내에 최상위권 대학으로 우뚝 섰느냐'고. 교수들이 100% 투철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학생들을 그냥 학생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교육 공급자 입장이 아닌 학생들 눈높이에 맞추고, 그들의 장래를 위해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가르친 결과라고 들었습니다. 전주대도 한동대처럼 지역 대학, 기독교 대학, 사학으로서 많은 점에서 배울 게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까다로운 질문 하나 던지겠습니다. 블로그 '버둥거리는 비엔나 소시지'(http://iiai.blog.me/) 운영자는 지난해 5월 12일 그의 '사이비과학 탐험' 게시판에 '창조과학회 고건 교수의 타임지 왜곡-타임지가 전혀 비판하지 않은 진화론의 문제점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총장님이 미국 타임지가 전혀 비판하지 않은 진화론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는 내용인데요. 이 블로거 주장에 대한 총장님 의견이 궁금합니다.- 저는 몇십 년 동안 너무 바빠서 (드라마) '대장금'도 본 적이 없고, KBS 뉴스도 거의 못 봤습니다. 실제 그 블로그도 못 봤습니다. 타임지에는 친진화론 기사도 실리고, 반진화론 기사도 실립니다. 실제 갤럽 여론 조사 결과, 미국 시민들은 '진화론을 믿는다'가 33%, '(진화론은) 엉터리다'가 33%, 또 20몇%는 '양쪽을 단언할 정도로 깊이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 블로거가 틀리다, 옳다 해봤자 어디까지나 제 주관이고, (타임지 기사에 대한) 제 글도 간접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이 문제는 타임지 기사를 보고,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입니다.

  • 기획
  • 김준희
  • 2011.09.22 23:02

태기표 위원장은

너무 일찍부터 정치판에 뛰어 들었다가 정치를 훌훌접고 떠난지 10여년이 넘었습니다.이른바 불가에서 말하는 출가를 한셈입니다. 2009년 4월 29일 전주 완산갑 보선에 나가면서 다시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무총장이 안경율 의원인데 안의원은 대학때부터 동기입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대학동기 이기도하고 군대생활에서 같은 내무반에 있었던 전우이기도 합니다. 안의원이 출마를 몇 번 종용해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여러 가지 이유를 대지만 정치가 안되고 못되어서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하고 털고 일어섰지만 마음 한 끄트머리에는 미련이 많이 있었던 모양입니다.정치판에서 출가도 쉽게하고 다시 복귀 하는것도 쉽게 해서 사실 눈치가 많이 보였습니다.저를 우유부단하다고 합니다. 주위에서 들어내놓고 하지 않아서 스스로도 자평합니다.그러나 가슴엔 뜨겁게 개혁의 의지가 있습니다. 떠드는 개혁론자는 사실 개혁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이비이거나 프로파간다 용이거나 설익은 개혁론자 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개혁은 떠들면서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경험칙상 처절하게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혁의 강도와 속도를 낮추어 잡고 느리게 잡아서 보수적입니다. 그런점에서 저는 보수적입니다.독일 학자 송두율이가 말하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경계인입니다. 다른 분은 몰라도 제 경우에는 설익은 미완성이었고, 지금 시각에서 보면 큰소리만 치고 유치한 개량주의자이지 않았나 싶습니다.지금 과거를 회고해보면 젊었을 경우에 뭐가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고 무엇을 해야 되겠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준비가 덜 되었습니다. 저는 정당인이나 조직인으로서 성공을 못했습니다. 성공을 바라는 정치적 삶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깨달음은 지적인 방황과 좌절을 겪어보고 난 후의 얻어진 교훈입니다. 이제는 성공을 추구하는 정당인, 정치인이 되기보다는 시대와 지역이익에 관심을 갖는 현장정치에 참여하는 지식인으로서 복귀하고자 합니다.롱펠로우 시에서처럼 황혼이 되어도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라는 구절처럼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가는 힘에 벅차고 오직 고향을 사랑하는 현장 정치인 또는 사이비(?) 지식인으로서 돌아오고 싶습니다.▲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전 전주대학교 교수 ▲전 국정교과서 이사장 ▲전 전북도 정무부지사 ▲현 한나라당 전주완산갑 당협위원장 ▲현 전북지역발전특별위원장

  • 기획
  • 전북일보
  • 2011.09.15 23:02

태기표 한나라당 전북도당 위원장

태기표 한나라당 전북도당 위원장(62)이 지난 8일 취임식을 가졌다. 지도부 없이 1년 넘게 표류해온 한나라당 전북도당이 '태기표호'의 출범을 계기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집권당임에도 지역에서 별다른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눈총과, 다른 한편으로 민주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에 대한 반성이 겹쳐지는 상황에서 태 위원장의 향후 활약이 기대된다.-한나라당은 집권당임에도 전북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합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가장 큰 이유는 도민에게서 외면 받는 정당이라는 점입니다. 선거에서 한자리 숫자 득표율을 넘기지 못한지가 30년 가깝게 됩니다. 철저한 배척과 원내교두보 확보의 실패는 한나라당을 침묵의 정당, 존재하지 않는 정당으로 만들고 있습니다.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비롯되듯이, 지역감정은 한국 정치문화를 특징 짓는 풍토병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나라당은 T.K 세력이 중추부를 이루고 있고 민주당은 호남세력이 중심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나라 전북도당은 철저히 거부되고 배척 받음으로써 지역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된 것입니다.-같은 맥락에서 전북도당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먼저,정치적 충원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음으로써 극심한 인재빈혈증에 시달리고 있고, 새로운 당원의 수혈이 절대 요구됩니다. 전북도당의 전체 책임당원이 서울 한 지역구의 책임당원 수도 안되는 비극적인 성적표를 갖고 있습니다. 먼저 3000명 정도의 책임당원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러면서 노령화되어가는 당을 젊게 만들어야 합니다.또, 정당은 뜻을 같이 하는 자발적인 참여자들로서 구성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의지와 뜻이 무디어져가고 빛바래지고 있습니다. 패배주의와 당에 만연되고 있는 회의주의에 대한 동기부여와 당성함양에 주력해야 됩니다.-당협위원장들이 자리만 꿰차고 있지 않느냐, 너무 무기력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습니다. 도당위원장 공백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역의 현안문제에 대해 강건너 불구경한 감이 있습니다.▲그동안 도당의 구심점 공백에 따라 당이 거의 해채되는 듯한 모습을 도민에게 보여드려서 송구스럽습니다.집권여당으로서는 야당과의 권력투쟁, 또는 정책대결이 불가피한데 지역과 운명을 같이해야되는 지역인으로서는 지역이익의 확보를 위해서 정파가 다른 지방정부와 의견을 같이 해야되는 딜레마를 숙명적으로 안고 있습니다.신파극의 소재가 곧잘 되었던 스승을 따를 것이냐 사랑을 따를 것이냐의 고민과도 비슷합니다. 여기에서 스승은 당 또는 중앙당을 의미하고 사랑은 고향 또는 지역을 말합니다.-전북지역 당원들이 도당 중심이 아닌, 계파별 중심의 정치활동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당의 결집력을 더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데요.▲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는 대권후보들의 외곽모임이나 팬클럽은 그 존재의 타당성을 인정 하지만 당내조직에서 당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자제해야 됩니다.이른바 사조직 또는 넓은 의미에서 외곽조직은 당의 우호세력으로서 활동해야 될 것이며, 당도 상응하는 협조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여기에 대해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도당의 책임자로서 대응할 생각입니다.-내년 총선도 현재의 모습으로는 큰 성과를 내기 어려워 보이는 데, 내년 총선을 어떻게 예상하며, 총선 전략이 있다면.▲전쟁터에서 패배 할 것이라고 참호속에서 웅크리고 있거나 또는 몸이 붕붕 떠다니는 병사가 있다면 그 전투는 패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패배만하는 선거를 치렀습니다. 그래서 사실 담담합니다. 그 말은 더 이상 어려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이제는 도민들의 의식변화나 태도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제 느낌에는 가장 뜨거운 적도를 지나 이제는 희망봉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북예산 5조원 시대는 예산에 관한한 기원전과 기원후의 차이가 납니다.-선거때마다 인물난을 겪고 있는 데, 당내에서도 세대교체와 물갈이, 인재영입 등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정치적 성공을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면 지금 한나라당에 필요한 사람은 당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손을 들어 주겠습니다.알렉산더 대왕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을때 햇빛을 가리지 말라고 한 아테네의 철인 디오게네스가 대낯에 등불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을 찾았노라고 하는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인재를 이력서나 스펙에서 찾지 않고, 뜨거운 열정과 기다릴 줄 아는사람을 찾기위해 대명천지에 등불을 들고 다녔던 디오게네스가 되겠습니다.-지역구 국회의원이 1명도 없는 상태에서 중앙당과 소통에도 여러움이 많을 것 같은 데요.▲때로는 자존심이 팍팍 상할때가 많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일본정치가 오오노반보꾸가 했다는 말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가 떨어진 사람은 더 이상 정당인이 아니다" 라는 말처럼 배지의 차이가 극심한 것이 여의도 풍경입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학교의 동창이, 또는 고향의 선후배가 통하기도 하고 불가능한 지역 전라도에서 싸우는 한나라당맨은 빨치산처럼 군번없는 군인이기도 하고 계급장없는 유격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던하게 견디고 상대방의 따가운 시선정도는 모른척 넘어 갈 수 있는 연륜이 배어 있습니다.-정무부지사를 역임했기 때문에 전북도정에 대해 잘 아실 것입니다. 집권당 도당위원장으로서 전북발전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전북예산 2조,3조라면 민주당 일당 만으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산규모 5조시대를 활짝 열고 두자리 숫자인 10조이상이 되려면 절대로 일당체제가 되어서는 불가능합니다.축구게임에서 양쪽날개를 마음대로 구사해도 이기기 어려운 '쩐의전쟁'에서 한쪽만의 공격을 고집한다면 득점할 수 없습니다. '쩐의 전쟁'에서 여당은 공격수의 역할을 야당은 수비수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탁월한 수비수가 이따금씩 골대를 위협하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득점원은 공격수에게 있습니다. 예산전쟁, '쩐의 전쟁'에서 전북은 공격수 하나 없는 축구팀이라고 생각하시면 가장 쉽겠습니다.-임기 1년간 어디에 역점을 두시겠습니까. 꼭 해보고싶다는 게 있다면,.▲침묵하는 정당은 정당으로서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떠들라고 해서 고함지르는 것은 정치적으로 공해입니다. 책임있는 정당은 공부하고 준비해야 됩니다. 저희들의 맨파워가 훌륭한 정책팀을 만들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학습하고 준비해가면서 정책팀을 구성할 계획입니다.당외적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20% 이상 지지율을 올리는 후보가 꼭 나오기를 기대합니다.다른선거와 달리 총선에서 20% 이상 지지율은 이른바 수험생의 경우 본고사에서 받는 점수와 비슷합니다. 지역감정 벽 허물기를 현장에서 목도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기획
  • 김원용
  • 2011.09.15 23:02

김완주 지사와 김승수

김 부지사는 지난 1998년 당시 대학 지도교수의 소개로 현 김완주 도지사를 만난다. 이후 13년간 동고동락하면서 전주시장 2회, 전북도지사 2회를 만들어냈다. 처음 봤을 때 "이놈 정도는 괜찮겠다", "이 사람 정도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게 김 부지사의 설명.그는 김 시장의 당선과 함께 전주시청에 수행비서로 들어왔다. 이어 비서관, 비서실장 등을 거쳤다. 특히 지난 2006년 김완주 지사가 도지사에 당선된 후 비서실장, 대외협력국장 들을 지냈다. 그리고 이번에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정무부지사 중 최연소 부지사에 오른 것.애초 김 부지사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최근 전북대학원에서 다문화가정 관련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는 게 이를 설명해준다. 따라서 선거가 끝날 때마다 선거 캠프를 벗어나려 했으나 김 지사의 만류로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김 부지사와 김 지사는 요즘 인간적인 정을 뛰어 넘어 공동의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보다 잘사는 전북도를 건설하기 위해 서로 힘 닿는데까지 노력하고 희생하자는 것. 김 부지사는 "김완주호가 성공하도록 모든 열정과 진정성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지원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이리고와 전북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김 부지사는 아내 류진영씨와의 사이에 효민, 효재, 효승 2남1녀를 두고 있다. 자신의 승용차에 별도의 스피커를 달 만큼 음악광이자, 새벽에 스키를 타러 다닐만큼 스포츠광,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선물할 만큼 책을 좋아하는 독서광이다.

  • 기획
  • 구대식
  • 2011.09.01 23:02

김승수 신임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김승수 도 정무부지사는 31일 오후 한나라당 도당위원장을 선출하는 전주 리베라호텔을 찾았다. 도 정무부지사가 한나라당 도당위원장 선거장까지 찾아간 것은 처음이다. 앞서 김 부지사는 도내 시군 단체장과 시군의회 의장단을 직접 찾아갔다. 도내 국회의원, 시민사회단체, 언론계, 재계, 문화계 대표들도 일일이 찾았다. 그리고 3040분씩 얘기를 귀담아 듣고왔다. 의례적인 인사치레가 아니라 '소통 행정'을 시작한 셈이다. 이는 김 부지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역할들을 해나갈지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정무부지사로 취임한지 보름이 됐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을텐데, 취임 소감은? 솔직히 말하면 마음의 부담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인지 취임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감회나 소감을 가질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도가 많이 막혀 있다는 것을 피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쉽고, 무섭고. 두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김 부지사는 도지사 측근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도정이 측근위주의 폐쇄 행정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역기능과 지사에게 정확하게 여론이 전달될 것을 기대하는 순기능이 교차합니다. 모든 과정에서 기대보다 우려와 걱정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측근이고 경륜이 적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고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또 도민들의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측근이 지사님의 눈을 가린다던지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이 같은 굴레를 벗어날 것으로 봅니다, 무겁고 책임감이 큽니다.▲김 부지사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중앙관계가 약하고 행정경험도 풍부하지 못하며, 나이고 충분한 경험을 쌓을 만큼 많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무부지사 자리는 정무 관련업무가 기본적인 일입니다. 그동안 도지사 비서실장과 도 대외협력국장 등을 맡으면서 다양한 중앙인맥을 쌓아왔습니다. 전북도가 그동안 인맥이 없이 일을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약간 불편하겠지만 열정과 전략으로 극복하겠습니다. 경륜이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하기 힘듭니다. 이 분야에서 십 수년간 잔뼈가 굵었습니다.▲전북도가 최근 되는 일이 없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LH유치와 과학비즈니스벨트유치 등 대형사업을 잇따라 실패한 게 대표적입니다. 두 가지로 판단됩니다. 하나는 전라북도 도정의 수장은 도지사입니다. 잘됐던 잘 안됐던 도지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둘째는 전략실패보다는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최근 국회 예결위 계수조정위에 전북출신 의원이 배제됐다는 것은 도내 정치적 역량과 결부됩니다. 따라서 전북도가 호남권의 들러리에서 벗어나 독자권역을 설정해나가는 등 정치적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요. 특히나 도가 소통부재에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어떤 역할을 해나갈지 각오와 계획이 있다면요.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정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주체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무뎌져 있는 상황입니다. 서로 통하는 창구가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신뢰복원을 통해 재건토록 해나가겠습니다. 또 하나 공무원들이 할수없는 현안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돌파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지방행정체제 개편 등은 정무적 기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향후 조직개편 과정에서 이를 보완토록 해나가겠습니다.▲최근 LH유치 과정 등에서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과의 소통부족을 드러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 나갈 계획이신지요. 중앙정부와 정치권과의 소통, 그리고 도민과 언론과의 소통 등은 정무부지사의 요무입니다. 그간 다소 부서져 있었던 언론과 신뢰관계를 회복해 나가는데 노력하겠습니다. 정치권과의 관계에서도 전북도와 벌어져 있었던 틈새를 메워 나가는데 주력할 생각이고 강력한 스킨십을 통해 접촉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신뢰회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도정에 대한 불만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김완주 도지사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심지어 인척관계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어제 부안에서 열린 한중일 교류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본에서 온 미야자키현 지사가 저와 김 지사가 이름이 비슷하고, 얼굴이 닮았다며 혹시 친척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도지사 사모님 조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아마 외모가 조그맣고 닮아서 그런 오해를 사는 것 같습니다.▲앞으로 어떤 부지사로 남기를 원하십니까. 예컨대 '경제 부지사''문화 부지사' 등을 들 수 있겠는데요. 단언컨대 '소통 부지사'로 남고 싶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공직사회는 조직화된 도민 목소리를 듣는데에 그치고 있습니다. 미래가치가 있는 집단이나 조직에 대한 요구나 지적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북도가 특정 집단과 마찰을 빚거나 주요 현안을 다른 지역에 빼앗기는 우를 종종 범하고 있습니다. 모든 출발을 소통에서 시작토록 하겠습니다.▲개인적인 질문인데, 정부부지사가 자신(김 부지사)의 정치행보를 밟는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의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서 확고한 견해는 선출직 지도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참모는 할 수 있지만, 아직 선출직 지도자로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가 선출되는 것은 정말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고, 지도자로서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제가 어느 정도 성찰이 된 이후에나 생각해 보겠습니다.▲끝으로 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가지 안타까운 게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전북은 왜 새만금만 붙들고 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는 10대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앞서 있고,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식품분야, 농업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내적 변화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새만금에 매달리면서 동력을 상실한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토목사업에서 삶의 질 향상 사업으로 전환하는 시기입니다. 그에 맞춰 도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기획
  • 구대식
  • 2011.09.01 23:02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진무장임실)은 당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수습을 도맡아 뛰어난 위기수습 능력을 펼쳐보여왔다. 야구로 말하자면 선발투수로 나섰지만 경기가 잘 안풀려 위기가 닥쳐도 구원투수의 도움없이 스스로 상황을 마무리짓는 스타일이다. 지난 2007년 대선패배 이후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민주당의 대표를 맡아 2009년 두 번의 재보선과 2010년 62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그러나 선발투수가 항상 승리투수가 되지 못하듯 그는 2010년 728 재보선에서 패배하며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이후 10월3일 전당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이후 지난 4월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민시대'를 출범시켰고, 5월18일에는 광주에서 김해 봉하마을까지 도보행진을 하며 민주대장정에 오르는 등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나서고 있다.지난 2009년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차기 총선 수도권 출마를 선언한 그는 떠나는 지역구 관리와 도약을 위한 새로운 지역구 고민에 남들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 최고위원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향후 행보를 들어봤다.▲ 내년이면 지역구를 떠나게돼 아쉬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지역구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의정활동이 있다면.-오늘의 정세균이 있기까지 키워준 지역구를 떠나야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민들께서 앞 일에 대한 걱정을 함께 하며 격려를 많이 해주셔서 큰 힘이 됐습니다.사실 아직도 지역구를 떠난다는게 실감나지 않습니다. 내년 국가예산도 챙겨야 하고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해 지역을 챙길 생각입니다.기억에 남는 의정활동은 지역이 어려웠을 때인 것 같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걱정하며 어려움을 극복한 일이 생각납니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로 무주에 큰 피해가 발생했지요. 무풍면 도로가 끊기고 전기통신 등 모든 것이 두절됐습니다. 한 마디로 초토화돼 원시시대가 되었지요. 현지에 머물며 복구를 돕고 상황을 파악해 무주군에 2200억원의 복구비가 지원되도록 했습니다. 2005년 진안과 장수에 큰 수해가 발생했을때도 주민들과 함께 노력해 진무장 지역에 3500억원의 복구비가 지원됐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한 순간들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진무장임실 지역구 입지자들의 활동이 활발합니다. 지역에서는 정심(丁心)의 향배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기도 한데요.-(웃음) 좋은 사람이 해야죠. 민심을 얻는게 중요합니다. 지역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더 나아가 전북 발전과 대한민국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일꾼이면 좋겠습니다. 지역과 전북, 중앙의 일꾼으로 종합적으로 평가받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무장임실 지역구가 야권연대 대상지역이 될 가능성은 없나요.-진무장임실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입니다. 정책과 인물, 정당이 어우러져야 주민들로 부터 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도권 출마지역으로 서울 종로 지역구가 거론되고 있는데요.-당과 논의가 잘 되어야겠지요. (종로 이외의) 다른 곳은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야권통합 작업이 부진합니다. 민주세력의 선도통합론을 주창하셨는데.-야권의 대통합이 최선이지만 언제까지 진보정당의 통합을 구경하며 기다리고만 있을게 아니라 선도통합을 추진해야 합니다. 민주당이 통합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지 걱정입니다. 최근 만들어진 '혁신과 통합'모임, 창조한국당, 시민사회단체, 국민참여당 등과 (선도통합)논의를 빨리해야 합니다.▲ 야권통합과 관련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대폭적 양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야권통합이 호남 물갈이와 연계돼 지역에서 관심이 높은데요.-통합을 위해 민주당만 양보할 일은 아닙니다. 모두가 통합에 헌신한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물론 민주당이 큰 정당이라서 소홀할 수 없겠지요. 통합은 정책 논의가 선결돼야 합니다. 통합해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유능한 민주정부의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는 지역발전과 정치발전 기여도, 당에 대한 헌신이 기준이 돼야 합니다. 주민들이 가장 잘 압니다. 민심(여론)이 가장 중요합니다. 확실한 부적격 사유가 없다면 인위적 기준을 만들어 양적으로 계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의 내년 총선 공천 개혁안에 대한 생각은.-민심과 함께 당원들의 생각도 반영돼야 합니다. 배심원제는 좋은 제도로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외부 입김을 차단할 수 있도록 배심원단 규모를 늘려야 합니다. 적정선의 전략공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경쟁하지 않고도 스카우트할 만 한 훌륭한 인재라는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정치참여를 가장 먼저 권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문 이사장은 내년 대선의 판을 키우는데 기여할 사람입니다. 흥행이 돼야 국민들의 관심이 생기고 스타 탄생이 가능합니다. 문 이사장이 판을 키우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입니다. 저는 2008년부터 줄곧 '스타 프로젝트'를 주창해 왔습니다. (대선후보 결정과정의) 판을 키워 스타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내년 총선에서 부산경남에서 문 이사장과 김정길김영춘 전 의원 등이 직접 출마해 지역 유력인사들의 출마를 선도하고 승리해 의회권력을 교체해야 합니다.▲ 석패율제 도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꼭 도입해야 합니다. 영호남에서 여야 후보가 교차 당선되면 지역주의를 허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위기 수습능력을 인정받고 계시지만 대중적 지지기반은 약한 것 같습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셨는데.-지금은 대중성이 좀 부족하지만 민주당의 정체성에 맞고 정통성이 있는 제가 그간의 성과와 정책통으로서의 능력을 평가받으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이 어려울 때 헌신했고, 이명박 정부들어 역주행한 나라의 어려움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힘든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면 국민들께서 평가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끝으로 진무장임실 지역 주민과 전북 도민들께 드리고 말씀이 있다면.-아직 고별 인사를 드릴 때는 아니고 그동안 성원하고 키워주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한 전북의 일꾼이 되겠습니다.도민들께서도 더 큰 사랑으로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시길 기대합니다.

  • 기획
  • 강인석
  • 2011.08.25 23:02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