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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동학 연구·활동가들 - 정남기 유족회 고문 "동학혁명은 민족의 유산, 주민참여형 사업 개발 필요"

역사 바로 세우기, 전북 지자체·정치권 역할 중요 / 기념일 제정 이성적 토론 거치면 공감대 형성 가능

▲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산파역을 맡았던 정남기 상임고문.
동학농민혁명 유가족들의 위상은 혁명에 대한 평가와 궤를 같이 했다. ‘난’으로 치부되던 일제강점기까지 이름을 숨기고, 고향을 등진 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경우도 많았다. 선대가 혁명에 참여했던 사실을 당당히 밝힐 수 있었던 때는 혁명이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한 100주년 즈음이었다.

 

“이전까지 유족 스스로도 인식이 안됐고, ‘내가 후손이다’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유족회 발족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족회의 산파역을 맡았던 정남기 전 회장(71, 현 유족회 상임고문)을 만나 혁명이 어떻게 기려져야 할지 들어보았다. 정 전 회장은 유족회 결성 당시 총무를 맡았고(초대 회장은 김인배 후손 김영중씨), 2000년부터 10년 가까이 유족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100년이 지난 뒤에야 유족회가 결성됐습니다. 어떻게 유족회가 출범했는지.

 

“지도자들의 후손을 제외하고 일반 참여자들의 후손은 그동안 밖으로 드러내는 것 자체을 꺼리는 분위기 아니었습니까. 유족회 발족도 유족이 아닌, 역사문제연구소를 이끌던 이이화 선생을 중심으로 각계 인사들이 나서 주셨습니다. 100주년이 되던 1994년 3월3일 역사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조촐하게 발족했습니다.”

 

-유족회의 그동안 성과를 꼽는다면.

 

“유족회의 가장 큰 목표는 혁명에 참여했던 선대의 명예회복이었습니다. 서훈범국민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언론인 출신의 김중배씨가 위원장을, 제가 집행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후손들이지만, 모금운동을 벌이는 등 유족들이 참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2004년 특별법이 제정으로 명예회복의 성과를 거뒀고, 법에 따라 1만여명이 유족으로 등록하게 됐습니다.”

 

-혁명을 기리는 데 유족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 데요.

 

“‘공적서 하나 받으면 뭐하냐”고 불만을 갖는 유족들도 있어요. 그러나 진정한 후손은 정신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혈통은 후손이면서 반혁명적으로 간다면 진정한 후손이라고 할 수 없죠. 참여정부 때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기숙 교수(이화여대)가 고부봉기의 빌미를 제공했던 조병갑의 증손이지만, 유족회에 와서 진정어린 사과를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후손 같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선조가 관군이고 진압군이라는 게 문제가 아니며, 편견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혁명은 모두의 것입니다. 상생과 화해로 가는 것이 후손된 도리입니다. ”

 

-유족들 사이에 보상을 바라는 분위기도 감지되는 데요.

 

“독립운동 유족과의 형평성을 들어 보상을 염두에 둔 유족들도 없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또 특별법상 유공자로서의 훈격도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고 추상적·선언적으로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여자의 후손 중 손자들도 많지 않고, 아직 정치·사회적으로 혁명에 대한 인식이 낮아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다만, 국가의 추모행사 주관을 의무화 하는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4월11일 관련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혁명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을 말씀하셨는데, 유족들이 더 절감하겠지요.

 

“유족들이 못 나고, 못 배워서 역사를 바로세우지 못한 책임도 있지만, 국가적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민족분단의 상황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높이 평가하는 북한을 의식한 점도 있지만, 전국민이 자랑스러운 혁명으로 여길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혁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유족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입니다.

 

-국가뿐 아니라 자치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보는 데요. 특히 전북이 혁명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에서 전북지역 자치단체들이나 전북정치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역대 전북도지사 중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있었는지 의구심을 갖습니다. 말로는 전봉준을 외치면서 동학과 전봉준을 위해 투자한 게 있습니까. 제주 4.3사태만 보십시오. 제주도와 도민들이 똘똘 뭉쳐 국가적 관심을 끌어내지 않았습니까. 동학농민혁명이 몇 백배 큰 사건인데 국가 행사로만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전봉준 장군을 꼽았지만, 2006년 한 조사 결과 전봉준을 꼽은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북지역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없었다는 이야기죠.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역사인식을 제대로 하는 도지사와 국회의원이 나와야 합니다.

 

-전국 각 지역에 기념사업회가 꾸려지고, 여러 기념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는데.

 

“10년전, 20년전 방식 그대로 답습해서는 달라질 게 없습니다. 기념행사장에 노인들을 불러서 숫자만 채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학술대회도 많이 해봤고, 죽창 들고 거리행진도 많이 하지만 주민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민참여형 사업개발이 중요합니다.

 

-기념사업을 둘러싸고 지역간·단체간 갈등이 여전한 데요.

 

“100주년 때 기념우표 발행을 놓고 천도교와 혁명 관련 사업회간 명칭을 놓고 싸워 결국 우표발행을 못했습니다. 기념일을 놓고 언론에서 정읍과 고창간 싸움으로 몰고 가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표발행 때도 무장기포일로 기념일을 삼는데는 이론이 없었고, 몇 차례 학술대회에서도 전문가들 사이에 무장기포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고창에서 기념일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읍에서 문제를 삼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앞으로 이성적인 대화와 토론을 거치면 공감대를 형성할 것으로 봅니다.”

 

● 정남기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상임 고문은 기자 출신…언론재단 이사장 지내 "반골기질, 동학 할아버지 닮았다"

 

정남기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상임 고문은 고창 아산 출신으로,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1970년대 초 현대경제일보(현 한국경제신문 전신)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디딘 그는 기자협회 합동통신(연합통신 전신) 분회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됐으며, 1988년 연합통신(현 연합뉴스)에 복직해 조사부장, 편집부장, 논설위원실장, 민족뉴스취재본부장, 동북아정보문화센터상임이사 등을 역임했다. 퇴직 후에는 연합뉴스 동북아시아정보문화센터 상임이사 겸 소장과 한국편집미디어협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2005년부터 만 3년간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동학농민혁명유족회와의 인연은 정 고문의 할아버지(정백현 1869~ 1920, 본명은 근영)가 혁명 당시 농민군 지도부인‘비서’로 활동했기 때문. 백산결진 당시 송희옥과 함께 비서로 임명된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당시 총대장으로 추대된 전봉준의‘비서’라는 풀이도 있지만, 심부름 역할을 하는 비서가 아닌, 비밀스런 글을 작성하는 임무를 말하는 것으로 이이화 선생은 풀이했다.

 

정 고문은 고교시절(고창고) 조부의 혁명 참여 사실을 알았으나 부친은 철저히 숨겼으며 100주년 때 쯤에서야 말씀하셨단다. 26세에 혁명에 참여했던 조부는 서울로 피신해있다가 3년뒤 고향으로 내려왔으나, 대신 증조부가 고창 흥덕관아에 잡혀가 고문 끝에 사망했다. 조부는 동학입도 당시 상황을 적은 일기 〈진암견문록〉을 남겼으며, 정 고문이 전주역사박물관에 기탁했다.

 

그는 자신의 반골성향이 “동학 할아버지에게서 그 힘이 나온다”고 자신있게 말한단다.

김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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