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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유적지·기념시설 관리 실태] 전국 동학혁명 유적지 353곳 중 국가지정문화재 6곳뿐

붕괴 위험 김제 원평집강소 본보 보도에 보수 시작 / 전남 장흥 '석대들 성역화' 예산 지연에 주민 갈등 / 충북 보은 기념공원 건립 과정 '역사 왜곡' 논란도

동학농민혁명 2주갑(120주년)을 맞았지만 전국에 관련 유적지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였던 전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적지의 문화재 지정 및 등록 숫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 졸속 복원과 함께 동학농민혁명 정신에 맞지 않는 기념물 설치 등은 동학농민혁명의 세계화에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문화재 등록이 시급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중심으로 현황과 과제 등을 진단해 본다.

 

△유적지 문화재 지정 ‘거북이 걸음’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는 현재 체계적인 보존·관리가 되지 않아 하루가 다르게 훼손되고 있다. 유적지에 대해, 문화재 지정·등록을 시급하게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는 모두 353개소이며, 전북에 있는 유적지는 156개소(43%)로 가장 많다. 광주·전남(83개)이 다음으로 많았고, 충남(40개), 대구·경북(30개) 등의 순을 기록했으며, 서울·울산(1개)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적지 숫자에 비해 문화재 지정 및 등록 현황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까지 전국 유적지 가운데 6개가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정 문화재 9개, 시·군 향토문화유적 3개, 등록문화재 1개 등이 문화재로 지정됐다.

 

동학농민혁명이 아닌 다른 사유로 문화재에 지정된 유적지는 모두 52건으로, 이곳은 동학농민혁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곳이다. 하지만 동학농민혁명 만으로 지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경우까지 합해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중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71개소로 등록률은 20%에 불과하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동학농민혁명이 세계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역사적 사건인 만큼 유적지에 대해 철저한 연구 및 고증을 거쳐 문화재로 등록하는 게 시급하다”면서 “100주년, 2주갑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해에만 문화재 등록을 추진할 게 아니라 평소에도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제 원평집강소

▲ 무너지기 직전의 김제 원평집강소. 현재는 긴급복구공사가 진행 중이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수십년 째 방치된 동학농민혁명 중요 유적지인 원평집강소는 붕괴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자치단체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왔었다. 지난 3월 전북일보가 원평집강소의 붕괴 위험성을 지적한 뒤, 관계 당국의 대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지난 6월 23일부터 3일 동안 연속 보도를 통해 보존 대책을 촉구했다.

 

보도 직후 김제시는 원평집강소 긴급 보수공사를 실시했고, 대대적인 보수 공사와 함께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최규성 국회의원(김제·완주)은 원평집강소 보수공사에 특별교부세 투입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원평집강소 보존 문제는 결국 문화재청이 11월 집강소 건물과 부지를 긴급 매입해 복원한 후 김제시에 위탁·관리를 맡기기로 최종 결정하면서 일단락됐다.

 

△완주 대둔산 최후 항전지

 

완주군은 현재 운주면 대둔산 7-8부 능선에 자리잡은 ‘대둔산 최후 항전지’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산15-1번지 해발 715m의 거대한 암반의 상단에 자리한 최후 항전지는 동학농민군이 1894년 11월 중순부터 다음해 2월 18일까지 3개월여 동안 관군·일본군에 맞서 싸우던 곳이다.

 

대둔산 최후 항전지는 다른 지역의 동학농민군이 대부분 사라진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저항, 동학혁명의 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최후 항전지는 암벽등반가들이 아니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자리잡아, 당시 원형이 상당부분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더하다.

 

△전남 장흥 최후 전적지 ‘석대들’

▲ 장흥 동학농민혁명 유족회 이정신 회장이 동학농민혁명 최후 격전이 벌어진 석대들을 가리키고 있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전남 장흥의 동학농민혁명 최후 전적지인 ‘석대들’ 성역화 사업은 두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성역화 사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고, 석대들 일대가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인근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 장흥군은 지난 2009년 장흥읍 남외리 석대들 일대 3만5201㎡의 부지에 96억원을 들여 장흥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성을 알릴 수 있는 기념관과 조형물 등을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장흥군은 애초 지난 2009년 5억5000만원을 들여 기본 및 실시설계를 실시하고 부지를 매입, 2010년에는 10억원을 들여 착공할 예정이었다. 또 기념관 및 조경사업은 2011년부터 80억5000만원의 예산으로 추진해 2012년 완공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국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완공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이에 더해 지난 2009년 석대들 전적지가 국가지정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이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반발하며 한동안 공사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한편 장흥 석대들 전적지는 전봉준을 비롯한 지도부가 모두 체포된 이후 3만명이 넘는 농민군이 참여해 항전을 계속하다 2000명 이상이 사망한 동학농민혁명의 최대·최후의 격전지다.

 

△충북 보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지난 2007년 7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완공된 보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은 건립 과정에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충북지역 시민단체들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유적지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제기하면서다.

 

실제 공원 입구에 세워진 기념물에는 ‘1894년 7월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 ‘1894년 7월 청일전쟁 발발’→ ‘전쟁 참화에 시달린 백성’→ ‘1894년 8월 보은의 동학도 의병봉기 계획 세워’ 순으로 표지석이 세워졌다.

 

하지만 이는 동학농민운동을 제대로 기술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보은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박달한 사무국장은 “보은의 동학농민운동은 1893년 보은취회부터 시작됐다. 이 표지석의 설명대로라면 동학농민혁명은 왜세의 침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는 것으로 귀결된다”면서 “하지만 동학농민혁명은 자주적 자발적으로 발생한 운동이며 결코 피동적으로 누구에 의해서 봉기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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