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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지역별 유적지와 기념사업 - 고창] '무장기포지~운곡저수지' 농민군 진격로, 마실길로 단장

전봉준 장군이 포고문 발표했던 '구수내' / 훈련·주둔지 왕제산 자락에 홍보관 건립 / 군, 전담부서 두고 기념사업 의욕적 추진

▲ 진윤식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무장기포지에 설치된 안내판을 가리키며 ‘동학 마실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창군이 자랑하는 특별한 행정조직이 두 개가 있는데요, 하나는 고인돌계고 다른 하나는 동학농민혁명계예요.”

 

운전대를 잡은 안기성(38) 씨가 말했다. 2010년에 문화관광과 산하조직으로 편성된 동학농민혁명계는 혁명 성지화 사업, 학술·홍보 사업, 유적지 답사·관리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안 씨는 여기서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지자체가 나서서 전담부서까지 두고 관련 사업을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조금은 생소하게 들렸다. 바로 얼마 전에도 도내 유적지 몇 곳이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서 훼손돼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지 않았나.

 

“이강수 군수가 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맡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했죠.” 진윤식(71)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말했다. 지자체와 민간이 함께 혁명을 기려 나간다니, ‘관민상화(官民相和)’가 따로 없다. 안 씨가 모는 자동차가, 큰 석조 조형물이 세워진 광장 같은 곳에서 멈췄다. 무장기포 기념지였다.

 

△구수내 모래뜰의 ‘혁명’ 기치

 

“옛날에는 구수내라고 해서, 아홉 갈래의 물이 내려오던 곳이었어요. 그 물에 쓸려 내려온 모래가 여기에 넓은 모래사장을 형성했죠.”

 

진윤식 부이사장이 두암저수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형이 마치 연병장 같은 곳이라, 농민군이 모여 훈련하기에 좋은 곳이었죠.”

 

기념지에는 죽창과 농민군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안내판, 비석이 놓여 있었다. 한켠에는 무죄 판결을 받고 방면돼 귀향하던 중에 다시 잡혀 죽었다는 고창주라는 사람을 기리는 비석도 있었다.

 

고부봉기 후 안핵사 이용태의 폭정에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던 1894년 3월, 이곳에 농민군 3500여명이 모였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큰 세력을 거느리고 있던 손화중과 전봉준, 김덕명, 김개남 등 이름 있는 동학 지도자들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며 뜻을 모은 것이다.

 

이것을 ‘무장현에서 포(동학교도의 단위)가 들고 일어났다’ 해서 ‘무장기포’라고 한다. 해마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데, 올해 기념제에는 10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 무장기포기념지에 설치돼 있는 기념 조형물.

이곳에서 전봉준은 포고문을 읽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 ‘서울로 쳐들어가 권귀를 모두 없앤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4대 명의와 ‘항복하는 자는 대접한다’,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12개조 규율을 발표했다.

 

‘충’과 ‘효’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다는 점으로 보아 동학군의 지도자들이 유교적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선비, 훈장 출신이 많았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곳은 아직 문화재로 등록돼 있는 곳은 아니다. 안기성 씨는 “지난 4월에 문화재 등록 신청을 했고, 오는 24일에 현장 실사가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혁명을 품은 산 여시뫼봉

 

공음면사무소를 지나 왕제산로를 타고 동쪽으로 달렸다. 아니, 가다 서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달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도로에 자주 멈춰선 이유는 바로 이 길 주변 군데군데에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유적들이 산재해있기 때문이었다. 왕제산로 주변에는 동학농민군이 숙영했던 여시뫼봉, 농민군이 타고 넘었던 소숙재, 과실재 등이 있다.

 

여시뫼봉은 왕제산의 다른 이름인데, 해발 151m의 야트막한 산이다. 무장기포 당시에는 농민군의 훈련장으로 쓰이기도 했고,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한 후 고창을 거쳐 남하할 때에는 주둔지로 쓰이기도 했다.

 

또 전봉준, 김덕명, 김개남 등 동학 지도자들이 여시뫼봉 근처에 있던 김성칠 접주의 집에서 신중론을 펴던 손화중을 설득해 무장기포를 모의했다는 내용도 전해져 오고 있다.

 

여시뫼봉의 한 쪽 자락에는 지금은 폐교된 산왕초등학교가 있다. 폐교된 후 고창군이 이를 사들였는데, 옛 교사에 귀농·귀촌학교와 동학농민혁명 홍보관이 들어서 있다.

 

지난 4월 24일에 문을 연 홍보관은 아직 상시개방이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기념사업회 인력이 부족해 상주인원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전문 해설사도 없어, ‘홍보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진 부이사장은 “유품 같은 거라도 전시해놓아야 하는데 아쉽다”면서 “앞으로 이 건물 사무실에 사무국장과 해설사를 배치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민군 진격로와 무장읍성

 

“도로가 새로 깔려서 없어졌는데, 저쪽 둑부터 이쪽으로 쭉 이어지는 옛 길이 있었거든요. 이게 농민군의 당시 진격롭니다.”

 

무장읍성을 향해 가다가 다시 멈춰선 어느 골목길에서, 진 부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골목길 한쪽으로 좀더 작은 길이 갈라지는데, 무장읍성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었다.

 

고창 지역의 농민군 진격로가 밝혀진 것은 전적으로 진 부이사장의 공이다.

 

농민운동을 하다 2000년대에 동학혁명사 연구에 뛰어든 그는, 온갖 자료를 뒤지고 현장을 답사하며 진격로를 밝혀냈다. 2011년 12월에 ‘동학 마실길’이라는 이름으로 개통된 길(무장기포지~운곡저수지)은 그가 밝혀낸 농민군 진격로를 따른다.

 

진격로는 무장읍성 안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고, 읍성 바로 앞에서 꺾인다. 세몰이를 하며 진격하던 농민군은 무장읍성을 그냥 지나친 뒤 줄포를 지나 고부성으로 곧장 진격했다. 진 부이사장은 이를 “처음부터 고부성-전주-서울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농민군이 무장읍성을 점령한 것은, 황토현 전투 승리 후 홍계훈의 경군이 온다는 소식에 진로를 돌려 고창·무장 지역으로 남하하면서다.

 

사적 제346호인 무장읍성은 현재 그 성곽과 동헌 복원 공사의 마무리 작업이 진행 중이다.

 

■ 손화중, 마애불 배꼽서 '비결 훔치다'

 

- 고창 지역 동학혁명 관련 유적 총 21곳

 

고창군에 따르면 고창 지역에는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유적이 총 21곳이 있다.

 

사적 제145호 고창읍성은 ‘모양성’이라는 이름과 ‘답성놀이’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축조됐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1894년 4월 7일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한 농민군은 다음날 고창을 점령했다. 농민군은 이 때 고창읍성에 들어가 갇혀 있던 동학교도 7명을 구출하고 관아 시설을 파괴했다.

 

농민군은 또 흥성에도 들어가 관아를 점령하고 접주 자치구를 설치했다. 흥덕면에 있는 흥성 관아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돼 있다.

 

보물 제1200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고려시대 혹은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가 15.6m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마애불상이다.

 

바위에 새겨져 있는 이 불상의 배꼽에 신비한 비결이 들어있고, 이 비결이 세상에 나오면 한양이 망할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1892년에 대접주 손화중이 이를 탈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 사건 이후 ‘세상이 바뀔 것을 바라고’ 동학에 입도하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한편 고창 지역은 손화중 포의 세력권이었던 만큼 손화중의 거점도 여러 곳에 있었다. 현재는 괴치 도소와 양실 도소 두 곳이 전해지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고창은 또 전봉준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그간 고부, 태인, 전주 등 여러 설이 분분했지만, 이기화 전 고창문화원장을 비롯한 연구자들이 전봉준의 출생지가 고창 죽림리 당촌마을임을 밝혀냈다. 전봉준이 태어난 집은 고창읍 죽림리에 복원돼 있는데, 군과 기념사업회는 하반기에 문화재 등록을 신청할 예정이다. 바로 옆에 전봉준 장군 생활전시관이 자리해 있다.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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