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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지역별 유적지와 기념사업 - 남원] 천도교 성지이자 전라좌도 심장부…'동학과 혁명' 공존

최제우가 머물며 교리 세운 교룡산 은적암 / 김개남이 설치한 대도회소는 흔적도 없어 / 농민군 승전 다짐 기 꽂았던 깃대바위 남아 / 남원 기념사업회 '순례길 벨트' 적극 추진

   
▲ 한병옥 전 남원동학혁명기념사업회장이 지난달 27일 남원 교룡산성 입구에서 남원지역 동학농민혁명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교룡산성 일대에는 동학농민군이 주둔했던 선국사와, 동학 창시자 최제우가 은거했던 은적암 등의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경주에서 포교활동을 펼치던 동학 창시자 최제우는 갑자기 짐을 꾸려야 했다.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다. 1861년 성리학을 숭상하는 유생들이 최제우가 가르치는 도를 서학으로 몰기 시작한 뒤, 음력 11월 경주관아에서 그의 활동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제우는 경주를 떠나 울산, 부산 등을 거쳐 전라도 남원으로 왔다. 그해 음력 12월이다. 이후 남원 교룡산성 은적암에서 6개월간 체류하며 동학의 근간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의 핵심 사상을 가다듬는다.

 

정확히 32년 후 남원은 동학농민혁명에서 전라좌도 중심지가 된다. 1894년 전주성 점령 이후 여러 지역에 집강소가 설치됐지만, 지방토호 등 보수세력이 강했던 남원과 운봉은 집강소 설치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김개남 장군은 농민군을 이끌고 남원성에 도착 동학대도회소를 설치한다. 김개남은 남원도호부의 관할인 담양·순창·무주·임실·곡성·진안·용담·장수를 넘어 순천·광양·낙안·보성 등까지 남원대도회소의 관할에 포함시켜 전라좌도를 호령했다.

 

이처럼 남원은 동학농민혁명에서 ‘동학’과 ‘혁명’이 공존하는 유일한 장소다.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지역의 상징적인 장소들을 엮어 ‘남원동학농민혁명 순례길 벨트’를 만들었다.

 

△동학 교리의 모태 은적암

   
▲ 동학농민군이 주둔했던 선국사.

순례길 벨트 출발지인 남원 교룡산에 위치한 은적암(隱蹟庵). 한병옥 전 남원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장이 길을 잡았다. 남원지역 동학농민군이 주둔했던 선국사(善國寺)를 지나 20여분 정도를 오르자 작은 암자터가 나왔다. 오르기 어려운 곳은 아니지만 한 전회장의 안내가 없었다면 찾아가기 힘든 곳이었다.

 

관아로부터 활동중지 명령을 받게 된 최제우는 이곳으로 몸을 피했다. 1861년 11월 제자 최중희와 함께 경주를 떠나 울산·부산·진해·고성·여수·구례를 거쳐 약 두 달 만에 남원에 도착했다. 은적암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백용성이 처음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

 

최제우는 이곳에서 6개월간 머물며 동학 교리의 근간을 마련하고 집필과 포교에 들어간다. ‘천도교 전주종리원 연혁’과 ‘오하기문’에 따르면 최제우는 이 시기에 전주·지례·금산·진산까지 왕래하며 포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최제우가 남원에 머문 약 6개월은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집필을 한 시기다.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이나 포교가사집인 ‘용담유사’의 핵심을 이루는 글들이 이 기간에 작성됐다.

 

특히 주목해야 할 글은 ‘동학론’이다. 최제우는 그동안 유림들에 의해 ‘서도’ 혹은 ‘서학’으로 불리는 천주교도로 내몰리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의 신념체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쓴 글이 ‘동학론’이다.

 

최제우가 동학이란 용어를 처음 쓰면서 동학을 신념체계로 정립한 곳이 바로 남원이며 교룡산의 은적암이다.

 

△전라좌도 동학대도회소 남원

 

유림사상을 기반으로 한 지방토호 등 보수세력이 강했던 남원에서 김개남 장군을 맞이한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양반 토호들이었다.

 

남원지역에 집강소 설치가 불가능하자 김개남은 1894년 6월 12일 태인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순창·옥과·담양·창평·순천 등을 돌아 6월 25일 남원성에 도착한다. 이 때 김개남을 남원으로 인도한 사람은 김홍기 남원접주와 이사명 진안접주다. 한학을 공부하며 경제적으로도 풍족했던 장인 최봉성의 영향을 받은 김홍기는 남원대접주 등을 역임하면서 5000여호를 동학에 입문시켰다. 이사명은 본관이 전주 이씨로 수 차례 과거 시험을 치렀을 정도로 학식이 높았다.

 

이들의 도움으로 남원성에 입성한 김개남은 옛 남원군청 자리에 전라좌도 동학대도회소를 설치한다. 김개남은 동학대도회소가 자리를 잡아가자 백성들을 착취했던 아전, 유림, 토호들의 재물을 반환케 했고 노비들을 해방시켰다. 지주들의 토지를 농민들의 대표를 뽑아 공평하게 분배하는가 하면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면서 포교에 힘쓰는 한편, 식량·무기 등을 비축해 장기전에 대비했다. 이를 기반으로 그해 7월 15일 남원대회에 5만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수 있었다.

 

아쉽게도 김개남 장군과 남원지역 동학농민군이 활약했던 대도회소는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사라진 자리에는 기념비 하나 없는 실정이다.

 

△혁명의 꿈 묻힌 방아재

   
▲ 운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깃대바위.

남원 산동면에서 관음재와 방아재를 넘으면 곧바로 운봉이다. 120년 전 동학농민군은 운봉으로 가는 길목이 한 눈에 보이는 이곳에 깃대바위를 만들고 승전을 다짐하는 기를 꽂았다.

 

그러나 지금은 차를 타고 채 10여분이 안돼 갈 수 있는 이곳은 동학농민군에는 갈수 없는 길이었다.

 

남원시가지는 평균 해발 100m, 운봉고원은 460m 정도다. 350m 이상 고도차이가 있는데다 백두대간 산줄기로 막혀있어 삼국시대 이전부터 국경 등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험난한 지형이었다. 결국 남원지역 동학농민군의 꿈은 이 능선에서 좌초되고 말았다.

 

김개남 장군이 제2차 봉기에서 청주성 공격에 나선 뒤 남원에 남은 농민군 1만여명 중 7000여명은 산동방 부동에 진을 치고 운봉 공격 준비를 완료했다. 당시 운봉에는 박봉양을 주축으로 한 민보군이 남원에 있는 동학군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었다. 이들은 영남지방으로부터 300정의 무기와 화약 등을 지원받아 전투력을 강화했고, 영남지방 보수 세력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박복양은 2000여명의 병력을 방아재에 배치하고 선제공격할 기세를 보이다가 도망치는 척하면서 농민군을 유인했다. 계략에 말려든 농민군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

 

‘오하기문(梧下記聞)’에는 당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적이 산상에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천보총을 일제히 발사해 골짜기를 진동시켰다. 소들이 놀라 뒤돌아 달리며 미친 듯이 울부짖고 난폭하게 날뛰며 뿔로 찌르고 발길질을 하니 밟히고 찔려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남원 동학혁명기념사업회

 

“처음에는 동학에 동자도 몰랐지요.”

 

지난 2004년 남원 동학혁명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을 맡은 한병옥 전 회장은 시민사회단체 운동가 출신이다.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해 온 학자도 아니고 유족도 아니다. 그런 그가 초대회장을 맡게된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유족들을 중심으로 기념사업회를 조직하려 했으나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하는데 거절할 수가 있어야지.”

 

한 전 회장은 어쩔 수 없이 나섰다고 말했지만, 그의 말 속에는 남원지역 동학농민운동 역사를 보존·계승하고 알려야 한다는 신념이 묻어났다.

 

남원 동학혁명기념사업회는 한 전 회장을 중심으로 매년 유적지에 기념비를 건립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또 남원동학을 알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책자발간 및 학술대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라좌도 동학농민혁명 희생영령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남원동학농민혁명 순례 벨트’는 기념사업회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 중에 하나다. ‘은적암(최제우 경전집필)-교룡산성(동학농민군주둔지)-구 남원역(남원성전투지)-구 군청지(대도소설치지)-광한루원(서형칠약방)-요천(동학농민군훈련장)’을 잇는 1코스와 ‘방아치전투지-쪽뚤-깃대바위-류태홍묘-여원치-박봉양공적비’ 2코스 등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남원 지역 동학농민혁명사를 널리 알린다는 계획이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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