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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분노

어찌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숨둥? 며칠 전 만주 일대를 작품 취재차 돌다 온 지인에게 연변 현지 가이드가 울분을 토하며 했다는 말이다. 올해 개봉해 수백 만 관객을 동원한 <범죄도시> <청년경찰>에는 연변 말을 쓰는 조폭들이 나온다. 납치, 인신매매, 살인을 일삼는 살벌하고 잔인한 캐릭터이다. 폭력 느와르 영화를 찍는 기법들이 날로 진화하면서 영화 속 인물들의 폭력성은 사실 그 이상의 실감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연변으로 상징되는 조선족들의 인상은 그렇게 대중적으로 규정되고 중국동포들이 밀집해 사는 가리봉동은 범죄의 소굴처럼 여겨져 발길 닿기 껄끄러운 지역이 된다. 한국사회에서 소수자일 수 밖에 없는 중국동포들은 <청년경찰> 영화 상영 중단과 제작사 사과를 요구하는 항의집회를 열기도 했고 공대위를 꾸려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한다.여수에서 상경한 폭력배들의 신산과 몰락을 그린 <신세계>(2013)에서 연변 폭력배들이 국내 조폭의 지시를 받는 무식한 폭력하청업자로 나오는 것에 비해 <범죄도시> 등에서는 국내 주먹들을 압도하고 대체하는 신흥 악의 본산으로 나온다. 2004년 실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한 영화이기에 완전히 비현실적 설정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조폭들의 현황을 추적하는 기사에 따르면 조폭들의 계보에도 외국인 체류자들의 점유율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파악되는 조폭들의 절반에 이르는 숫자가 중국 동포 출신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중국과 수교가 막 이루어진 20여 년 전만 해도 연변은 가볼 수 없는 북한을 대체하여 조선의 옛 풍습과 문화가 살아 있는 순박한 고장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교류가 빈번해진 후, 연변은 어문과 문화의 기준처럼 여겨지던 북조선을 벗어나 급속히 한국행 러시에 휘말렸고 조선족은 국내 노동시장의 하층에 편입되어 서울 주변 곳곳에 집단거주지역이 생겨났다. 연변을 찾는 한국인들의 발길이 뜸해진 것과 정반대로 한국으로 유입되는 조선족들이 급증하면서 연변 내부는 밖으로 떠난 사람들로 공동화되었다. 중국 자체에서도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농촌사회가 해체되면서 북경 상해 등 큰 도시는 농민공과 주변부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변방의 주민들로 넘쳐났다. 연변 조선족은 그중에서도 특유의 성실함과 명민함으로 여러 곳에서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예전 깡패영화에는 주로 전라도 사투리가 나왔다. 여수, 목포라는 지명은 깡패들이 맨몸으로 치고 올라오는 고향의 대명사처럼 쓰였고 광주 출신들은 서울로 상경하여 돈이 넘쳐나는 신흥개발의 틈새에서 유흥지구의 패권을 놓고 칼질을 교환하며 깡패들의 전설 시대를 열었다. 조성식 기자가 쓴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에는 꽤나 흥미롭게 활극들이 나오지만 다 먹잘 것을 찾아 떠도는 부랑의 신세였다. 모든 폭력영화가 그렇듯 주먹은 결코 권력을 이길 수 없다. 수갑을 채울 권력 앞에, 총칼 앞에 사내다움과 완력은 너무도 무력하다.영화는 북쪽 말과 연변의 억양을 실어 낯선 것에 대한 공포를 효과적으로 쓸 뿐, 연변 사람들의 내면과 인생 유전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철저한 타자의 시선, 구역과 구역을 나누어 개별의 울타리에 삶을 가두는 앵글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육중한 문과 보안 시스템을 자랑하는 거주지의 경계들이 그렇고, 대규모 사육시설과 방역 체계들을 유지하고도 수 틀리면 내려지는 살처분들이 그렇다. 언젠가는 살을 맞대고 네 삶 내 삶 섞여 살아가야 할 모국어의 한 자식들을 대하는 이런 가벼움이 어느날 깊숙한 곳 우리의 허방을 찌르는 진짜 칼로 돌아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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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28 23:02

효 오디세이

노인복지와 효를 연구하고 교육한다는 효 문화원 개강식에 갔다. 부원장 하는 친구를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동기 동창 모임에서 그는 효를 이야기하려다 제지당한 적이 있다. 고리타분하다, 진부하다, 도(道)는 안다. 뭐 이런 식으로.수염, 한복, 건(巾), 큰절, 이질감. 뗄 수 없는 선입감과 예법에 대한 부담으로 온몸이 뻣뻣해졌다. 잘 버텨보자는 생각뿐 이었다. 그런데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장내에는 말쑥한 차림의 신사 숙녀가 가득 모여 있었다. 효를 하는, 효를 하려는 분들이었다. 이미 수백 명이 교육을 받았고 많은 사람이 효 지도사로 활동한다고 했다.여기서는 효를 HYO라고 쓴다. Harmony of Young & Old의 이니셜이다. 자녀세대와 부모세대의 화합.을 목표로 한다. 또 한 세대가 30년이란 사실을 강조한다. 30살, 60살, 90살, 120살 이렇게. 윗사람과 아랫사람 하던 이분법적 효와 성질이 다르다. 자기적,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으로 구분하여 접근한다. 당연히 대상은 전 연령층이다.내가 아는 효(孝)는 어버이를 잘 섬기는 일. 이다. 그저 부모님 잘 모시면 효자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국가적 효를 간과한 것이다. 모임에 나온 친구들 또한 그랬으려니 싶다.이런 시도가 있구나.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1인 가구가 30%를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 소위 1~4세대가 섞여 살고 있다. 문화나 가치관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영화 <은교>에는 이적요라는 국민시인 이 나온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제자 서지우에게 작품, 명성, 문학적 영감까지 다 빼앗기고 그의 문학상 시상식에서 축사를 한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세상에 이런 명대사(사실은 로스케의 시를 인용했지만)가 어디 있을까. 감탄했다, 그런데 HYO라는 관점에서 보면 둘은 조화롭지 못한 측면이 있다.영화 <수상한 그녀>는 교수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노인을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편견과 선입견과 이유를 말해보세요. 학생들이 주저 없이 말한다. 검버섯, 탑골공원, 거북이, 퀴퀴한 냄새, 얼굴이 두껍다, 등. 한 학생은 자기는 30대에 자살할 것이라며 구질구질하게 780살까지 살지 않겠다고 말한다. 교수는 너무한다며 질책한다. 노인 문제 전문가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 교수님,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한 자기 홀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한다.최근 웰빙과 웰 다잉에 관한 학문 <생사학>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과목마다 일관된 주문이 있는데, 무엇인가 내 안에 들어오면 받아들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고통이, 슬픔이 찾아오면 손님 모시듯 받아들여라. 그로 인해 더 크게 당하지 않으려면. 받아들이는 순간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받아들임을 제대로 행하는 것이 하모니(Harmony) 아닐까.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라는 공자님 말씀이 떠오른다. 왜일까.HYO의 빠른 정착을 빈다. 또 효 지도사들의 약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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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21 23:02

연탄축제 기획회의

시인의 첫 직장은 이리중학교였다. 그는 이리역 굴다리 앞 어느 길가집 단칸방에 쥔을 붙였다. 쥔 마루를 거쳐 전화를 받는 삶이었지만 그곳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연탄을 땠다. 원대 앞 자취방에서부터 시작된 연탄생활은 모현동 선아파트에 살면서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때 젊은 선생은 백가흠 등 제자를 가르쳤다. 그리고 같은 학교에서 해직될 즈음 13평 영등동 주공아파트까지 연탄구멍 맞추기는 오래 이어졌다.생활이 시가 되었다. 그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썼다. 너 언제 한 번 뜨거워 진 적 있느냐고 덧붙였다. 「너에게 묻는다」란 시는 시가 뭔지 모르는 분도 모두 알 만큼 유명한 경구가 아닌가.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란 「연탄 한 장」 역시 25년 전 익산에서 나온 시다.시에서 울림을 받은 한 청년이 기획서를 제출했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이 상을 주었다. 익산문화재단이 아이디어를 받아 실행에 들어갔다. 여기까지가 출발이다. 기획자의 콘셉트가 중요했다. 나눔과 대화가 주 콘셉트로 문학판을 벌이는 것 뒤로 축제이니만큼 연탄 위에다 고기나 생선, 달고나와 꼬치 등 먹거리 올리기로 했다.축제위원회가 출범했다. 축제전문가, 교수, 문인과 출판인 그리고 공무원과 주민대표 여럿이 모였다. 소설가 J씨는 축제를 익산에서 여는 철학적 이유를 걱정했다. 연탄불이 꺼질까 걱정이 되는 발언이었다. 익산 가구 수의 연탄사용 통계 그리고 근대생활 중 연탄에 대한 각자 추억들이 발언을 덮었다. 축제감독 경력의 K교수는 적은 예산이니만큼 가지를 치자고 했다.소설가 B씨는 강의 때문에 회의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중앙의 내로라하는 작가들로 문학행사의 라인업을 짜 보냈다. 소설계의 메시 황현진부터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시인 박준, 임경섭, 오은 등 젊은 작가들이 국대급이어서 출연료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백일장 심사비만 받고 참여할 것이다.후원이 붙었다. 혼불문학상에 참여하는 전북 고창출신 출판사 대표는 익산시에 도서 1억 원어치를 기부한다고 했다. 대한석탄공사에서는 축제 취지에 맞추어 연탄 몇 천 장을 소외된 이웃들의 집 앞에 트럭이 부릉부릉 힘을 쓰면서 배달까지 해준다고 했다. 지역의 한돈 대표들은 시민과 시인들 연탄 위에 고기 잘 구워 드시라며 오백인분의 돼지고기를 기부한다니 날이 너무 춥지 않기를 고대할 뿐이다.젊은이들이 더 좋아할 것이다. 그들은 손 내밀면 다가설 수 있는 삼촌의 역사를 더 좋아하니까.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 근거다. 회의 막판, 내빈들의 인사는 연탄에 대한 의미 있는 경험만으로 짧게 제한하자는 말이 나왔다.안도현 시인과 그의 제자 백가흠 작가가 토크쇼에서 지난 시절 뜨거웠던 추억을 들려 줄 것이다. 박준 시인에게 사랑을 듣고, 임경섭 시인에게 죄책감을 물으시라. 19공탄 위에서 고기를 구우며 마음이 뜨거워졌다면 연탄 열 장 정도 기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연탄 한 장 소비자 가격이 573원이다. 12월 9일, 행사 참여 신청은 익산문화재단에서 받는다. 한 번 뜨거워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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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14 23:02

은행잎을 생각한다

은행잎은 황금을 찾아 떠도는 광부의 꿈 조각이다. 가난한 화가의 캔버스에 떨어진 돈 안 되는 낭만이다. 첫아기를 낳은 젊은 엄마의 눈에서 자라나는 애기똥꽃이다. 한밤중 도심을 지키는 등불이다. 환경미화원이 돌아가면 그 자리에 다시 눕는 노란 땅방울이다. 책갈피에서 소녀가 잠들 때까지 눈뜨고 파슬파슬 말라가는 파수꾼이다. 차마 밟으려 하지 않아도 밟히는 가여운 그리움이다. 내 어머니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순금반지다. 마지막 잎이 흔들릴 때 가을도 끝났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이다. 장례식장에서 젊은 과부의 머리에 떨어진 상장(喪章)이다. 시인이 평생 찾던 시의 한 구절이다.은행잎이 노란 가을을 앞당겼다. 산사의 뜰에도, 시골집 마당에도, 도시의 아스팔트에도 은행잎이 지천으로 물들고 있다. 아니, 벌써 지고 있다. 은행잎은 신록보다도 녹음보다도 마지막 삶을 치장하는 이때가 가장 아름답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한 그루만 서 있어도 그 둘레가 환하다. 가을밤 등불을 켜고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나무.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기간이 너무 짧다. 한 주일이 지나면 시나브로 등불도 꺼지고 나목이 되어 찬 달을 걸어놓고 첫눈이 오기를 기다린다. 은행잎의 계절은 이렇게 해서 간다.늦가을이면 도시는 은행잎 낙엽으로 낭만의 길이 된다. 가로등이 은행잎 때문에 빛을 잃고 있다. 연인이 아니더라도 옷깃을 세우고 걸으며 꿈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 때로는 바람이 불어 은행이 우수수 질 때면, 이 밤에 은행잎이 다 질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더구나 아침이면 떨어진 은행잎이 미화원 아저씨들의 손수레에 실려 갈 것을 생각하면 아깝기 그지없다. 떨어진 은행잎을 며칠만이라도 그냥 놓아둘 수는 없을까? 삭막한 거리를 아늑한 노란빛으로 치장한 은행잎길을 더 오래 간직할 수는 없을까?몇 해 전의 일이다. 나는 시청 도시환경미화를 담당하는 분에게 전화를 걸어 며칠만이라도 은행잎을 쓸지 않고 그냥 놔둘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은행잎이 시민들에게 주는 정서와 삶의 아름다움을 덧붙여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그런 전화를 가끔 받는다며 애로사항을 말하였다. 은행잎을 쓸지 않고 놓아두면 담배꽁초와 휴지, 쓰레기 등이 은행잎과 뒤섞여 오히려 거리가 더러워지고, 바람이 불면 하수구로 들어가 물의 유통을 막는다는 것이다. 특히 도로 주변의 상점 주인들이 반대를 한다는 것이다. 먼지와 나뭇잎들이 상점으로 불려와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내 생각은 나그네의 생각임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고궁 뜰이나 공원만이라도 은행잎을 쓸지 않고 놓아두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하였다. 그분은 긍정적 검토를 해보겠노라고 하였지만, 나는 공원에 가서 실망을 하고 돌아왔다. 옛날처럼 은행잎은 쓸려서 실려 나가고, 떨어진 은행잎을 환경미화원이 또 쓸고 있었다.얼마 전 전주향교에 들렸다가 행복을 한아름 안고 왔다. 가을을 쓸지 않아서 향교 마당은 은행잎으로 금빛 세상이 되어 있었다. 수백 년 된 은행나무 아래에 은행잎은 떨어져 또 쌓이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은행잎을 모아서 던지면 하늘에서 노란 꿈 조각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바라던 은행잎의 기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구에겐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떨어지는 은행잎은 가을볕 속에서 가볍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옷을 벗는데 나는 왜 옷을 껴입을까. 마음의 옷을 껴입지 말아야지. 은행잎처럼 가벼워야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은행나무를 지나 고궁의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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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07 23:02

사전과 번역은 문화발전의 지표

나라살림을 예측하고 한정된 예산과 자원을 집중하여 압축성장을 하자는 경제발전5개년계획은 우리 귀에 너무 익숙하다. 1962년부터 1996년까지 총 7차에 걸쳐 실행된 이 계획으로 우리는 1인당 GNP가 1962년 87달러에서 2003년 1만 달러를 넘어서는, 지구상 어느 국민국가도 이루지 못한 전인미답의 성장을 이뤄냈지만 이 압축적 근대화의 결과는 영혼이 없는 발전이었다. 앞뒤 돌아보지 않은 전력질주의 끝에 국가부도사태인 1997년이 있었다.우리는 경제적 효율성을 국가발전의 절대적 가치로 삼고 민주주의, 지역의 균형적 발전, 여유 있는 삶,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 등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에 필수적인 가치들을 부차적인 과제로 미루어 왔다. 문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발전의 새로운 전략이자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이다.참여정부 때 이창동 문화부장관의 주도 하에 만든 <창의한국 creative korea)>에 실린 말이다. 21세기 새로운 문화의 비전이라는 부제를 내세운 것처럼 문화분야도 경제발전계획처럼 장기적 정책기조를 설정하는 것은 물론 국가의 지향을 문화의 나라로 잡자는 것이었다. 최근 도종환 문화부 장관이 내년 3월까지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새로운 비전을 다시 수립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새삼 <창의한국>에 적힌 내용들이 주목받게 되었다. 다시 읽어보니 문화예술교육의 강조, 취약계층의 문화권, 국가균형발전의 한 축으로 지역문화에 대한 조명, 남북문화교류협력 등 짚을 것은 다 짚었다. 창의적인 문화시민, 다원적인 문화사회, 역동적인 문화국가를 목표로 잡은 방향과 세부 정책들 모두 훌륭하다. 그 뒤 10년간의 정치적 후퇴를 겪으면서 이 문서는 색이 바래고 찢겼고, 블랙리스트가 상징하듯 우리 문화는 권력의 입맛에 따라 배제와 독점이 횡행하는 곳이 되었다. 이제 문화계의 자율성이 최대한 존중되면서 새로운 문화비전을 다수의 지혜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특별히 주문하고 싶은 것은 <창의한국>에서도 새 언어문화의 형성이라는 장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문화란 것이 다양한 장르로 분출되지만 그 저본은 역시 구성원들 공통의 언어로 드러나는 문학이다. 언어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개념과 상상을 가능하게 하며,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창조하고 표현해내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국민이 자국어를 제대로 쓰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곧 그 국민의 문화능력을 가늠하는 척도인 셈이다. 국어의 표현력, 깊이, 정확성을 높이는 것은 한 나라의 문화적 총량을 확충하기 위한 가장 기본조건이다.도종환 장관이 의원시절 발의하여 2016년 제정된 문학진흥법도 인문정신을 진흥하는 데 그 기초라 할 수 있는 문학을 진흥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서 있다. 문학의 토대는 언어인데 우리는 제대로 된 남북통합의 국어사전 하나 아직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우리 언어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기관이면서도 조직과 사업이 너무 취약한 국어원을 명실상부한 국립국어위원회로 만들고 세계의 언어와 교류하는 번역원도 제대로 확충, 정비해야 한다. 사전과 번역의 수준은 그 나라 문화발전의 핵심적 지표이며 이는 민간영역의 경쟁과 시장, 효율 논리에 맡길 수 없는 영역이다. 문학인단체에서도 표현 사상의 자유 같은 기본 담론을 넘어 너무도 비현실적인 원고료 조정, 인세 확대, 다양한 출판 환경의 확보와 지원 등 창작 의지를 북돋는 제도의 정비에 제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는 계획은 창의가 숨쉴 수 있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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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31 23:02

이모티콘과 감정표현

카카오톡 신호음이 울리기에 무심코 핸드폰을 열었다. 다짜고짜 졸라맨 둘이 튀어나오며 한쪽이 상대를 혼낸다. 고따구로 할거임? 빠르고 카랑카랑한 음성이 격정적이기까지 하다. 혼이 난 쪽은 움츠린 채 땀을 흘린다. 내용은 그렇다 치고, 보낸 선배의 생각을 알 수 없어 마음이 편치 않다.답장하려니 막막하다. 머리 위로 하트 만드는 소녀 그림을 골라 보낸다. 잘 지내시지요? 대꾸가 없다. 뭐지? 나에게 섭섭한 게 있는 것일까? 전화한다. 너털웃음과 함께 말이 이어진다. 하하하, 재밌지? 시원하지? 이런 것 만드는 친구들 천재야, 천재. 요새는 얘들이 할 말 다 한다니까. 왜 이러시나. 맺힌 게 많은가. 이모티콘을 내려받아 봤다. 나를 혼낸 그림 옆으로 때릴 거야?, 니가 참아. 털면 다 나와. 이런 자극적인 내용이 빼곡히 들어 있다.선배의 재미와 시원함 속에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들어있기는 한 것인지? 심리적 게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습성화된 책략을 사용하는 무의식적이고 반복적인 게임 또는 놀이 말이다.이모티콘은 감정을 의미하는 영어 Emotion과 유사기호를 의미하는 Icon을 합쳐서 만든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기호들을 말한다, PC로 문자를 사용하는 대화, 소위 채팅을 하면서 등장했다. 문자만으로 전달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용한 이모티콘은 ^^와 -_- 라고 전해진다. 웃음과 응원을 위해 사용되었던 것이 지금은 다양한 이미지에 음성까지 탑재하여 캐릭터로 기능하고 있다.그런데 이렇게 감정을 마구 드러내도 되는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반응으로 도구적 감정반응을 들 수 있다. 상대방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된 감정반응을 말한다. 악어의 눈물이 상대방을 조정하기 위해서 흘리는 도구적 슬픔이라면, 엄살을 부리는 것은 도구적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못해 웃는 것은 도구적 아픔을 말하는 것이리라. 감정을 애써 감추는 것이 미덕이던 때가 있었다.이 이도 억압된 감정을 도구적으로 사용하여 정화 효과를 거뒀는지 모를 일이다. 사실이라면 나의 배려나 포용력은 형편없는 것이 되고 만다, <내 감정 사용법>이란 책은 특히 분노나 슬픔의 감정이 느껴지면 이를 즉각적으로 매우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영화 <이모티 : 더 무비>는 이모티콘이 모여 살아가는 세상을 그린다. 구성원이 지켜야 할 제1 원칙은 1인 1 표정이다. 지키지 않으면 삭제한다. 그럴 법하다. 한 사람이 여러 표정을 짓는다면 인구가 현저히 줄 테니까, 의사 역할을 하는 헤키는 다양한 표정을 지어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 주인공 진에게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게 좋다.고 말한다. 영화는 끝까지 진을 보호한다. 머지않아 여러 감정을 동시에 분출하는 이모티콘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하는 대목이다.카톡에 실려온 캐릭터 하나 놓고 미주알고주알 하는 게 가당한 일인지 모르겠다. 일방적이고 찰라 적인 감정 전달 방식이 하나의 틀이 되고 사람들이 그 틀 속에서 기계처럼 운신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다. 알고 보니 이 선배, 그 이모티콘을 많은 사람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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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24 23:02

4대보험 미가입 인문계 석·박사

며칠 전 토론회가 있었다. 서울에서 온 선임연구원은 새 정부 문화정책의 넓은 카테고리를 짚었다. 국립대 교수는 전북 문화정책의 아쉬운 지점을 말했다. 두 박사님 앞에서 나는 현장체험가라는 징징대는 캐릭터로 두 가지 간증을 했다. 사실 지역문화진흥법과 문화정책에 대해 열심히 준비했는데.먼저 e나라도움을 즉시 폐지해야 한다고 과격하게 이야기했다. 아시는 분만 아시는 이 시스템은 모든 문화예술보조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기획재정부가 만든 국고보조금 관리체계이다. 은행에서 카드를 만들 때부터 욱한다. 게다가 컴퓨터를 능란하게 다루지 못하면 정산을 할 수 없다. 감시시스템에 도움 받는 관심종자란 낙인이 될 수 있기에, 도종환 장관이 제일 먼저 상징적으로 폐지해야 된다고 징징댔다.둘째, 예술인에게 보험을 줄 것이 아니라 당장 일거리를 만드는 정책을 수립해 달라고 했다. 보조금사업공모도 없는 겨울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농한기이니까. 그 구체적이고 슬픈 징징댐의 간증은 이렇다.장박이 8명 팀을 짜라는 귀띔을 했다. 단 4대보험에 안 들어있는 인문계 석박사여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11월에서 3월까지 잘하면 월 180 정도 소득이 생긴다. 십여 명의 후배에게 꿀 바른 목소리로 전화를 돌려 이력서와 4대보험가입확인서를 보내달라고 했다.드림팀을 짰다. 학원에서 일하는 박사, 소설집을 낸 소설가, 막 등단한 시인, 논문을 앞둔 박사과정 후배들이 이력서를 보내왔다. 동지섣달 인세는커녕 강의수입도 없이 엄동설한을 맞을 그들의 마음은 훅했을 것이다. 과정이 좀 복잡했다.깔때기(문화예술 강의를 제공하는) 기관에 여러 번 문의를 했다. 이미 신청을 준비한 팀이 있으니 다른 지역을 통해서 접근하라는 멘트도 있었다. 시청의 칸막이(부서 밖의 일을 모르는 행정)라는 트러블이 있었지만 잘 넘어갔다. 더 높은 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칭할 기관이 필요했다. 자활을 비롯한 기관대표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 동안 울력으로 닦아놓은 것이 있잖은가. 8개 기관과 매칭준비도 됐다.새벽 서너시까지 월 50차시에 가까운 강의계획서를 짜고 통합하는 일은 하나의 회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할 수 있었다. 시행될 강의마다 서정적이고 인문학적인 제목들을 뽑아 커리큘럼을 짰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될 즈음 장박이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 근데, 과연 주당 14시간 수업을 누가 받죠? 학생도 아니고확 깼다. 기관 소속 멤버를 A B 두 팀으로 나누어도 매일 두 시간 넘는 문화예술 수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기란 불가능한 지점이었다. 그래서 신청했냐고? 말 못하겠다, 미안해서.후배예술가들아! 겨울에는 물속의 잠룡처럼 에너지를 보충하면서 명작을 쓰시라. 명작을 쓰고 메이저 출판사에서 책을 낸 후, 문학상을 수상하면 교수임용의 조건이 된다. 안 죽고 살아남아 내년 봄에 있을 각 기관의 보조금 사업에 다시 도전해 그대들에게 제비 박씨를 물어다 줄 것이다.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섹시한 제목으로 반드시 따낼란다. 내년에도 e나라도움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어도 굴욕은 내가 받을 터이니, 당분간 그대들은 부디 작품을 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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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17 23:02

지난 9월 20일 제 19회 지평선축제가 김제 아리랑문학관이 있는 벽골제 행사장에서 열렸다. 들녘은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황금물결로 지평선을 이루고 있었다.벽골제 행사에 참석하고 난 뒤 가을들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행사장을 빠져나와 들길로 들어섰다. 한 마장을 걷지 않았는데도 행사장의 소란함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민속농악경연대회의 풍악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눈이 모자라 못 본다는 김제평야는 나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징소리 꽹과리소리 북소리가 하늘과 땅이 맞붙은 들녘으로 가뭇없이 날아가고 있었다.들길을 걸으며 나그네의 낭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알았다. 달리는 차속에서 멀리 바라본 들녘은 풍요롭고 아름답기만 하였다. 생을 찬미하는 노래처럼, 푸른 초원을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아늑한 정서로 가득하였다.그러나 논 가운데서 만져본 벼이삭은 냉정한 이성으로 농촌을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벼 포기에는 농민들의 힘든 삶이 젖어있었고 벼 알맹이에는 주름진 농부의 얼굴이 서려있었다. 조상 대대로 숙명처럼 참고 살아온 삶의 흔적들이 수그려진 벼이삭마다 새겨져 있었다.이 길은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황토현 들녘으로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흰옷 입은 동학농민들이 달려갔을 길일 것만 같았다. 일어서면 백산이요, 서면 죽산이라는 농민군의 거점산성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의 할아버지도 논에서 김을 매다가 신발을 벗은 채 이 길을 달려갔을 것이다.벼는 무엇이기에 이들에게 목숨도 마다하지 않고 동학의 깃발 아래로 모여들게 했을까. 벼이삭이 출렁이는 들녘으로 한없이 날아가던 꽹과리 징소리는 그들이 지어내던 울분과 탄식이 아니었을까. 들은 들로 이어지고 길은 길로 이어져 끝닿는 데를 모를 김제평야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함성을 듣고 있었다.여러 곳에 벼가 쓰러져 있었다. 벼는 쓰러져도 함께 쓰러진다는 것을 알았다. 벼는 어깨를 껴안고 같이 자라고, 쓰러질 때는 부둥켜안고 함께 쓰러진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맡기고 쓰러진 벼를 보며 동학농민들을 생각하였다. 함께 일어섰다가 함께 죽어간 동학농민들. 벼와 함께 살아온 그들의 몸속에는 순박한 벼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벼 포기에는 아직도 그들의 굳센 어깨뼈와 마디 굵은 손가락뼈가 남아있었다.벼는 아버지의 눈물이었고 한숨이었다. 벼는 아버지의 눈물을 먹고 한숨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지게를 지면 소가 먼 길을 가듯 말없이 걸으셨다. 한가위 대보름에도 아버지는 휘엉청 밝은 보름달 대신 한숨 같은 쭉정이를 지고 오셨다.농경사회에서 농민의 비극은 벼의 수탈로 시작되었다. 양반과 지주와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그러했고,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가 그러했다. 그들에게 착취의 대상은 언제나 가난한 농민들이 피땀 흘려 거두어들인 벼였다. 그러나 조선사회도 아니고 일제강점기도 아닌 지금에도 벼의 수탈은 계속되고 있다. 인건비도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벼농사를 농민들은 지을 수밖에 없다. 농사는 천직이다. 농민들은 흉년에도 울고 풍년에도 운다. 흉년이 들면 쌀을 수입해오고, 풍년이 들면 재고량 운운하며 농민의 목줄을 죄는 것이 농수산 정책이기 때문이다.내가 농민의 자식이라서 이럴까. 코스모스길이 아름다운 지평선축제장에 와서도 내 몸에는 아직 묽어지지 않는 농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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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10 23:02

와일드 푸드와 적정 기술

2017년 6월 초에 무주 산골영화제에서 맷로스감독 영화 <캡틴 판타스틱>으로 힐링 시네 토크를 했다. 숲속에서 와일드 스쿨링을 하며 살아가는 아빠 벤과 6남매의 삶을 그린 영화인데,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원시적으로 사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다용도 칼을 선물한다, 핸드폰도 아닌 칼을 받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공연한 걱정이 앞섰다. 공부는 어떻게 하고. 저 야성(野性)을 어디다 쓴다냐?객석 중앙에 앉은 관객 20여 명이 시종 진지하기에 물었더니 홈 스쿨러 들이란다. 손에는 팝콘 대신 감자가 들려있었다. 인간은 말이 아닌 행위로 규정된다.라는 대사를 공유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별을 보고 길 찾는 법 배우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요? 한 학생의 반문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돌아오는 길, 시내로 들어오면서 어떤 경계를 넘는 듯한 생각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가을이 되니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특히 로컬푸드와일드 푸드 등에 눈길이 간다. 우연이 아닐 터다. 9월 22일부터 3일간 진행한 완주 와일드 푸드 축제에 가봤다. 냇가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논에서는 메뚜기와 우렁, 미꾸라지도 잡았다. 밀떡, 가제, 메추리, 감자 등을 구워 먹는 체험도 하고 로컬푸드도 골고루 먹었다. 영화 속 벤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추억을 먹고, 건강을 먹고. 있는 그대로 자연의 모습에 동화되고, 그 산출물을 누리는 일이 축제로 즐기고 말 일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스탠리 큐브릭 감독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유인원 형상을 한 원시인들이 뼈를 사용하여 돼지를 잡는 장면이 나온다. 일을 마친 그들이 뼈를 공중으로 던지는데, 창공에서 회전하던 뼈가 순식간에 우주선으로 바뀐다.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문명의 발달과 끊임없이 진화하는 인류. 그 앞으로 뼈가 달려든 것이다. 뭘까, 태고의 전령이 뜻하는 것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기본만큼은 이어가자는 전갈 아닐까. 과거의 포식자가 되어버린 기술문명에게 영화가 묻는다.적정기술(適正技術)이라는 게 있다. 어느 특정한 지역(미개발 된)의 사정에 알맞은 기술적 해법을 제시해주는 기술을 말한다. 경제학자 슈마허는 중간규모의 경제를 꾸려나가기에 적절한 기술이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주장하며 중간기술이라고 정의하였는데, 후에 이 기술이 적정기술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과학기술원 김찬중 박사는 이를 생계의 기술과 생존의 기술로 나누어 설명한다. 식량 증산이나 양어장 확충 등이 생계형 기술이라면, 아프리카의 옥수수 숯탄몽골의 축열기캄보디아의 태양광 발전기 등은 생존의 기술이다.작년 겨울 완주군에서 개최한 로컬 에너지축제 나는 난로다.를 참관했는데, 지금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적정기술이다. 다양한 난로가 저마다의 특성을 뽐내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이에 열광하였다. 불 다루는 기술이 생존의 기본기술 아니던가. 가스레인지 없으면 라면 못 끓여요? 한 출품자가 좌중을 향해 묻는 말에 박수가 쏟아졌다. 기술문명의 틀에 갇혀 매뉴얼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체득하며 즐기는 가을 축제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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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26 23:02

동국사 종걸스님 & 사진

나도 봤다. 1200만을 동원한, 송강호 주연의 80년 광주 영화를. 엄마는 우셨다. 아들은 부감으로 잡은 택시 추격 신이 우습다고 했지만 나름 역사공부를 했을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저 영상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찍었지?에서 시나리오에 앞선 트리트먼트를 시작했을 것이다. 보는 사람은 그냥 보지만 찍어 본 사람은 어떤 각도에서 어떤 극악한 환경에서 찍었을까를 안다. 감독은 영상을 찍은 외국인 기자만을 상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태워 준 택시운전사를 기억한다.이준익 감독이 만든 <박열>은 사진 한 장이 단초가 돼서 영화화됐다. 불령조선인으로 형무소에 갇힌 남자가 애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찍은 널널한 사진 말이다. 물론 아나키스트인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과 시대상 등 많은 공부를 했을 것이다. 엔딩에서는 사형수 박열과 일본인 아내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영화 속 장면과 오버랩되며 끝이 난다. 이렇듯 잘 된 사진은 이야기를 전한다. 하나 더.겨울. 맨상투에 한복 차림의 한 남자가 가마에 올라 쏘아보는 사진이 있다. 가마꾼 둘과 제복 입은 순사 두 명이 엑스트라가 된 사진에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란 시가 탄생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시를 쓴 시인의 삶은 87체제 이후 격변에 빠진다. 글쎄, 라이카였을까? 무거운 카메라를 든 사진사도 추웠을 텐데.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봉준이를 쓴 시인 안도현은 기억해도 체포된 대장을 붙든 사진사는 기억하지 못한다. 사진은 낙관을 찍지 않는 예술이기에.전주역사박물관에는 근대 전라북도의 많은 사진을 소장하고 있다. 전주의 근현대에 대한 책을 쓰면서 양해를 구하고 갖다 썼다. 그러고도 모자라 물매가 깊은 일본식 절 군산 동국사를 찾았다. 스님께서는 소장한 자료 사진으로 전주 군산에서 여러 번 기획전을 연 바 있으니.원하는 사진이 있었다. 1907년 헐리기 전의 성벽과 서문(패서문)이 고스란히 남은 사진에는 전주객사 풍패지관 뒷쪽의 무성한 나무숲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미공개 사진이었다. 무엇으로 보답하리이까하는 눈빛으로 쭈뼛하는 나에게 스님은 그냥 써하시면서 강점기 시대 덕진호 주변의 사진까지 몽땅 usb에 담아 주셨다. 스님은 연세가 있지만 컴퓨터를 잘 쓰신다.낙관 대신 카피라이트를 말하는 동그라미 마크에 스님 자 빼고 종걸이란 이름을 넣어 사진을 실었다. 최근에 일본군도 한 자루를 들고 다시 동국사를 찾아갔다. 동안 사재를 털어 구입한 강점기 시절의 유물로 박물관을 건립하고자 함을 알기에. 이참에도 근대 이리의 사진을 몽땅 파일로 담아주셨다.찬바람이 불면서 장례식장에 여러 번 다녀왔다. 연세 드신 어른들이 돌아가시면서 그분들이 남긴 사진들도 사라진다. 그 사진 뒷배경에는 한벽루가 째보선창이 또 내장사와 더불어 인물과 미시사가 있을 터인데 말이다. 신문사나 박물관에서는 근현대 일상의 소소한 사진들을 기리고 있다. 부디 기증하시라. 소정의 상품도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아참! 1980년의 영상에 37년 후 낙관을 찍은 <택시운전사>의 장훈 감독이 온다. 9월 29일 익산 마한교육문화회관의 초청에 응했다. 독일기자 피터가 찍은 광주의 참상을 영화 뒤에 살짝만 걸친 의도에 대해, 추격신이 엄벙함에 대해 물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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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19 23:02

선택

얼마 전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네 사람이 도시의 한 여숙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선택을 했다. 고독하지 않으려고 동반자를 불러들였지만, 죽음 앞에서 인간은 모두가 고독하다는 숙명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들의 선택은 엄연한 현실이 되어 각자의 몫으로 돌아갔다.“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유명한 독백은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 한 지식인의 우유부단한 내적 고백을 드러낸 것이다. 이 경구는 햄릿의 친구인 철학자 이름을 따 호레이쇼 철학이라고 명명된 바 있지만, 지금은 선택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즐겨 사용하는 흔한 말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좀 더 깊은 곳에 있다. 햄릿이 제기한 ‘선택’의 문제는 단순히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만나는 그런 선택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그것은 목숨을 건 ‘죽느냐’ ‘사느냐’ 사이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어느 중년 가장의 이야기나, 수험생의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들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택한 것이다. 햄릿식 독백은 그들에게는 사치스런 넋두리가 되었을 줄도 모른다. 죽음을 선택하기까지의 결단이 그들을 얼마나 고독하고 절망스럽게 했을까? 그러나 운명의 갈림길에서 인생을 회의하는 우유부단한 햄릿식 독백이 때로는 죽음에서 삶으로 선택을 달리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팡세’의 저자였던 파스칼은 인간의 삶이란 궁극적으로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도박 앞에 직면한 가련한 삶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 결과 그는 기독교적 신앙을 진실의 길로 나아가는 ‘선택’의 문제로 보았고,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의 신앙 고백록인 ‘팡세’를 썼다.키에르케고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택’ 그 자체가 인간 삶의 구체적 내용을 결정한다는 관점에서 이를 삶의 본질적인 형식으로 보았다. “결혼할 것인가? 만일 한다면 후회할 것이요,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역시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날의 삶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무수한 선택을 통하여 삶의 내용을 메워 나갈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길을 가다가 갈림길을 만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우리는 그 갈림길에서 망설인 기억이 있다. 갈림길을 만났다고 해서 되돌아 올 수는 없다. 미지의 길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도 한 길을 택하여야 한다. 그것이 운명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인생행로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길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갈등을 겪고 있다. 로버트 프르스트의 시 ‘택하지 않은 길’이 있다. 어느 날 그는 숲 속을 걷다가 두 갈래 길을 만난다. 망설이다가 그는 한 길을 택한다. 그가 택한 길은 사람들이 적게 다닌 풀이 무성하게 자란 험난한 길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훤히 트인 편한 길보다 내 힘으로 개척하고 싶은 욕망으로 험난한 길을 택한다. 길을 가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크지만, 내가 택한 길로 인하여 인생은 달라질 것이라는 신념으로 그 길을 간다.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오늘도 우리는 선택의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신에게 묻기도 하지만, 신도 모르는 고독한 운명과 동거하며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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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12 23:02

불타는 방송국

MBC와 KBS가 4일부터 파업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쌓여온 문제들이 터져 나온 것이라 그 결과가 어찌 될지 관심이 크다. 공공재인 방송사의 파업은, 주로 노동현장의 처우와 권리를 쟁점으로 벌어지는 여느 파업과 달리 언론의 자유와 임무라는 공적 명분을 놓고 대치선이 그어지기 때문에 시민들도 한 마디씩 거들지 않을 수가 없다.사실 요 몇 년간 매일 거리에서 스스로 뉴스를 생산하는 즐거운 시민의 한 사람이었던 촛불정국의 몇 달을 제외하곤 거의 TV를 켠 적이 없기 때문에 끔찍한 방송 현실을 예전처럼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 왔다. 꽤 알려졌다는 유명 앵커나 기자들도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어서 한 편으로는 속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나라 안팎의 소식이나 뒷담화들은 주로 페이스북 등 친구들의 입과 글을 통해서 들었기 때문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는 친구 관계의 필터링으로 어떤 이슈든 편파적으로 수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방송사의 일방적인 편집과 보도 시선의 수용자가 되기보다는 그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자청한 편파인 셈이다. 나처럼 SNS가 갖는 미디어적 기능을 실감하고 사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래도 매스미디어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가는 우리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이 시스템에서 여전히 매우 중요한 공적 영역이 아닐 수 없고, 그래서 개인의 차원에서는 TV를 끄고 안 볼지라도 부단히 말하고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오늘의 방송현실에 대한 자료와 주장들을 챙겨 읽는데 이럴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진과 영상이 하나 있다. 불타는 방송사를 찍은 한 컷이다. 최근 많은 관람객이 밀려든 <택시 운전사>에서 그것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도 해서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광주시 궁동에 있던 광주문화방송 사옥은 518 민주화운동이 한창 진행중이던 1980년 5월 21일 밤 8시 40분경, 왜곡방송을 내보낸 데 분노한 시위대에 의해 불타버렸다. 황석영 작가 등이 광주항쟁의 나날을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는 이 대목을 이렇게 썼다.시민들은 혹시나 자신들의 운명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TV를 통해 방영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모두 열심히 시청했지만, TV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연속극이나 오락 프로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한쪽에서는 죄 없이 같은 동포가 절규하며 죽어가고 있는데, 저 텔레비전의 다리를 흔들어대는 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배신감이었다. 시민들은 이제 어느 누구도 이 싸움이 더 이상 젊은 학생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절감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감정들이 다음날 문화방송국을 불질러 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1985년판 77쪽.MBC에서 방영한 <제5공화국>에서도 불타는 광주MBC라는 자막과 함께 이날 밤, 언론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충격과 분노가 광주MBC를 불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통제로 재갈이 물린 언론은 광주의 진실을 은폐하고 있었고, 광주시민은 언론의 거짓말을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타버린 궁동 구 사옥은 518 사적지 제7호로 지정되어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건물 앞에 안내 표지가 서 있다.그 화재로부터 37년이 지났지만 우리 방송은 그 현장에서 어디쯤 걸어온 것일까. 내가 방송사의 사장이라면, 기자라면, 매일 드나드는 사옥 현관 한중앙에 불타는 1980년의 광주문화방송 사진을 걸어두겠다. 그날을 기억한다면 저토록 오만방자한 권력의 끄나풀이 여직 회전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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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05 23:02

우리 동네 '오베'

오베(Ove)는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 2016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한동안 지구촌이 떠들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오베 신드롬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롤프 라스가드의 연기도 좋았지만 알만한 캐릭터여서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영화는 59세 된 오베가 상처하고, 직장에서도 잘리고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조명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을을 순찰하며 전날과 다른 점을 체크한다. 마을로 진입하는 차가 있으면 무조건 가로막는다. 통행금지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지정장소 아닌 곳에 받쳐둔 자전거가 있으면 불끈 들어 창고에 집어넣는다. 아내가 잠들어있는 공동묘지에 가기 전에 꽃집에 들른다. 차례를 지키지 않는 고객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낸다. 아무 데나 오줌 누는 개와 주인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다시 개를 방치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노망난 놈팡이라며 쑥덕거린다. 작가마저도 오베는 세상을 흑백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본 유일한 색깔은 아내 쏘냐 뿐일 것이다.우리 아파트에 오베를 닮은 분이 있다. 어느 날 상가 앞에서 40세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와 다투는 것을 보았다. 이 청년 하는 말이 잠깐 노상주차 했는데 불법주차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흥분한 젊은이는 따발총 쏘듯 불만을 쏟아냈다. 견인하시죠. 애완견 안고 가는 사람에게도 개 00라고 하셨다면서요? 어르신은 그래서, 그래서?를 연발하고 있었다.다툼 끝나고 돌아서며 젊은이가 하는 말은 꼰대 어쩌고였다. 정말로 신고했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하는 말인즉 아파트 주차장에 갓길주차 하지 말라고 쇠기둥을 쭉 박아놨잖아요. 그 옆에 차를 가장 많이 대는 게 저자라니까. 맞장구를 쳤다. 저런 사람 때문에 아파트 질서가 엉망이라니까요. 어떤 때는 금요일 밤 늦게 갓길에 주차해놓고 월요일 아침에야 빼는 사람도 있어요. 어르신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곧바로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오베 생각이 나서 웃었다. 잘 타이르면 될 일을 왜 분노로 바꿔 표출하는가. 딴은 거리에서 난폭 운전자를 보며 조금 과하다 싶게 투덜대는 나이기도 하다. 자동차 유리창 꽉 닫고 하는 말이니 괜찮겠지? 동승자는 이런 나를 이베라고 했다.정의감이라고 해야 하나. 불편한 감정이 솟구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터다. 표현이, 또 그 방법이 문제 아니겠는가.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는 말한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과 공존하기 위해서 세상은 이래야 하고, 나는 이래야 한다는 규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고 최인호 작가는 <멋지게 나이들기>라는 글에서 노인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눈다. 자기식의 편견이 굳어져서 새로운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신축성과 탄력성이 없어져 버리고 고집불통인 비분 강개파와 무기력한 허탈파 그리고 거인 노인 이렇게. 물오른 동상처럼 의연한 노인을 만나면 삶이 즐거우리라고 생각한다.며 거인 노인이 되기를 권한다.어느 블로그를 보니 지적질 꼰대 마인드라는 말이 나온다. 같이 사는 세상, 서로 감싸주고 사랑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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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29 23:02

키스 앤 라이드! 익산 스테이션 영화제

지자체마다 수많은 영화제를 연다. 벚꽃엔딩 무렵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는 관객 충성도가 최고다. 자유독립에서 표현의 해방구라는 컨셉을 밀어붙이고 있다. 무엇보다 전주 양반들이 그 어려운 영화제를 잘 참고 지켜 주었다.무주산골영화제는 짧은 시간 안에 자리를 잡았다. 숙박시설도 부족하지만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찾아온다. 텐트치고 영화를 본 후 내년에도 오겠다, 맛있다, 아름답다고 액션을 크게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휴양이라는 컨셉이 통했다.전북독립영화제는 전국에서 수많은 작품들이 출품된다. 정읍에서는 실버영화제가 열리고 또 다른 곳에서 여성영화제를 비롯한 골방영화제까지 열린다.8월 31일에 문을 여는 국제무형문화유산 영상축제에서는 국제경쟁을 도입했는데 천 편이 넘는 작품들이 몰려들었다. 작품의 퀄리티만 놓고 따지기에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아카이브를 어떻게 정리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영화제 전성시대다. 프로그래머들의 혜안과 적은 돈으로 알차게 치러내는 일당백의 숙련된 영화제 전문 병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모든 영화제는 좋은가? 그렇다. 그러면 문제는 뭔가? 문제는 다시 컨셉이다. 도시의 정체성과 맞물려야 성공한다. 군산이나 부안에서는 해양과 어드벤처의 영화제가 가능할 것이다.그렇다면 익산은? 익산은 호남의 관문 아닌가? 익산은 100년 넘은 철도도시다. 신익희 선생이 돌아가신 비내리는 호남선과 나훈아의 고향역도 익산 것이다. 1977년 11월 11일 이리역 폭발사고는 안타까운 역사다. 그래서 세계적인 영화감독 재중동포 장률은 <이리>라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던가?익산은 레일로 연결된 도시다. 거대한 역사(驛舍)를 갖춘 도시다. 키스 앤 라이드! 그 역사를 통해 연간 오백만 명이 익산역 플랫폼에서 기차를 탄다. 안전하고 편안한 열차로 움직이는 시대가 다시 온 것이다. 서울이 67분밖에 안 걸린다.세계 최초의 영화는 1895년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열차의 도착> 아니던가. 죽이는 컨셉이다. 제1회 익산역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가 될 수 있다. 열차와 역에 대한 추억과 낭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아직 대한민국에 철도나 역에 대한 영화제가 없다. 그러니 스테이션 영화제가 가능한 도시가 익산이다.또 극장을 지어야 하나? 새로 짓는 것은 하지 말자. 익산 역 자체가 랜드마크다. 영화제를 크고 길게 하지 말자. 서울에서 오는 열차 자체에 스크린을 설치한다. 운행시간이 짧으면 역 공간에서 후반전을 상영하면 된다. 역 광장이 넓다. 광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면? 서동시장과 중앙동 문화예술의 거리에서는 공연과 볼거리를 제공하면 된다. 원도심 재생사업의 핵심이 될 수 있다.영화제는 개방성을 가진 익산이 전국에 도시 브랜드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코레일과 지역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최고의 전문가가 지금부터 팀을 꾸려도 일 년 더 걸린다.하나 더, 다른 도시에서 철도 혹은 스테이션 영화제를 먼저 하면 익산은 철도박물관도 놓치고 영화제도 놓친다. 굴뚝산업은 싫고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응답하라. 호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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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22 23:02

연꽃 편편상(片片想)

백련을 보려고 하소 백련축제가 열리는 김제 청운사에 갔다. 폭염에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습한 날씨라 계속 에어컨만 켜고 갔다. 초입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백련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보였다. 화중생련(火中生蓮)이라는 글귀가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 행사장 안에도 화중생련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이번 하소 백련축제의 주제인 것 같다. 그러나 과문한 탓일까? 선문답의 주제를 알아내기에 내 속된 지혜는 너무도 설었다.연지에 핀 연꽃보다 사람의 숫자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무량광전 앞에 설치한 무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노래가 절집 추녀의 풍경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쓰고 백련지로 내려갔다. 거기에서도 연꽃과 우산꽃이 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나도 잔치의 행렬이 되어 연지를 돌았다. 옆 사람 우산의 빗물이 옷에 떨어져도, 흙탕물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튀겨도 눈을 흘기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길을 막아도 재촉하지 않았다. 이쪽 연지에서 저쪽 연지로 무질서의 행렬이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시선만 부딪쳐도 거북해지는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옹색한 마음으로 나를 가두고 살았는가를 알았다한 바퀴를 돌면 갓 태어난 간난아이 손만 한 봉오리가, 두 바퀴를 돌면 동자스님의 합장한 손만 한, 세 바퀴를 돌면 목탁을 두드리는 주지스님의 손만 한 연꽃들이 층층이 키를 세우며 태어나고 있었다. 벌써 꽃잎이 다 떨어져 연실을 만들어가는 것도 있었다. 다른 꽃들은 같이 피었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한꺼번에 지는데, 연꽃은 우리네 삶처럼 태어남과 성장과 죽음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연지를 돌며 나의 머릿속에서는 화중생련의 화두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연꽃은 모두 진흙 속에 피는데 (니중생련泥中生蓮), 어찌 불속에서 핀단 말인가? 화중생련이란 성철스님이나 법정스님처럼 다비식의 불속에서 얻은 하얀 뼛가루 같은 구도의 삶을 이름인가? 이 거대한 담론 앞에 나는 연지에서 폴짝거리는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나는 정자로 들어가 연잎위로 떨어지는 빗물을 보았다. 수천 마리의 새가 군무를 하듯 연꽃은 하늘을 향하여 날개를 펴고 있었다. 연잎에 지는 빗소리가 들렸다.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늘에서 내려오다 연잎에 떨어져서야 비라는 것을 알았다는 듯, 연못 가득 좁쌀 같은 생명의 소리를 퉁기고 있었다또르르 빗방울은 굴러 연잎 가운데로 모이고 있었다. 빗물이 고여 무거워지면 스스로 머리를 숙여 자신을 비워내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연잎도 모두 몸을 비워내고 있었다. 비우지 않고서는 다시 채울 수 없다는 듯 빗물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연잎은 빗물을 다 비워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몇 방울의 물이 남아 있었다. 차마 다 비워내지 못하고 남겨둔 것은 자신까지 버리지 말라는 계시가 아닐까? 자신을 버리면 세상에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비움과 남김의 역설을 물으며 청운사를 나올 때 쨍쨍한 햇볕이 청하산 언덕에서 초롱초롱깨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불볕더위 속에서 꼬부라진 할머니가 깨밭을 매고 있었다. 문득 저 할머니가 화중생련이 아닌가,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차는 큰 도로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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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15 23:02

책의 바다, 독서의 황홀

올 여름이 하도 뜨겁다 보니까 책 한 권 붙들고 있기도 힘들다. 육체의 온도가 올라가면 정신은 혼미해져 우선 열기를 식히는 쪽으로 자원을 배당하기 마련이다. 출판계에서도 한여름에는 신간을 내는 것을 망설인다. 감각적인 자극이 넘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붙들고 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때쯤에야 책들의 귀환이 시작된다. 전주에서 열리는 2017 대한민국 독서대전도 가을의 입구인 9월 1일부터 3일까지 자리를 잡았다.여느 도서전이 아니라 독서대전이다. 공급자인 출판사들이 주도하는 책잔치가 아니고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방점이 놓이는 축제이다. 하여 이번 전주 독서대전은 예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작가들의 강연과 대화 프로그램(www.jjkorea2017.kr)이 배치됐다. 기조강연에 나선 고은 시인을 비롯해 황석영 김용택 안도현 김탁환 문태준 등 여러 작가들이 독자들과 만난다. 신화와 사회학, 인류학, 자연과학의 저자/번역자들과 오래 베스트셀러에 오른 마음이 지옥일 때의 저자이자 사회적 상처들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활동에 적극성을 보여온 정혜신, 이명수 선생의 강연, 페미니즘과 책에 관한 섹션인 여성주체의 기억과 글쓰기를 김서령 작가가 여성작가들과 북토크로 진행하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맥락을 정확히 짚어주는 강원국의 글쓰기 코칭을 필두로 전북의 여러 작가가 그룹으로 나서는 장르별 글쓰기 수업이 이어진다. 청소년 대상의 맞춤 독서/글쓰기 지도 프로그램도 있다. 책의 도시 전주의 내공을 증명이라도 하듯 역대 최대의 물량공세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물론 최근 출판 경향을 보여주는 신간과 독자들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별 책들을 묶어서 보여주는 북 큐레이션 부스가 경기전 내에서 문을 연다. 지역출판의 역사와 작가와 명사들이 권하는 책들을 엮어놓은 특별전시도 눈에 띈다.이번 독서대전 포스터는 펼쳐진 책에서 퍼져 나오는 수상한 기운을 이미지로 잡았다. 독자가 책을 읽는 순간의 대면이 불러 일으키는 마법을 잘 표현했다. 카프카의 말처럼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이기도 하고, 잊었던 악몽을 깨우며 휘몰아쳐오는 깊은 밤 비바람이었다가 스산한 내 인생에 한 줄기 말의 빛을 던지며 더없이 다정한 연인이 되기도 한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장일순)가 있다면, 한 줄 문장에도 정글이 있고 희망과 절망이 한몸처럼 서로를 기대고 있다. 오로지 읽는 자에 따라서 수없이 다른 문이 열리고 닫힌다.한 작가에 빠져 전작주의로 그의 모든 책을 남김없이 찾아 읽으며 깊이 파들어가는 독서는 참으로 행복한 몰입, 헤어나오기 힘든 중독 중의 하나이다. 여러 장르와 다양한 작가를 섭렵하는 즐거움은 또 어떤가. 한 책이 다른 책을 불러내 끝없는 책이 쌓이며 넓게 문리가 트이기도 하면서 책을 오래 읽는 자에게는 저절로 지도 같은 것, 저마다의 독서법과 항로가 생긴다. 일생에 빠질 수 있는 중독 중에서 가장 안전하고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중독이 있다면 책을 읽는 독서의 쾌락일 것이다.전주는 오랜 출판의 역사를 갖고 있는 완판본의 도시이자 수백 년을 이어온 기억과 쓰기의 상징이라 할 전주 사고의 고장, 한국문학을 이끌어 온 숱한 거장과 현역 작가들의 문장이 살아 있는 곳이다. 문향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문화도시 전주에서 벌어지는 독자축제에 인생의 진정한 쾌락을 아는 많은 분들이 걸음 하시기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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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08 23:02

소잉아트 - 상처의 미학

공감 터 길, 전북대학교 정문과 구 정문 사이 500여 미터 구간 예쁜 산책로 이름이다. 원추리, 황국화 등 여름 야생화들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룬 숲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더 걸으면 빨간 컨테이너를 이어 꾸민 갤러리에서 이색적인 전시회도 만나게 된다.며칠 전에는 소잉아트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팸플릿에 미싱 사진을 인쇄했는데 브랜드가 Sun Star다. 미싱 하면 아이디얼 아니던가. 낯선 느낌이다. Machine이 일본식 음으로 변한 말. 원래 Sewing Machine이었는데, 바느질을 뜻하는 Sewing은 어디로 가고 미싱만 남아 바느질 기계 명칭이 되었다.기억은 어느새 어린 시절 고향 집을 더듬고 있었다. 호롱불 밑에서 골무 끼고 밤새 바느질하던 어머니가 처음 사온 미싱을 보듬고 좋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이후 이웃집 다듬이 소리와 우리 집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묘한 화음을 이루며 협주곡으로 들렸다. 어머니가 방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미싱 소리만 들리면 왠지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다. 너덜거리던 옷이 새 옷 되어 나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소잉아트가 뭔가요? 수줍게 미소 짓던 작가가 설명을 시작했다. 바느질로 만든 예술(미술)작품을 말합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이 들어갔죠.여러 가지 옷, 모빌, 가방, 노리개, 지갑. 작품이 나뭇가지나 와이어에 가지런히 걸려있는데, 대부분 형태가 둥글다. 아끼는 물건이나 마음이 모나면 안 된다는, 매듭은 나의 못난 모습이라는, 실밥을 안으로 밀어 넣어 안 보이게 하는 바느질은 억압과 같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했다. 끈 잃은 가방 옆에 나란히 섰다. 시처럼 글을 써놓았다. 가방아! 남들이 가진 걸 갖지 못해서 속상하니? 하지만 너는 갖지 못한 것으로 인해 따뜻한 손 온도를 느끼며 살게 될 거야.지나온 것들에 대한 기억을 자꾸 지우거나 감출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는 그녀의 모든 작품에는 실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삐뚤빼뚤한 바느질처럼, 삐뚤빼뚤한 모습일지라도 괜찮아! 내보이지 않고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영화 <토일렛>의 은둔형 외톨이이면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청년 모리. 모리는 어느 날 엄마의 유품인 미싱으로 할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운다. 옷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치유가 시작된다. 자기가 만든 알록달록한 치마를 입고 음악 콩쿠르에 나가서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느질이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한석규가 열연한 영화 <상의원>에서 30년 넘게 왕의 옷만을 지어온 어침장 조돌석도 바느질 철학을 말한다. 바느질이란 다른 두 세상을 하나로 묶는 것인 즉, 바늘이 들어갈 때는 자신의 혼을 집어넣고, 나올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지금 우리는 싫든 좋든 항상 다른 세상을 끌어들여 이어가며 살고 있다. 새로운 세상과 낡은 세상, 정상과 비정상, 안과 밖, 진짜와 가짜, 큰 것과 작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그 경계에서 갈등이 크다.산 지 한 달도 안 된 옷을 팔거나 버리는 사람이, 바느질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세상 이치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으리오. 소잉아트를 보면서 내 마음에 저장 축적된 세상의 이미지를 모두 꺼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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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01 23:02

전주, '알쓸신잡'

주말을 앞두고 날아온 <내 사랑> 보세요., 알쓸신잡 꼭 봐. 하는, 카톡 메시지 두 통. 이런 메시지를 못 받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불금에 서울에서 온 후배 영화감독과 함께 <덩케르크>를 보았다. 전쟁의 비참함과 인간의 숭고함을 전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에 마음이 차올라 휴가를 다녀온 셈 쳤다. 강추다.나, 텔레비전 안 봐. 이렇게 말하면 좀 있어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내게 톡을 보낸 친구는 독서광, 여행광, 술광에 인간광 아닌가. 저리 바쁜 잡학사전이 언제 텔레비전까지 챙겨보는 거지? 하는 경의로 휴일 작업실에서 유튜브로 챙겨보았다.나영석 피디 작품 중 <삼시 세끼> 만재도 편을 고맙게 본 적이 있다. 차승원과 유해진 등이 낚시하고 음식 만들기로 띵까띵까하면서 편안하게 노니는 장면들이 고맙게 다가왔다. 세월호의 여파로 바닷길과 섬 생활이 기피대상이던 때에, 백성들에게 위무로 다가서는 모습에 마음 속 경의를 강의 때마다 설파한 기억이 있다.나피디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은 귀여운 예능이었다. 특정한 맛집이나 식탐 우선이 아니기에 볼만했다.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컨셉도 좋았다. 슬로시티 전주의 매력을 위해 드론을 띠우고 아재들의 쓰잘데기 없는 수다가 시작되었다.한옥마을보다는 남부시장 청년몰이라는 구체적 공간과 한지체험도 마음이 갔다. 전주국제영화제가 표방한 표현의 해방구라는 지점과 전주사고(全州史庫)를 통한 기록보존의 위대함을 백업이라 표현한 소설가 김영하의 설명은 간결했다. 태조 어진에서 전동성당에 이르는 전통과 근대 그리고 탈근대가 내면화된 도시 전주를 표현함에 네 명의 잡학박사들 모두 사랑스러웠다.전주 먹을 게 많아. 전주는 베트남 쌀국수와 이탈리아 음식도 맛있다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곳은 삼천동 막걸리골목 어드매였다(안다!). 어디 만화카페의 라면만 맛있겠는가? 당구치면서 먹는 짜장면도 먹을 만한 곳이 전주다. 국밥을 김에 싸먹는 것에 신기해하며 오징어가 들어간 콩나물국에다 밥을 덜컥 투척하는 지식소매상 유작가는 좀 촌스러웠다. 그래도 전주음식은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는데 어찌 귀엽지 않겠는가.과거 TV토론에서 눈에서 레이저를 뿜던 유작가는 전주에 갔다고 해서 전주를 아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드러운 배틀랩을 시작했다. 맞는 말이다. 도시를 안다는 것은 도시의 역사와 사회 문화는 물론 길과 골목, 맛집을 넘어 진입금지와 좌회전금지까지를 터득해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잠깐 받쳐도 좋을 불법주정차 그리고 가까운 공용화장실까지 알지 않고서는 안다고 하는 게 아니다.음식 이야기를 품격 있게 전하는 황교익의 사회학적 해석은 용 그림의 눈이었다. 전주는 전주만이 아니다. 전북권의 산물들이 다 모이는 곳이 전주다. 전주 음식은 김제 부안 진안 등 여러 곳의 식재료가 합쳐진 음식문화라는 지적 말이다. 보강 썰을 풀자면, 만경의 윤기나는 쌀과 부안의 싱싱한 해물 그리고 무진장의 산나물, 임실의 간장, 순창의 고추장이 합쳐져야 전주 음식 한 상이 완성되는 것이다.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친구가 한옥마을 여행객이 좀 주춤하다고 했는데, 다행이다. <알쓸신잡>으로 전주가 다시 북적이게 생겼다. 아 참! 내일은 <내 사랑>을 보러 가야겠다. 두 번째 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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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5 23:02

빛과 그림자

통영 문인들의 길라잡이가 되어 미당시문학관에 가는 길에 고창 선운사에 들렀다. 여름길에서 만난 녹음 속에서 동백도 제 자리를 찾아 숲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동백숲에서는 동박새가 새끼를 데리고 동박새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는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물소리 들으며 도솔암까지 올라갔다가 물소리 따라 내려왔다. 여염집 마루처럼 친근하고 인정스러운 만세전 마룻바닥에 시원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땀을 거두었다. 우리는 다시 동승하여 한 마장 정도의 미당시문학관으로 갔다. 미당시문학관은 적요했다. 나이가 지긋한 안내인은 나를 알아보았다. 그분을 따라 통영 문인들이 전시실을 돌며 해설을 듣는 동안 나는 혼자 문학관 맨 윗 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찾지 않는 곳이지만 미당시문학관에 오면 나는 여기로 올라왔다. 우선 소요산 너머로 구름을 몰고 가는 바람을 쐴 수 있고, 선운리 전경을 한눈에 내려 볼 수 있어 좋았다. 바로 눈 아래로는 미당의 생가가 있고, 거기서 잠깐 눈을 들어 보면 저만치 미당의 무덤이 있다. 그 왼쪽 멀지 않은 곳에 미당이 닮았다는 숱 많은 머리털과 큰 눈을 가진 외할아버지의 집터가 있다. 미당의 태어남과 죽음이 부르면 달려올 만한 곳에 있었다. 뒤돌아보니 지금도 소쩍새가 우는 소요산과 소요산 넘어가는 질마재가 그림처럼 다가서고 있었다. 미당 시의 신화가 이루어진 곳이다. 미당의 태어남과 죽음이, 시와 삶이 손바닥 안에 옹기종기 모여서 또 하나의 설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속에 미당시문학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말 많은 세월의 이야기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내가 서있는 발아래, 문인들이 관람하고 있는 전시실에는 미당 생애의 빛과 그림자였던 국화옆에서의 시와 친일시가 낮과 밤을 같이 하고 있다. 그 분은 가셨지만, 짙은 그림자는 남아 빛을 덮어 누르고 있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있는데 오히려 빛은 희미해지고 그림자는 더욱 짙어져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사람들은 왜 빛보다 그림자 아래로 모여 드는가? 아픔 같은 것이, 한숨 같은 것이 소요산 넘어가는 구름처럼 한 번 가고 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마음만 먹으면 바람은 언제든지 구름을 몰고 소요산을 찾아올 것 같다통영에 가면 여러 곳에서 김춘수, 유치환 등의 시비를 볼 수 있다. 그 시비가 통영을 아름다운 시인의 고장으로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통영의 자연 뿐만 아니라 시의 정서로 마음을 치유하고 온다. 그런데 우리 고장 고창 읍내에 가면 미당의 시비를 볼 수 있는가? 미당시문학관을 찾은 통영 분들에게 어두워지는 마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옥상에 서 있다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그분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미당시문학관까지 내 안내는 끝났다. 우리는 여기서 헤어졌다. 그분들은 남도로 내려간다 한다. 그분들이 떠난 뒤 미당이 걸었을 옛 초등학교 운동장을 나도 걸었다.미당시문학관에도 동백나무가 있었다. 거기 동백나무에서도 동박새가 새끼를 데리고 동박새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다. 제 새끼에게 제 노래를 불러주는 동박새가 미당시문학관 뜰에도 살고 있었다.△ 정군수 관장은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전북시인협회장, 전북문인협회장 등을 역임하고 신아문예대학 문창과 교수, 혼불선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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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18 23:02

베를린에 심은 통영의 동백

G20 회의 참석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독일을 찾은 김정숙 여사가 윤이상 선생의 묘지를 찾아 그의 고향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고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두 분의 이름이 새겨진 석판을 헌정한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윤이상이 누구인가. 세계적인 작곡가로 추앙받는 예술가이지만 박정희 체제 하인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서울로 강제연행되어 간첩죄를 뒤집어쓴 채 온갖 고초를 겪고 수감되었다가 독일 등 국제사회의 항의를 받고 추방되었고 끝내 그의 생전에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이역에서 운명했다. 루이제 린저가 쓴 윤이상과의 대담집 <상처받은 용>을 보면 남과 북으로 갈린 조국의 현실에서 끝내 독일로 귀화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고통과 열망이 생생하게 전해진다.남과 북이 대립하면서 독일과 프랑스 등 해외에 거주하던 우리 지식인, 예술가, 유학생, 동포들이 공안사건의 먹이감이 되면서 인생이 부서졌고 끝내는 그리운 조국이 원수가 되고 영영 등을 돌리게 되었다. 동포사회도 양분되었고 조선이냐, 한국이냐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살아있는 생명을 둘로 갈라 쪼개고 네것내것을 엄격히 구별하지 않으면 다 적성, 빨갱이, 인민의 적이 되는 야만의 세월이었다. 유럽과 일본 등의 우리 외교공관은 그런 체제 대립의 일선현장에 선 첨예한 국가 기구였고 자국민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일을 우선하기보다 저쪽으로 넘어가지 않나 감시하고 통제하는 공안의 역이 제일이었다.지난 분단의 세월 동안 남과 북 우리 모두는 눈이 한쪽으로만 쏠린 넙치, 가자미들이었다. 다른 쪽을 애써 보지 않으려 했다. 그리하므로 윤이상 선생의 묘소에 바쳐진 통영의 동백은 이제 남과 북이 모두 불구의 시간을 헤어나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제대로의 시간을 살자는 호소처럼 보인다.일찌기 문익환 목사는 <꿈을 비는 마음>이란 시에서 벗들이여! / 이런 꿈은 어떻겠오? / 155마일 휴전선을 /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 푸른 바다가 굽어 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이 제대로 돌아 /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라고 적었다.문재인 대통령은 독일통일조약 협상이 이뤄졌던 역사적 현장인 베를린 구 시청에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환을 촉구했다. 독일은 우리처럼 민족 내부의 살육을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갖고 있는 분단국가는 아니었으나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고 양 체제를 다 겪으면서 유럽 국가 내에서도 독특한 내면을 갖고 있다. 이전의 문학 전통도 탄탄하지만 현대 독일 작가들의 작품에 배어 있는 다층의 역사 의식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은 정말 남다른 데가 있다.통독 이후의 시간들도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겪어야 할 미래를 미리 통과하고 있는 것만 같아 더욱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된다. 바로 그곳 독일, 분단체제가 휘두른 칼날에 스러진 순정한 소망이 묻힌 자리에 어처구니없는 꿈의 상징처럼 한 그루 동백이 심어졌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일, 이 지긋지긋한 분단 체제 남북국시대의 상흔처럼 붉은 통영의 동백이 긴 겨울의 뒤끝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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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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