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오디세이
노인복지와 효를 연구하고 교육한다는 효 문화원 개강식에 갔다. 부원장 하는 친구를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동기 동창 모임에서 그는 효를 이야기하려다 제지당한 적이 있다. 고리타분하다, 진부하다, 도(道)는 안다. 뭐 이런 식으로.수염, 한복, 건(巾), 큰절, 이질감. 뗄 수 없는 선입감과 예법에 대한 부담으로 온몸이 뻣뻣해졌다. 잘 버텨보자는 생각뿐 이었다. 그런데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장내에는 말쑥한 차림의 신사 숙녀가 가득 모여 있었다. 효를 하는, 효를 하려는 분들이었다. 이미 수백 명이 교육을 받았고 많은 사람이 효 지도사로 활동한다고 했다.여기서는 효를 HYO라고 쓴다. Harmony of Young & Old의 이니셜이다. 자녀세대와 부모세대의 화합.을 목표로 한다. 또 한 세대가 30년이란 사실을 강조한다. 30살, 60살, 90살, 120살 이렇게. 윗사람과 아랫사람 하던 이분법적 효와 성질이 다르다. 자기적,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으로 구분하여 접근한다. 당연히 대상은 전 연령층이다.내가 아는 효(孝)는 어버이를 잘 섬기는 일. 이다. 그저 부모님 잘 모시면 효자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국가적 효를 간과한 것이다. 모임에 나온 친구들 또한 그랬으려니 싶다.이런 시도가 있구나.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1인 가구가 30%를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 소위 1~4세대가 섞여 살고 있다. 문화나 가치관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영화 <은교>에는 이적요라는 국민시인 이 나온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제자 서지우에게 작품, 명성, 문학적 영감까지 다 빼앗기고 그의 문학상 시상식에서 축사를 한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세상에 이런 명대사(사실은 로스케의 시를 인용했지만)가 어디 있을까. 감탄했다, 그런데 HYO라는 관점에서 보면 둘은 조화롭지 못한 측면이 있다.영화 <수상한 그녀>는 교수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노인을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편견과 선입견과 이유를 말해보세요. 학생들이 주저 없이 말한다. 검버섯, 탑골공원, 거북이, 퀴퀴한 냄새, 얼굴이 두껍다, 등. 한 학생은 자기는 30대에 자살할 것이라며 구질구질하게 780살까지 살지 않겠다고 말한다. 교수는 너무한다며 질책한다. 노인 문제 전문가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 교수님,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한 자기 홀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한다.최근 웰빙과 웰 다잉에 관한 학문 <생사학>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과목마다 일관된 주문이 있는데, 무엇인가 내 안에 들어오면 받아들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고통이, 슬픔이 찾아오면 손님 모시듯 받아들여라. 그로 인해 더 크게 당하지 않으려면. 받아들이는 순간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받아들임을 제대로 행하는 것이 하모니(Harmony) 아닐까.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라는 공자님 말씀이 떠오른다. 왜일까.HYO의 빠른 정착을 빈다. 또 효 지도사들의 약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