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뜰과 시골집 마당 도시의 아스팔트 위를 노랗게 수놓은 은행잎
“은행잎은 황금을 찾아 떠도는 광부의 꿈 조각이다. 가난한 화가의 캔버스에 떨어진 돈 안 되는 낭만이다. 첫아기를 낳은 젊은 엄마의 눈에서 자라나는 애기똥꽃이다. 한밤중 도심을 지키는 등불이다. 환경미화원이 돌아가면 그 자리에 다시 눕는 노란 땅방울이다. 책갈피에서 소녀가 잠들 때까지 눈뜨고 파슬파슬 말라가는 파수꾼이다. 차마 밟으려 하지 않아도 밟히는 가여운 그리움이다. 내 어머니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순금반지다. 마지막 잎이 흔들릴 때 가을도 끝났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이다. 장례식장에서 젊은 과부의 머리에 떨어진 상장(喪章)이다. 시인이 평생 찾던 시의 한 구절이다.”
은행잎이 노란 가을을 앞당겼다. 산사의 뜰에도, 시골집 마당에도, 도시의 아스팔트에도 은행잎이 지천으로 물들고 있다. 아니, 벌써 지고 있다. 은행잎은 신록보다도 녹음보다도 마지막 삶을 치장하는 이때가 가장 아름답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한 그루만 서 있어도 그 둘레가 환하다. 가을밤 등불을 켜고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나무.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기간이 너무 짧다. 한 주일이 지나면 시나브로 등불도 꺼지고 나목이 되어 찬 달을 걸어놓고 첫눈이 오기를 기다린다. 은행잎의 계절은 이렇게 해서 간다.
늦가을이면 도시는 은행잎 낙엽으로 낭만의 길이 된다. 가로등이 은행잎 때문에 빛을 잃고 있다. 연인이 아니더라도 옷깃을 세우고 걸으며 꿈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 때로는 바람이 불어 은행이 우수수 질 때면, 이 밤에 은행잎이 다 질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더구나 아침이면 떨어진 은행잎이 미화원 아저씨들의 손수레에 실려 갈 것을 생각하면 아깝기 그지없다. 떨어진 은행잎을 며칠만이라도 그냥 놓아둘 수는 없을까? 삭막한 거리를 아늑한 노란빛으로 치장한 은행잎길을 더 오래 간직할 수는 없을까?
몇 해 전의 일이다. 나는 시청 도시환경미화를 담당하는 분에게 전화를 걸어 며칠만이라도 은행잎을 쓸지 않고 그냥 놔둘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은행잎이 시민들에게 주는 정서와 삶의 아름다움을 덧붙여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그런 전화를 가끔 받는다며 애로사항을 말하였다. 은행잎을 쓸지 않고 놓아두면 담배꽁초와 휴지, 쓰레기 등이 은행잎과 뒤섞여 오히려 거리가 더러워지고, 바람이 불면 하수구로 들어가 물의 유통을 막는다는 것이다. 특히 도로 주변의 상점 주인들이 반대를 한다는 것이다. 먼지와 나뭇잎들이 상점으로 불려와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내 생각은 나그네의 생각임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고궁 뜰이나 공원만이라도 은행잎을 쓸지 않고 놓아두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하였다. 그분은 긍정적 검토를 해보겠노라고 하였지만, 나는 공원에 가서 실망을 하고 돌아왔다. 옛날처럼 은행잎은 쓸려서 실려 나가고, 떨어진 은행잎을 환경미화원이 또 쓸고 있었다.
얼마 전 전주향교에 들렸다가 행복을 한아름 안고 왔다. 가을을 쓸지 않아서 향교 마당은 은행잎으로 금빛 세상이 되어 있었다. 수백 년 된 은행나무 아래에 은행잎은 떨어져 또 쌓이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은행잎을 모아서 던지면 하늘에서 노란 꿈 조각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바라던 은행잎의 기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구에겐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떨어지는 은행잎은 가을볕 속에서 가볍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옷을 벗는데 나는 왜 옷을 껴입을까. 마음의 옷을 껴입지 말아야지. 은행잎처럼 가벼워야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은행나무를 지나 고궁의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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