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07:37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일반기사

4대보험 미가입 인문계 석·박사

문화예술인들에게 당장 일거리를 주는 정책을 수립해 달라

▲ 신귀백 영화평론가

며칠 전 토론회가 있었다. 서울에서 온 선임연구원은 새 정부 문화정책의 넓은 카테고리를 짚었다. 국립대 교수는 전북 문화정책의 아쉬운 지점을 말했다. 두 박사님 앞에서 나는 현장체험가라는 ‘징징대는 캐릭터’로 두 가지 간증을 했다. 사실 지역문화진흥법과 문화정책에 대해 열심히 준비했는데….

 

먼저 ‘e나라도움’을 즉시 폐지해야 한다고 과격하게 이야기했다. 아시는 분만 아시는 이 시스템은 모든 문화예술보조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기획재정부가 만든 국고보조금 관리체계이다. 은행에서 카드를 만들 때부터 욱한다. 게다가 컴퓨터를 능란하게 다루지 못하면 정산을 할 수 없다. 감시시스템에 도움 받는 관심종자란 낙인이 될 수 있기에, 도종환 장관이 제일 먼저 상징적으로 폐지해야 된다고 징징댔다.

 

둘째, 예술인에게 보험을 줄 것이 아니라 당장 일거리를 만드는 정책을 수립해 달라고 했다. 보조금사업공모도 없는 겨울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농한기이니까. 그 구체적이고 슬픈 징징댐의 간증은 이렇다.

 

‘장박’이 8명 팀을 짜라는 귀띔을 했다. 단 4대보험에 안 들어있는 인문계 석·박사여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11월에서 3월까지 잘하면 월 180 정도 소득이 생긴다.” 십여 명의 후배에게 꿀 바른 목소리로 전화를 돌려 이력서와 4대보험가입확인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드림팀을 짰다. 학원에서 일하는 박사, 소설집을 낸 소설가, 막 등단한 시인, 논문을 앞둔 박사과정 후배들이 이력서를 보내왔다. 동지섣달 인세는커녕 강의수입도 없이 엄동설한을 맞을 그들의 마음은 훅했을 것이다. 과정이 좀 복잡했다.

 

‘깔때기(문화예술 강의를 제공하는)’ 기관에 여러 번 문의를 했다. 이미 신청을 준비한 팀이 있으니 다른 지역을 통해서 접근하라는 멘트도 있었다. 시청의 ‘칸막이(부서 밖의 일을 모르는 행정)’라는 트러블이 있었지만 잘 넘어갔다. 더 높은 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칭할 기관이 필요했다. ‘자활’을 비롯한 기관대표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 동안 울력으로 닦아놓은 것이 있잖은가. 8개 기관과 매칭준비도 됐다.

 

새벽 서너시까지 월 50차시에 가까운 강의계획서를 짜고 통합하는 일은 하나의 회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할 수 있었다. 시행될 강의마다 서정적이고 인문학적인 제목들을 뽑아 커리큘럼을 짰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될 즈음 장박이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 “근데, 과연 주당 14시간 수업을 누가 받죠? 학생도 아니고…”

 

확 깼다. 기관 소속 멤버를 A B 두 팀으로 나누어도 매일 두 시간 넘는 문화예술 수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기란 불가능한 지점이었다. 그래서 신청했냐고? 말 못하겠다, 미안해서.

 

후배예술가들아! 겨울에는 물속의 잠룡처럼 에너지를 보충하면서 명작을 쓰시라. 명작을 쓰고 메이저 출판사에서 책을 낸 후, 문학상을 수상하면 교수임용의 조건이 된다. 안 죽고 살아남아 내년 봄에 있을 각 기관의 보조금 사업에 다시 도전해 그대들에게 제비 박씨를 물어다 줄 것이다.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섹시한 제목으로 반드시 따낼란다. 내년에도 e나라도움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어도 굴욕은 내가 받을 터이니, 당분간 그대들은 부디 작품을 쓰시라.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