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풍수(風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미 중국 후한말(後漢末)시대부터라고 한다.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근거하여 집이나 묘지등에 대한 방위·지형등이 좋고 나쁨에 따라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좌우되는 것으로 믿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풍수설이 들어온것은 대략 신라(新羅)시대 말기쯤으로 알려진다. 도선국사(道詵國師)는 특히 풍수지리의 대가로서 전국 곳곳의 명당자리를 모두 점 찍었고 기(氣)가 쇠한곳을 보완하는 소위 비보(裨보)에도 능했다.송악(오늘의 개城)의 운세를 타고 왕건(王建)이 장차 고려국을 창건할 것이라고 예언한것도 바로 도선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풍수설을 일종의 미신으로 여겨져 타기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근래 들어서는 일부 학자들 사이에 학문의 차원에서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서울대 같은데서는 아예 관련강좌가 개설돼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풍수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를 과학과 통계학에서 찾고 있다. 자연환경(땅)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을 오랜기간 경험을 통해 얻어낸 통계가 바로 풍수지리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배산임수(背山臨水)니, 전저후고(전저후고)니,전착후관(前搾後寬)이니, 좌청룡·우백호니 하는 풍수용어들의 의미를 자세히 새겨 보면 제법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선영을 용인으로 모신후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설은 풍수가들에게는 하나의 교본처럼 회자되지만 사실 풍수설이 일반에게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킨것은 육관 손석우가 쓴 ‘터’라는 풍수서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93년에 펴 낸 이 책에서 모악산 자락에 있는 당시 김일성(金日成)주석의 전주김씨 시조묘 풍수를 근거로 그가 ‘94년 음력 9월에 사망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이는 적중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대단한 이 신통력 때문에 일반인들이 풍수설을 보는 시각도 크게 변한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이 서울 답방때 자신의 시조묘를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다. 만일 실현된다면 모악산 관광개발은 물론 우리 지역에 큼직한 선물 하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기대를 걸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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